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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제9회 월드컵 : 브라질, 줄리메컵의 영구 소유자가 되다.

*미카엘* 2007. 6. 17. 03:34

[월드컵 47] 브라질, 줄리메컵의 영구 소유자가 되다
[1970년 제9회 멕시코 월드컵] 브라질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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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메컵

‘줄리메컵’은 높이 30센티미터, 무게 1.8킬로그램의 순금 여신상으로 월드컵에서 가장 먼저 3번 우승한 나라가 영구적으로 소유하기로 되어 있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 열리기 전, 줄리메컵을 영구적으로 소유하기 위한 경쟁에서 2회 우승을 달성하며 목표에 가장 근접해 있는 나라는 이탈리아(1934년, 1938년 우승), 우루과이(1930년, 1950년 우승), 그리고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가장 강력한 후보로 부상한 브라질(1958년, 1962년 우승)이었다.

초반에 가장 앞서나갔던 이탈리아는 우루과이에게 추격을 허용했고, 줄리메컵의 영구 주인은 이들 중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맞이하는 세계 축구팬들은 줄리메컵의 영구 소유자는 브라질이 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 수비 대신 공격을...

오늘날 영원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브라질은 1970년 당시에도 영원한 우승후보였다. 축구 황제 펠레는 30살의 나이로 원숙함이 더해져 있었고, 그의 동료들(자이징요, 토스타오, 젤슨, 리벨리노, 클로도알도 등)은 다른 팀에게는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에 브라질의 대표팀 감독은 살다냐에서 자갈로로 교체가 되었다. 살다냐 감독은 개인기 위주의 브라질에서 수비를 강화시키고 조직력을 키우기 위해서 펠레까지도 대표팀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 결과, 월드컵 개막을 두 달 남겨놓고 물러나고 만 것이다.

지역예선에서 전승을 거두며 강력한 우승후보임을 입증했던 그가 왜 그렇게 대표팀을 재정비하려고 했으며, 왜 물러나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브라질 대통령이 아끼는 선수들을 제외시킨 괘씸죄부터 시작하여 특정 스타 선수들에 의존한 결과 1966년 월드컵에서 실패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 팀을 재정비 하려고 했다는 의견, 지나친 개인기를 중심으로 한 공격 위주의 팀 구성이 가져올 폐단을 미리 예측하고 수비의 조직력을 강화시키려고 했다는 의견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후 살다냐 감독이 물러난 이후에 브라질 대표팀이 어떠한 성적을 거두는 가에 따라서 살다냐 감독은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월드컵 본선에서 브라질이 수비의 취약성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좌절한다면 살다냐 감독의 행동은 옳은 것으로 판단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살다냐 감독이 걱정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에 브라질의 공격력은 수비의 취약성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물론 오늘날의 브라질은 공격 못지않게 수비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새롭게 감독을 맡게 된 자갈로는 브라질의 전통적인 스타일로 돌아가는 것이 최상이라고 판단했다. 브라질은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공격 위주의 팀으로 재정비되었다. 브라질은 한 골을 잃으면 두 골을 넣고, 두 골을 잃으면 세 골을 넣기 위해서 공격을 하는 팀이었다.

# 조별리그, 전승으로 통과하다

브라질의 조별리그 첫 상대는 올림픽 챔피언 헝가리를 따돌리고 본선에 오른 체코슬로바키아였다. 6월 3일의 경기에서 브라질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선제골을 허용하였으나(페트라스, 11분), 리벨리노의 동점골(24분)로 전반을 1-1로 마무리 하였다. 후반에 들어서 펠레가 한 골(59분), 자이르징요가 두 골(61분, 81분)을 넣어 4-1로 체코슬로바키아를 제압하고 1승을 기록하였다.

브라질의 두 번째 상대는 디팬딩 챔피언 잉글랜드였다. 잉글랜드는 첫 경기에서 루마니아를 1-0으로 누르고 1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6월 7일 사실상의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경기인 브라질과 잉글랜드의 대결은 ‘용호상박’ 그 자체였다. 막강한 화력의 브라질 공격수들은 잉글랜드의 최후의 방어선인 골키퍼 골든 뱅크스의 호수비에 막히며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반 14분 경, 토스타오에게서 넘겨받은 펠레가 문전으로 쇄도하는 자이르징요에게 패스하였고, 결국 자이르징요의 발을 떠난 공은 골든 뱅크스의 방어막을 뚫어버렸다. 이것이 이 경기의 유일한 득점이 되었다. 결국 브라질이 잉글랜드를 1-0으로 이기고 2승을 기록하며 결승 토너먼트 진출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였다.

브라질의 마지막 상대는 동유럽의 다크호스 루마니아였다. 루마니아는 잉글랜드에게는 0-1로 패했지만 체코슬로바키아에게 2-1로 역전승을 거두며 잉글랜드와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6월 10일에 벌어진 경기에서 브라질은 펠레가 두 골(19분, 67분), 자이르징요가 한 골(22분)을 넣으며 3-2로 승리, 3승으로 결승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다.

# 준준결승(디디와 자갈로의 대결)

브라질의 준준결승 상대는 남미의 페루였다. 페루는 브라질에 비해서 개인기는 뛰어나지 못했지만, 오래전부터 대표팀을 구성하여 합숙 훈련을 해 왔기 때문에 팀의 조직력은 상당히 뛰어난 팀이었다. 페루가 지역 예선에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탈락시키며 본선에 합류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페루가 속한 조에는 서독과 불가리아(1968년 올림픽 은메달)가 더 비중있는 팀으로 평가받고 있었고, 페루는 다크호스로 정도로 여겨졌다.

페루의 감독은 브라질의 축구 영웅 디디였는데, 디디는 새롭게 브라질의 감독이 된 자갈로와 선수 시절 한솥밥을 먹던 동료였다. 디디가 이끄는 페루는 조별리그에서 서독에게는 졌지만 불가리아와 모로코를 제압하며 조 2위로 준준결승에 합류했다.

왕년의 동료가 서로 다른 팀의 감독이 되어 겨룬 브라질과 페루의 경기는 공격력에서 한 수 위인 브라질이 4-2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디디가 이끈 페루는 후반 25분경까지 3-2로 따라붙으며 끈질긴 모습을 보이며 최선을 다했다. 월드컵 개막 직전 조국의 대지진으로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장한 각오로 대회에 임한 페루는 8강 진출을 달성하며 조국의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수 있었다.

# 브라질, 20년 전의 패배를 설욕하다(준결승).

브라질이 페루를 꺾으며 4강이 겨루는 준결승에 진출했는데, 나머지 4강은 우루과이, 서독, 이탈리아였다. 이들 중에서 서독을 제외한 세 팀이 월드컵에서 2회 우승을 차지한 팀이었기 때문에 서독이 우승하지 않는 이상 줄리메컵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자신의 임무를 마감하게 될 운명에 처했다.

브라질의 준결승 상대는 숙적 우루과이였다. 20년 전 195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최강의 실력을 갖추고도 우루과이에게 패하여 우승을 놓친 바 있는 브라질로서는 20년 만의 설욕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우루과이는 과거의 화려한 명성과는 달리 초라한 모습으로 4강에 올랐다. 그들은 조별리그에서 1승 1무 1패(득점 2, 실점 1)로 간신히 스웨덴을 따돌리고 조 2위로 준준결승에 올랐으며 준준결승에서 소련에게 연장 승부 끝에 1-0으로 간신히 이기고 준결승에 오른 팀이다. 그들은 4경기에서 3골을 넣는 초라한 득점력으로 준결승까지 진출한 것이다.

비록 조별리그와 준준결승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못했지만 우루과이는 여전히 브라질에게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객관적인 전력이 뒤진다고 하지만 승부는 의외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20년 전에 브라질이 절실하게 체험한 바 있었다.

6월 17일, 20년 만에 다시 만난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경기에서 우루과이는 브라질의 막강한 공격력에 맞서 철저한 대인방어를 펼치며 기회가 되면 기습으로 브라질 문전을 노리는 전술을 사용했다. 이러한 역습의 기회를 살려 우루과이의 큐빌라가 전반 19분에 선취골을 넣었다. 이 선취골은 브라질 공격수들에게 자극제가 되었고, 다시는 20년 전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브라질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선 반면, 우루과이는 선취골을 지키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결과 동점골을 허용한 것이고, 그 이후 기세가 오른 브라질이 후반전에 두 골을 추가하며 3-1로 승리하고 결승 진출에 성공하였다.

# 브라질,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다(결승).

브라질의 결승 상대는 서독을 연장전에서 4-3으로 꺾은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와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두 번씩 우승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줄리메컵은 이들 중 한 나라에게 영구적으로 주어질 운명에 처했다.

브라질과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한차례 대결한 적이 있었다. 1938년 이탈리아가 우승을 할 당시에 브라질은 이탈리아에게 1-2로 패했었다. 브라질로서는 32년 만에 설욕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6월 21일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결승전은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다. 화려한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는 브라질과, 수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탈리아의 경기에서 선취골은 펠레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수비를 두텁게 하면서 역습을 시도하던 이탈리아는 38분경 브라질 수비수의 패스를 가로챈 보닌세냐가 동점골을 성동시키며 전반전을 1-1로 마무리하였다.

후반전에 브라질은 여전히 공격위주의 경기를 펼쳤다. 이탈리아 역시 수비를 강화하고 역습을 시도하는 작전으로 대항했지만, 브라질의 공격력은 이탈리아의 수비를 뚫고 두 번째(66분), 세 번째(71분), 네 번째(86분) 골을 성공시키며 4-1로 승리를 거두었다.

세 번의 우승,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네 번의 도전에서 이룬 세 번의 우승은 브라질 축구를 다시 한번 세계의 축구팬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면서,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특별이 세 번째 우승의 순간은 모든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면서 얻은 승리였기에 더더욱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본선에 조별리그가 생긴 이후 전승으로 우승을 기록한 팀은 1970년 멕시코 대회의 브라질이 처음이었다.

오늘날까지 영원한 우승후보에 속하는 브라질은 영국이 만든 현대 축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브라질 축구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수비 보다는 공격을 위주로 하는 그들의 화려한 플레이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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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