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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축구 7] 남미축구, 올림픽에 화려하게 등장하다!

*미카엘* 2007. 5. 31. 17:53
남미축구, 올림픽에 화려하게 등장하다!
[올림픽 축구 7] 1924년 파리 올림픽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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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축구의 대표 주자, 우루과이

오늘날 세계 축구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남미 축구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 그 첫 모습을 드러냈는데, 당시 남미축구의 최강인 우루과이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남미는 1916년 시작된 남미축구선수권대회(후에 코파 아메리카로 명칭 변경)를 통해서 자신들의 실력을 갈고 닦아왔는데, 1924년 파리 올림픽 이전에는 우루과이가 남미 축구의 정상을 달리고 있었다.

1923년까지 총 7번 치러진 남미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루과이는 4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차지하였고 23번의 경기에서 15승 4무 4패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당시 우루과이의 최대 라이벌인 아르헨티나는 한 번의 우승과 네 번의 준우승을 거두었고, 22번의 경기에서 12승 4무 6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 최강 브라질은 당시 22경기에서 8승 6무 10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중 브라질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개최국으로서 두 번 우승했다. 남미 축구의 초창기에 브라질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보다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1923년 우루과이에서 치러진 제7회 남미축구선수권대회는 다음해 열리는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의 남미대표를 결정하는 대회로 병행되었는데, 이 대회의 우승자가 올림픽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올림픽 출전을 위한 지역예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1923년 10월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한 달여 진행된 남미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루과이는 페드로 페트로네(Pedro Petrone)가 매 경기 득점해 3승으로 우승과 동시에 올림픽 출전 티켓을 확보했다.

주목받지 않은 출발, "그러나 우린 강하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는 총 22개 팀이 참가했다. 유럽에서 18개(벨기에, 불가리아, 프랑스, 아일랜드,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루마니아, 스웨덴, 유고슬라비아, 에스토니아, 헝가리, 폴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체코슬로바키아, 스위스, 리투아니아)팀이 참가했고, 비유럽국가로는 미국, 터키, 이집트, 그리고 남미의 우루과이가 참가하였다.

1924년 올림픽에서는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초반 탈락의 쓴 잔을 마셨던 영국과 덴마크가 참가하지 않은 것이 아쉬운 일이었지만, 더 많은 팀이 참가하여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풍성한 대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우루과이가 첫 번째 라운드에서 유고슬라비아를 7-0으로 크게 이기면서 남미의 자그마한 나라 우루과이에 대한 유럽인의 관심이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5월 29일 열린 16강전에서 에스토니아를 1-0으로 제압하고 올라온 미국을 상대로 경기를 치른 우루과이는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넣은 바 있는 페드로 페트로네가 헤트트릭을 달성하며 미국을 3-0으로 제압하고 8강에 진출하였다.

개최국 프랑스는 첫 라운드를 부전승으로 통과하고 16강전에서 라트비아를 7-0으로 꺾으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지만 8강에서 남미의 우루과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우루과이는 프랑스를 5-1로 꺾으며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그때까지 우루과이는 15득점에 1실점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보여주고 있었다.

네덜란드와의 준결승

우루과이의 준결승 상대는 이전 세 번의 대회에서 동메달을 세 번 획득한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로서는 이전에 그들의 걸림돌이 되었던 영국과 덴마크가 불참하고, 디팬딩 챔피언 벨기에가 초반에 스웨덴에 1-8로 패하고 탈락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우루과이는 루마니아와 아일랜드를 제압하고 올라온 네덜란드에 다소 고전하며 전반전에 0-1로 뒤지다가 후반전에 두 골을 성공시키며 2-1로 역전승하고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우승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던 네덜란드는 우루과이가 얻은 페널티킥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고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네덜란드는 경기에 패했지만 여기에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결승에서 스위스와 상대하는 우루과이가 결승전 심판으로 네덜란드 사람(요하네스 뮈테르스)이 배정된 것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항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은 중재안으로 프랑스인을 결승전 심판으로 내세웠다.

남미축구의 화려한 정복자, 우루과이

우루과이의 결승전 상대인 스위스는 첫 번째 라운드에서 리투아니아를 9-0으로 이기고 16강에 올랐으며, 16강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의 하나인 체코슬로바키아를 재경기 끝에 1-0으로 간신히 이기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이탈리아를 2-1로 이기고 준결승에 진출했고, 준결승에서 스웨덴을 2-1로 힘겹게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6월 9일, 우루과이와 스위스의 결승전을 보기 위해 6만 명의 관중이 모여들었는데, 우루과이가 전반에 페트로네가 한 골, 후반에 세아와 안겔 로마노가 한 골씩 넣으며 3-0의 스코어로 승리하고 우승,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남미로서는 첫 출전에 첫 우승이라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한 것. 그때까지 축구는 유럽의 독무대라고 생각하던 유럽인들은 떠오르는 남미 축구에 대해 긴장하기 시작했다.

우루과이가 선봉이 되어 세계 축구 무대에 등장한 남미 축구는 이후 화려한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대회에서 유럽 축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유럽을 능가하는 실력이 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 출발의 중심에는 자그마한 나라 우루과이가 있었다.

결승보다 치열했던 3-4위전

한편 다시 한번 정상 도전에 실패한 네덜란드는 스웨덴과 동메달을 놓고 겨루게 되었다. 그때까지 네덜란드는 올림픽에서 스웨덴을 세 번 만나 세 번 다 승리를 거두었다. 스웨덴으로서는 네덜란드만 만나면 약한 모습을 보여왔는데, 네 번째 만남에서는 기필코 승리를 거두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스웨덴은 이전 대회보다 실력이 향상된 상태로 올림픽에 등장했는데, 16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벨기에를 8-1이라는 스코어로 대파하고, 8강에서는 이집트를 5-0으로 제압하며 4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4강에서 스위스를 만나 후반전에 결승골을 내주며 3-4위전으로 밀려났다. 3-4위전은 결승전보다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결국 이 경기는 재경기를 치르면서 스웨덴이 3-1로 승리하고 감격적인 동메달을 획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