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제3회 월드컵 : 헝가리, 최선을 다한 월드컵 준우승
헝가리, 최선을 다한 월드컵 준우승
[월드컵 이야기 16] 제3회 월드컵, 최선을 다하고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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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유럽의 강호, 헝가리
헝가리는 역사적으로 1867년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오스트리아-헝가리라는 하나의 제국을 형성하였지만, 정부의 존재는 그대로 인정을 받았다. 헝가리 축구는 하나의 제국 시절 오스트리아와 처음으로 국제경기를 치르며 데뷔했지만, 당시(1902년 10월 12일)에는 오스트리아에게 0-5로 패했다.
그러나 그 이후 착실하게 성장한 헝가리 축구가 세계무대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12년 올림픽에서였다. 첫 번째 라운드를 부전승으로 통과한 헝가리는 당시 우승국인 영국에게 0-7로 패하고, 패자부활전에서 독일(3-1), 오스트리아(3-0)를 격파하며 ‘패자부활전 우승’을 차지하였다.
헝가리는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참가하였을 때, 오스트리아에게 1-2로 패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 1-2로 추격하던 헝가리의 공격수 마르코스가 퇴장당한 것은 헝가리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맞이하여 헝가리는 다시 한 번 도약을 노렸지만, 새롭게 비상하는 폴란드의 제물이 되어 첫 번째 라운드에서 0-3으로 패하고 말았다(당시에 폴란드는 4강에 진출, 4위를 기록한다).
비록 세계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지만 헝가리는 1938년 월드컵이 시작되는 기간에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와 함께 중유럽의 강호로 인정받고 있었다(당시에는 국가 간의 A매치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어서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우승 후보가 제각각이었는데,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들이 헝가리를 이탈리아에 상대할 팀들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 193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
헝가리는 1938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6조(헝가리, 그리스, 팔레스틴)에 포함되었다. 지역예선 6조는 헝가리가 시드를 배정받아 부전승으로 결승 라운드에 진출하였고, 그리스와 팔레스틴의 승자가 헝가리와 본선 진출을 위해 경기를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팔레스틴을 두 번(3-1, 1-0) 이기고 올라온 그리스와 1938년 3월 25일, 부다페스트에서 본선 진출을 위한 경기가 벌어졌는데, 헝가리는 11대 1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그리스를 격파하며 단번에 1938년 프랑스 월드컵 참가팀 중에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떠올랐다.
# 헝가리, 결승에 오르기까지
헝가리는 1938년 6월 5일, 프랑스 월드컵 첫 경기를 약체인 네덜란드령 인도와 상대하는 행운을 얻었다. 당시 네덜란드령 인도는 일본과 지역예선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일본이 참가를 포기하는 바람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역사적인 팀이 되었다. 그러나 실력은 형편없었다. 헝가리는 대표적인 골게터 사로시(Sarosi)와 챙겔러(Zsengeller)가 각각 두 골씩 넣은 활약 속에 네덜란드령 인도를 6-0으로 제압하며 기분좋은 출발을 하였다.
헝가리의 두 번째 상대는 독일을 재경기 끝에 4-2로 이기고 올라온 스위스였다. 당초 독일은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선수들을 팀에 합류시키면서 전력의 극대화를 노렸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팀워크에 방해가 되면서 스위스에게 첫 경기를 1-1 비긴 후에, 재경기에서 2-4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특히 두 번째 경기는 2-0으로 앞서던 독일이 전반 끝날 무렵 한 골을 허용한 뒤에 후반에 내리 세 골을 허용하면서 침몰하였다. 4년 전 월드컵에 뛴 경험이 있는 스위스의 아베글렌은 독일과의 두 경기에서 세 골을 넣으며 한층 성숙한 기량을 선보였다.
독일을 재 경기 끝에 격파하며 올라온 스위스는 헝가리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헝가리는 6월 12일 스위스를 상대로 사로시와 챙겔러 콤비가 각각 한 골씩 넣으며 2-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헝가리의 세 번째 상대이자 준결승 상대는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이었다. 스웨덴은 첫 경기를 오스트리아와 치를 예정이었으나,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병합되고 자격이 상실되는 바람에 부전승으로 8강에 진출하여 8강에서 쿠바를 8-0으로 격파하며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그러나 스웨덴 역시 헝가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헝가리는 6월 16일에 열린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사로시가 한 골, 챙겔러가 세 골을 넣으며 5-1로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하였다.
# 최선을 다한 준우승
월드컵에서 결승에 오르기 위해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덧붙여서 행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제3회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강호 브라질이 이전 경기에서 진을 빼는 바람에 브라질 최고의 공격수 레오니다스 없는 브라질을 상대하는 행운을 가졌다. 헝가리 역시 비교적 순탄한 대진운으로 결승까지 오르는 행운을 부여받았다.
큰 경기를 치러본 이탈리아로서는 세 번째 도전이지만, 헝가리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결승전이었다. 이탈리아는 1934년 월드컵과 1936년 올림픽에 우승을 해본 경험이 있는 반면, 헝가리는 우승 경험이 없었다. 이러한 경험의 차이는 큰 경기일수록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헝가리는 이탈리아의 2연패를 저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헝가리가 5분경, 코너킥의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이탈리아에게 역습을 허용하여 이탈리아의 왼쪽날개 콜라우시에게 선취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곧바로 반격에 나선 헝가리는 티트코스가 사스의 센터링을 받아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피올라와 콜라우시가 연속으로 득점하며 헝가리는 1-3으로 뒤진 상황에서 전반전을 끝냈다.
후반에 접어들어 헝가리는 다시 추격전을 벌였다. 사로시가 후반전 중반에 한 골을 추격하며 스코어는 2-3으로 좁혀졌다. 그러나 헝가리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이탈리아의 수비는 더욱 견고해졌고,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이탈리아의 피올라가 승부에 쐐기를 박는 네 번째 골을 성공시켰고, 최종 스코어 4-2로 승리하고 월드컵 2연패를 이룩했다.
헝가리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고,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결국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은 1930년대 이탈리아의 전성시대를 확인하는 대회가 되었다. 이탈리아 역시 4년 전 우승이 단순히 개최국의 이점으로 달성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헝가리 역시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했다. 경기를 지켜본 관중들(대부분 프랑스인) 역시 정치적인 관계를 잊고 최선을 다한 양 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 주었다.
헝가리는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4경기에서 15득점을 기록하며 참가 팀 중에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하였다. 이 기록은 당시 막강한 공격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브라질의 기록보다 뛰어난 기록이었다(브라질은 5경기에 14득점을 기록하였다). 헝가리의 사로시는 헝가리가 치른 모든 경기에서 득점을 올리는 기록을 세우며 총 5골을 기록하였고, 챙겔러는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3골을 포함하여 총 6골을 기록하여 브라질의 레오니다스에 이어 개인 득점 2위를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