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민주화운동] 04. "상아탑은 성역, 시위에도 낭만"
“상아탑은 성역, 시위에도 낭만”
혈기왕성한 대학생으로서, 1969년 3선 개헌으로 시작해 72년 유신이 선포되면서 형편없이 파괴되어가는 민주주의에 분노하고 항거했던
이들은 이제 지천명을 넘긴 나이다. 정계는 물론이고 시민운동, 학계, 언론계, 경제계, 언론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래도 낭만이 있었던 시절’. 이들은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특히 71년 10월 위수령을 계기로 군대가 대학에 주둔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그 전까지 대학은 신성한 구역으로 남아 있었다.
71년 서울대 상대 4학년으로 교련에 반대하다 강제 입영된 김대환 인하대 교수가 소개하는 일화다. 한번은 법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는데 경찰이 학교를 에워싸고 학생들의 추가 가담을 막았다. 그러나 한 학생이 당시 법대 캠퍼스에 있던 출판부에 볼 일이 있다며
속이고 들어와서는 도서관 쪽으로 가면서 경찰들에게 손을 흔들며 야유를 보냈다.
71년 10월5일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군인들의 고려대 난입 사건에 대해 당시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문제의 학생들이
“학교 안에 기거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아 경찰이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운동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은 마찬가지다. 71년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다 제적당한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위수령 세대의 모임인 ‘71동지회’가 2001년 펴낸 30주년 기념 문집 ‘나의 청춘 나의 조국’에서 소개한 일화는 배꼽을 잡게 한다. 손교수는
99년 민교협 공동의장으로 있던 시절 명동성당 앞에서 정부의 교육정책에 항의하는 교수 시위를 조직했다. 성당 앞에서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네 이놈”하고 허리춤을 움켜 잡았다. 경찰인 줄 알았던 손교수는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민교협 시위 소식을 뉴스에서 접한 손교수의 아버지가 달려 나와 “너는 학생 때 그렇게 속을 썩혔으면 됐지 교수가 돼서도 또
데모냐”고 호통을 치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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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2003년 05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