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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민주화운동] 02. 3선개헌서 유신까지

*미카엘* 2005. 3. 2. 17:07

3선개헌서 유신까지

 

1969년 3선개헌에 성공함으로써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박정희 정권은 곧이어 안팎으로부터의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 도시 빈민 등 기층 대중의 폭발적인 저항과 닉슨 독트린으로 인해 야기된 냉전체제의 와해 움직임이 그것이다.


화려한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하루 14~15시간에 이르는 중노동과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임금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1970년 11월13일 전태일의 죽음을 계기로 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다. 도시 변두리에서 대규모 산업예비군을 형성하고 있던 도시 빈민들의 삶은 더욱 열악했다. 누적된 도시 빈민들의 불만은 71년 8월 경기도 광주대단지 폭동으로 표출되었다.


밖에서는 전후 세계질서를 규정지었던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있었다. 미·중간 관계 개선 등 세계정세가 변화하면서 대결 일변도로 진행되었던 남북관계도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72년의 7·4 공동성명은 이러한 과정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소위 반공을 국시로 했던 박정희 정권의 통치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안팎 위기를 박정희는 파쇼통치의 강화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였다. 박정희는 71년 12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선포해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을 박탈하였다. 가장 큰 저항세력인 학생들을 교련교육 강화를 통해 군대식으로 통제하였다. 이후 박정희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72년 10월17일 드디어 박정희는 유신쿠데타를 감행한다. 이승만 독재를 피로써 물리친 4·19는 고작 12년 만에 이렇게 박정희에 의해 짓밟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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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2003년 0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