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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1회 월드컵 : 유고, 유럽의 자존심을 지키다

*미카엘* 2007. 5. 31. 18:04
[월드컵 이야기 5] 유고, 유럽의 자존심 지키다
[제1회 월드컵] 유고슬라비아의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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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1차 세계대전과 신생국 유고슬라비아

유고슬라비아는 당시에 새롭게 국가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였다. '남슬라브 민족의 국가'라는 뜻의 '유고슬라비아'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새롭게 태어났다. 남슬라브 민족의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민족주의에 심취한 세르비아의 한 청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암살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남슬라브 민족은 가시적인 통합을 이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18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건설되었고, 이후 이 왕국은 1929년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이름을 고치게 된다.

세계사에 새롭게 등장한 신생 국가 유고슬라비아는 당시에 유럽의 세계가 외면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한 국제대회에 관심을 두고 참가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제 막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려고 하는 월드컵이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월드컵을 하찮게 여기며 불참을 선언했을 때, 유럽에서 2류 정도로 취급을 받던 4개 국가(프랑스, 벨기에,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가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서 대서양을 건너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개최국 우루과이에는 커다란 환영을 받았지만, 그것은 참가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을 뿐, 실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결과에 대해 미리 예측하는 사람들에게 유럽에서 건너온 팀들은 들러리 정도로 여겨졌다.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는 없었지만, 유럽의 4개 국가 중에서 프랑스가 그런대로 봐줄만한 실력이고 나머지 팀들은 형편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유고슬라비아는 국가의 이름도 1년 전부터 불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실력보다는 '그 나라가 어떤 나라야?'라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2) 조별리그

유고슬라비아는 남미의 두 나라(브라질, 볼리비아)와 같은 2조가 되었다. 축구팬들은 한결같이 브라질이 조별리그를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선수 개개인은 뛰어났지만 조직력에 있어서는 문제가 많은 팀이었다.

애초에 실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경기를 치르는 팀이 창조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승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팀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당황하고 답답한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아무도 유고슬라비아의 승리를 예측하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유고슬라비아에는 약이 되었다. 반면 브라질에는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전반전에 유고슬라비아는 티르나닉(21분), 벡(30분)의 연속골에 힘입어 2-0으로 앞서나갔다. 브라질은 선수 개개인은 나무랄 데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로 조화시키지 못하고 후반에 한 골만을 만회하는데 그치고 패하고 만다. 유고슬라비아의 승리는 이제 막 시작하는 월드컵 무대에서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유럽의 참가국들이 들러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력으로 입증한 셈이다.

유럽에서 참가한 팀들은 첫 경기에서 미국에 0-3으로 패한 벨기에를 제외하고는 승리를 거두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프랑스가 7월 13일 개막전에서 멕시코를 4-1로 격파했고, 다음날 유고슬라비아가 남미의 강호 브라질을 2-1로 이겼으며, 루마니아도 남미의 페루를 맞이해서 3-1로 승리했다.

유고슬라비아는 7월 17일 상대적으로 약한 볼리비아를 맞이해서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유고슬라비아로서는 브라질을 격파했기 때문에 사기가 충천해 있었고, 내친김에 볼리비아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유고슬라비아는 전반전을 0-0으로 끝냈지만, 후반 15분부터 5분 사이에 세 골을 몰아넣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3-0으로 앞서 나갔다. 유고슬라비아는 경기 종료 5분을 남겨두고 한골을 더 넣어 4-0으로 볼리비아를 완파하고 준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3) 준결승전, 우루과이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유고슬라비아로서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이미 거둔 셈이었다.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한 유고슬라비아가 준결승에서 상대해야 할 팀은 올림픽 챔피언 우루과이였다. 유고슬라비아는 7월 27일 센타나리오 경기장에서 우루과이와 결승 진출을 놓고 경기를 벌이게 되었다.

당시에 우루과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비공식 세계 챔피언이었다. 남미의 브라질과 볼리비아를 꺾고 준결승에 올라온 유고슬라비아로서는 상당히 벅찬 상대임이 틀림이 없었다. 유고슬라비아는 부담 없는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오히려 이 경기에서 부담을 가져야 하는 팀은 우루과이였다.

유고슬라비아가 경기 시작 4분 만에 선취골을 넣으며 1-0으로 앞서기 시작하자, 경기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경기력이 상승하고 있던 우루과이는 더 이상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수비가 견고해지기 시작하면서 우루과이의 공격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유고슬라비아는 이후 여섯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4) 유고슬라비아의 선전

우루과이와의 준결승전 경기 결과는 1-6, 유고슬라비아의 완패였다. 분명 유고슬라비아로서는 우루과이가 벅찬 상대였다. 그러나 멀리 대서양을 건너 참가한 유고슬라비아가 낯선 환경과 기나긴 원정으로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유고슬라비아로서는 상당히 선전한 경기였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 이제 새롭게 출발한 신생국가 유고슬라비아의 4강 진출은 제1회 월드컵에서 유럽 축구가 호락호락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유럽으로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유고슬라비아의 4강 진출과 유럽팀의 선전이 자극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유럽에서 참가한 4팀이 남미팀을 상대해서 거둔 성적은 3승 5패였다. 유고슬라비아(2승 1패), 프랑스(2패), 루마니아(1승 1패), 벨기에(1패)는 유럽에서 정상권의 실력이 아니었다. 유고슬라비아의 준결승 진출과 함께 유럽팀의 선전은 남미와 유럽에 동시에 자극제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는 남미의 브라질과 볼리비아를 격파하며 준결승에 진출했고, 준결승에서 챔피언 우루과이에 패했다. 프랑스는 아르헨티나에 아깝게 패하고, 그 후유증으로 칠레에 아쉽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루마니아는 페루에는 이겼지만, 챔피언 우루과이에 패했다. 벨기에는 남미의 파라과이에 0-1로 패했는데, 만약 베스트 멤버가 출전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평가가 있다.

제1회 월드컵에 참가한 유럽의 대표들은 분명 유럽의 시각으로 봤을 때에는 수준이 떨어지는 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머나먼 여행으로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해 싸웠고 유럽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다른 유럽의 강호들은 참가하지 않고도 자신들의 실력이 최강이라는 자존심을 지켰다고 생각했겠지만, 역사는 그들보다 실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물러서지 않고 맞붙어 선전한 유럽의 대표들이야말로 진정 유럽의 자존심을 지켜냈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들의 선전은 다음번 월드컵에서는 유럽이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는 촉매가 되었다. 그리고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서 점차 자국의 정예 맴버를 참가시키는 진정한 세계 축구의 왕중왕을 가리는 대회로 발전하는 첫 출발점이 된 것이다. 그 촉매의 중심에 유고슬라비아의 돌풍(4강 진출)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