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제4회 월드컵 : 잉글랜드,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다(?)"
[월드컵 23] 잉글랜드,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였다(?)"
[제4회 월드컵]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혹독한 신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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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지붕 네 가족
영국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영국 연합왕국이라고도 한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의 네 개의 독립된 지역이 영국이라는 이름하에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지만 축구라는 종목에서는 각자 따로 FIFA에 가입되어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축구의 종주국 영국을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잉글랜드를 말한다.
영국은 초창기 세계 축구의 무대에서 Great Britain이라는 이름으로 단일팀을 구성하여 참가했다. 대부분 잉글랜드가 중심이 되어 구성된 영국은 1908년과 1912년에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종주국의 위상을 높였다. 그러나 세계의 축구가 서로 대결을 통하여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있을 때 영국은 세계 대회에 참가하기를 꺼려왔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타도 영국’을 목표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는 주장도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 영국, 세계 대회에 참가하기까지...
아마추어와 프로를 통합하여 세계 축구의 정상을 가리는 축구대회(월드컵)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시작되었을 때 영국은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들의 실력이 세계 정상급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대회는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경기를 통하여 실력을 꾸준히 향상하고 있었고, 친선경기를 통해서 영국이 더 이상 최강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버거워지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영국으로서는 세계 대회를 무조건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영국이 참가하지 않은 세계 대회는 비록 시작이 초라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정상급 실력을 갖춘 국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갑자기 대회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꾸준히 대회에 참가함으로 경험을 키워나갔고, 자신의 실력을 꾸준하게 업그레이드 시킨 결과였다. 그리고 세계 정상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영국 또한 스스로 참가하여 정상의 실력을 경기를 통해서 입증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 잉글랜드, 월드컵에 처음 참가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영국에 속한 네 개의 지역은 각자 따로 FIFA에 가입하고 1950년 제4회 월드컵에 참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즉각 세계 축구계에 커다란 환영을 받았다. 영국이 참가하지 않은 대회는 어쨌거나 명실상부 세계적인 대회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국의 존재는 초기 축구 역사에 있어서 상징적인 존재 그 이상이었다.
1950년 제4회 브라질 월드컵의 지역예선은 영국에 속한 네 개의 나라가 한 조가 되어 겨룬 다음, 상위 두 팀이 본선에 진출하는 자격을 부여받기로 되어 있었다. 이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가 1위, 그리고 스코틀랜드가 2위를 차지하여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스코틀랜드는 민족적 자존심을 이유로 월드컵 본선 불참을 통보하였고, 잉글랜드만이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축구에 있어서 종주국이나 다름없는 영국을 일컬을 때는 잉글랜드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스코틀랜드가 역사적으로 잉글랜드의 라이벌이었다고 하더라도 잉글랜드의 축구가 영국의 축구를 대표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따라서 스코틀랜드가 불참했지만 잉글랜드의 참가는 당시에 불참과 기권이 속출한 대회의 위상을 어느 정도 지켜줄 수 있었다.
# 잉글랜드, 혹독한 신고식(?)
13개국이 참가한 제4회 브라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스페인, 미국, 칠레와 2조에 속했다. 4팀이 조별리그를 치르고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한 팀이 결승리그에 진출하기로 되어 있었다. 세계의 축구팬들과 잉글랜드 자신조차 조별리그를 통과할 나라는 당연히 잉글랜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첫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당연하게 칠레를 2-0으로 제압했다. 다음 경기에서 북중미의 미국은 자신들이 잉글랜드를 이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도박사들은 잉글랜드의 승리를 500:1로 점치고 있었는데, 그만큼 미국은 전력상으로 잉글랜드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미국의 Gaetjens에게 한 골을 허용하고 0-1로 충격적인 패배를 기록하였다. 누구도 상상하지 않은 결과였기 때문에 잉글랜드가 10-1로 이겼다는 오보가 등장하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세 번째 상대는 유럽의 스페인이었다. 축구공은 둥글기 때문에 이변은 일어날 수 있으며, 잉글랜드가 여전히 세계 정상권이 팀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스페인을 반드시 이겨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부담감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고, 잉글랜드는 스페인에게 0-1로 패하고 말았다. 초라한 성적을 올리고 귀국하는 그들에게는 국민들의 실망과 비판이 이어졌다.
# 잉글랜드의 패배가 월드컵에 기여한 점
1승 2패를 기록하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잉글랜드는 영국 축구가 더 이상 독보적으로 정상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나 세 경기만으로 영국의 축구가 무너졌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잉글랜드로서는 치욕적인 경험이었지만 이 기록은 오히려 월드컵이 더욱 세계적인 대회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잉글랜드를 포함하여 세계의 정상권에 위치한 국가들이 참여하여 진정한 자웅을 겨룰 수 있는 교두보가 확보된 것이다. 잉글랜드로서는 첫 참가에서 치욕적인 기록을 한 것을 이후 대회를 통해서 만회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러한 잉글랜드의 분발과 함께 월드컵은 보다 질적으로 높은 대회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출전에서 1승 2패의 기록은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에게는 치욕적인 기록이었다. 그 중에 미국에게 당한 0-1의 패배는 오랫동안 축구팬들의 기억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스코어가 되어 버렸다. 축구 경기에서는 당연한 승리보다 믿기지 않는 승리(이변)가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잉글랜드가 이 대회에서 칠레에게 2-0으로 승리했다는 것 보다 미국에게 0-1로 패했다는 것을 더 잘 기억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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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