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제9회 월드컵 : '수비축구' 이탈리아의 화려한 재기
[월드컵 48] ‘수비 축구’ 이탈리아의 화려한 재기
[1970년 월드컵] 이탈리아 준우승을 차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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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월드컵 이전의 이탈리아
이탈리아는 1934년 제2회 월드컵과 1938년 제3회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줄리메컵 영구 소유 후보 0순위로 급부상하였다. 당시 포치오 감독은 1930년대 이탈리아의 전성시대를 주도한 감독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시의 이탈리아 축구는 파시즘이라는 정치적인 선전 도구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월드컵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두 번 우승을 달성하며 두각을 나타냈던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저 그런 성적으로 축구팬들의 뇌리에서 점차 잊혀져가고 있었다. 동시에 파시즘의 선전도구였다는 인식 또한 점차 잊혀져 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벌어진 1950년 제4회 대회와 1954년 제5회 대회에서 잇달아 본선에 올랐지만, 결승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하며 그저 그런 팀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1958년 제6회 월드컵에서는 아예 본선 무대도 밟지 못한 이탈리아로서는 1962년과 1966년에 본선에 진출하면서 다시 한 번 월드컵 정상 도전을 시도했지만 조별리그 탈락으로 좌절하고 말았다. 특별히 1966년에는 아시아의 북한에게 패하는 수모까지 당하고 말았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의 이탈리아 축구는 그야말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나긴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던 이탈리아가 196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은 어느 정도 행운이 따른 결과였지만 이탈리아 축구가 다시금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196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이탈리아는 1970년 월드컵을 앞두고 오늘날까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빗장수비(카테나치오)를 들고 나와 좀처럼 지지 않는 팀으로 새롭게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발카레리 감독은 “우리는 66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 북한의 악몽은 이제 없다”는 선언을 하며 1970년 월드컵 우승 전전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조별리그, 수비는 강하지만 공격에 문제가 생기다
지역예선에서 3승 1무로 동독과 웨일즈를 따돌리며 본선에 진출한 이탈리아는 우루과이, 스웨덴, 이스라엘과 조별리그 2조에 속하게 되었다. 이탈리아가 비교적 쉽게 상대할 수 있는 팀으로는 이스라엘 정도였고, 우루과이와 스웨덴과의 경기는 힘겨운 승부가 예상되었다.
이탈리아는 조별리그 첫 경기(6월 3일, 스웨덴)에서 전반 10분에 도멘기니(Domenghini)가 한 골을 넣으며 1-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 한 골이 이탈리아가 조별리그 세 경기에서 넣은 유일한 골이 되었다. 이탈리아는 두 번째 경기인 우루과이와의 경기(6월 6일)에서 0-0으로 비겼고, 마지막인 이스라엘과의 경기(6월 11일)에서도 0-0으로 비기는 등 빈곤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는 1승 2무로 승점 4점을 기록하며 조 1위를 차지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실망 그 자체였다. 이탈리아는 한 골만 넣는 빈곤한 득점력에 비해서 한 골도 빼앗기지 않은 뛰어난 수비 덕분에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할 수 있었다.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우루과이 역시 내용적으로는 두 골을 넣고 한 골을 실점하는 초라한 성적으로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였다.
이탈리아의 조별리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유럽챔피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탈리아는 유럽챔피언답게 유럽의 스웨덴에게는 이겼지만 남미 대표 우루과이와 아시아 대표 이스라엘과 비기며 자존심을 구겨버렸다. 특별히 4년 전에 아시아의 북한에게 0-1로 충격적으로 패했던 이탈리아가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이스라엘에게 0-0으로 비긴 것은 결승 토너먼트를 앞둔 이탈리아에게는 상당히 불안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었다.
# 결승 토너먼트, 공격은 보완되었지만 수비에 문제가 생기다
이탈리아는 준준결승에서 개최국 멕시코와 대결하게 되었다. 멕시코는 개최국의 이점을 충분히 살리며 조별리그에서 2승 1무(5득점, 무실점)의 성적으로 조 2위를 기록하며 준준결승에 진출한 팀이었다. 특별히 그들은 이전 월드컵에서는 3류 국가에 속해있었지만 고산지대라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그들에게는 커다란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6월 14일 벌어진 이탈리아와 멕시코와의 준결승에서 멕시코의 곤잘레스가 전반 13분 경 한 골을 넣으며 1-0으로 앞서나갔다. 이탈리아는 전반이 끝날때까지 한 골도 넣지 못했지만 멕시코의 수비수 페나가 자살골을 넣어준 덕분에 1-1로 비긴 상황에서 후반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후반전에 들어선 이탈리아는 300분이 넘는 기나긴 무득점 행진에 비로소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후반 18분 경 이탈리아의 리바가 한 골을 넣으며 2-1로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두 골을 추가로 넣으며 4-1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탈리아는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골결정력의 부족을 말끔히 씻어버리고 결승을 향한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1970년 월드컵 4강은 유럽에서 2팀(이탈리아, 서독), 남미에서 2팀(브라질, 우루과이)으로 압축되었다. 모두 다 한번 이상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는 팀이었기에 누가 우승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다. 서독을 제외한 나머지 세 팀은 두 번의 우승 경험이 있기에 3회 우승으로 줄리메컵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준결승은 공교롭게도 유럽은 유럽끼리, 남미는 남미끼리 대결하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서독과 6월 11일에 맞붙게 되었다. 서독은 조별리그에서 유럽의 강호로 부상한 불가리아를 따돌리고 결승 토너먼트에 올라 준준결승에서 디팬딩 챔피언 잉글랜드에게 연장 승부 끝에 3-2로 승리하고 준결승에 합류한 팀이었다.
이탈리아는 전반 8분 경에 보닌세냐가 한 골을 넣으며 1-0으로 앞서나갔다. 한골을 먼저 넣은 이탈리아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빗장수비를 단단히 펼치며 승리를 굳히는 작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경기 종료 직전에 서독의 슈넬링거가 기적같이 동점골을 넣으며(90분) 경기는 연장전에 돌입하였다. 연장전에서 서독의 게르트 뮬러가 역전골을 넣으며(94분) 경기를 1-2로 뒤집었다. 곧이어 이탈리아의 브루니치가 동점골을 넣었고(98분), 리바가 역전골을 넣으며(104분) 경기는 3-2로 이탈리아가 앞서나갔다. 다시 서독의 게르트 뮬러가 동점골을 넣으며(110분) 3-3을 이루었는데, 최종적으로 이탈리아의 리베라가 결승골을 넣으며(111분) 이탈리아가 4-3으로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화려한 명승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교체 선수를 다 써버린 서독의 베켄바우어가 어깨 탈골로 붕대로 팔을 고정시키고 경기에 임할 정도로 경기는 양 팀이 서로 물러서지 않는 한 판이었다. 빗장수비(카테나치오)의 이탈리아와 리베로 시스템의 서독의 대결은 둘 다 수비가 탄탄하기 때문에 많은 골이 터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연장전에서 터진 다섯 골은 그날의 경기가 얼마나 박진감이 넘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화려한 조연,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결승 상대는 최강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설명이 필요없는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수비가 튼튼한 이탈리아와 공격이 강한 브라질의 경기는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대결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결승 토너먼트의 두 경기만 놓고 본다면 이탈리아는 총 8골을 넣었고, 4골을 실점했다. 그들의 빗장수비에도 허점이 많이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브라질의 승리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감독은 설상가상으로 이탈리아의 핵심인 리베라를 선발로 내세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전반을 1-1로 대등하게 맞서며 쉽게 지지않는 그들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빗장수비도 최강의 공격력을 갖춘 브라질의 공격을 90분 내내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이탈리아는 후반에 세 골을 허용하며 1-4로 패하고 말았다.
가장 먼저 월드컵 3회 우승을 달성한 브라질에 대해서 이탈리아의 감독은 “지금 이 브라질팀을 이길 팀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월드컵의 승자 브라질은 명실상부 최강의 팀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월드컵 3회 우승의 금자탑, 줄리메컵 영구 소유의 주인공 브라질을 이길 팀은 없었다.
# 수비 축구의 이탈리아의 성공적인 재기
비록 브라질이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1970년 월드컵은 폐막되었지만, 기나긴 슬럼프를 딛고 재기에 성공한 이탈리아 역시 성공적인 팀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1938년 우승 이후 기나긴 슬럼프에 빠졌던 이탈리아가 32년 만에 결승에 오르며 재기에 성공한 것은 이탈리아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결승 토너먼트에서 그들의 수비가 많이 뚫렸다고 하지만 이탈리아의 수비는 축구에서 수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월드컵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느끼게 된다. 역사적으로 최강의 팀은 나름대로 최강이 되기 위한 실력과 행운, 그리고 자격을 갖춘 팀이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최강의 팀과 대결했던 많은 팀들은 조연에 머물렀지만 나름대로 역사의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많은 조연들 중에서 최강 브라질과 정상을 겨루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탈리아의 존재는 ‘강력한 2인자’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축구가 수비축구의 진수라는 사실은 오늘날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수비가 ‘카테나치오’라 불리는 빗장수비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성공은 곧 월드컵에서 수비 축구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결과가 되었다. (월드컵 시작 전에 뛰어난 공격력을 가진 팀도 수비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결국 낙마한 브라질의 살다냐 감독은 이후 현대 축구의 흐름을 정확하게 간파했지만, ‘한 골을 잃으면 두 골을 넣는’ 브라질에게는 기우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이탈리아의 재기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간접적으로 암시해주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