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민주화운동] 50. 무크운동의 고양
신군부 언론압제에 맞선 ‘문화 게릴라’
80년대초 현실비판적 정기간행물들이 줄줄이 폐간당하던 암흑기에 진실을 갈망하는 대중의 욕구는 높아만 갔다. 한국 무크는 이런 시대적
상황속에서 등록 절차없이 ‘치고 빠지기식’ 유격전술 같은 출판형식이 붐을 이루며 시작됐다. 무크간행의 첫발을 내디딘 ‘실천문학’의 창간으로
기존매체에 대한 통제로 그동안 숨죽여 왔던 문학운동의 역량이 새로운 출구를 찾게됐고 ‘창비’와 ‘문지’의 폐간에 따른 지면보상 욕구가 작용하며
문학무크지의 발간은 러시를 이뤘다. 점차 종교·민중문화등을 주제로 담아낸 무크들이 등장하며 예술·학술·사회과학 분야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서울의 봄’을 맞아 조금 기지개를 켜던 신문과 잡지들은, 신군부에 의해 정기간행물 등록 취소와 언론 통·폐합이라는 폭거가 자행된
이후 또 한번 강요된 동면(冬眠)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만 ‘발행목적에 위배’되면 즉각 제재가 가해지는 현실에서 공식 정기간행물들은 질식 상태에 빠져들었다. 특히 ‘창작과
비평(창비)’과 ‘문학과 지성(문지)’ 그리고 ‘뿌리깊은 나무’의 폐간은 당시 한국 사회의 비판적 의사소통의 장을 결정적으로 위축시켰다.
언론에 대한 억압이 컸던 만큼 진실을 알고, 말하고자 하는 국민대중의 욕구 또한 비례해 점점 더 커졌다. 그 욕구를 담을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있어야 했는데 그것이 곧 무크(mook)였다. 매거진(magazine)과 북(book)을 결합한 조어인 무크는 잡지에 담을
내용을 단행본 형식으로 엮어내는 것으로, 원래는 월간·계간 등 정기성(定期性)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일정하게 집중된 개념으로 잡지형 책을 내고
싶을 때 사용하는 출판 형식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반 한국의 무크 붐은 그런 일반적인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역사적 현상이었다. 무엇보다도 정기간행물
등록이라는 번거로운 제도적 장치를 거치지 않음으로써 신군부 정권의 간섭과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또 정기간행의 부담없이 한 권씩 ‘치고
빠지는’ 유격적 출판행위가 가능하다는 점이 당시의 억압적 상황에서 유독 무크라는 출판형식이 붐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이다.
무크 간행의 첫발을 내디딘 것은 80년 3월 ‘실천문학’의 창간이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기관지 역할을 한 이 무크 첫 호의
제목은 ‘역사에 던지는 목소리’였다. 문학평론가 백낙청에 의하면 ‘실천문학’의 창간은 “기존 매체에 대한 당국의 통제가 엄격하며 새로운
정기간행물의 창간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70년대를 통해 성숙해 온 문학운동의 역량이 몇몇 주어진 지면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새로운 출구를 찾게
된 결과”였다.
‘실천문학’의 선구적 창간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무크운동이 시작된 것은 광주민중항쟁을 겪은 이후인 81년이었다. 그것은
‘실천문학’이 그렇듯 문학 무크로부터 시작됐는데 그 중에서도 시 동인지들이 선편을 잡았다. 광주항쟁의 시적 계승을 지향했던 ‘5월시’, 시의식에
우선해 과학적 현실인식의 중요성을 내세운 ‘시와 경제’, 그리고 새로운 모더니즘적 감수성을 선언한 ‘시운동’ 등이 먼저 문을 연 것이다.
무크운동에서 문학 무크가 선편을 잡았다는 사실, 그리고 거기서도 시 동인 무크가 앞장을 선 것은 문학이야말로 시대의 상처를 먼저
아파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징후를 먼저 파악하는 양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시는 산문적 현실인식 이전에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현실의 고통을 직관적으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실천문학’이 81년에 2집(‘이 땅에 살기 위하여’), 82년에 3집(‘말이여 솟아오르는 내일이여’)을 냄으로써 선구적 역할을
하는 동안 또 하나의 종합 문학 무크 ‘우리 세대의 문학’ 1집(‘새로운 만남을 위하여’)과 지역 문학 무크 ‘마산문화’ 1집(‘겨울 언덕에
서서’)이 간행됐다.
83년 들어서는 ‘실천문학’ 4집(‘삶과 노동과 문학’)을 필두로 ‘우리 세대의 문학’ 2집(‘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과
‘마산문화’ 2집(‘다시 수풀을 헤치며’)이 간행되고, 광주에서 ‘민족과 문학’ 1집(‘희망이여 우리들의 희망이여’), 부산에서 ‘지평’
1집(‘vision 1’)과 2집(‘문학과 삶의 지평을 위하여’), 대전에서 ‘삶의 문학’ 5집이 간행되는 등 전국적 차원에서 문학 무크가
잇따라 창간되는 양상을 보였다.
여기에 ‘시와 경제’ 2집(‘일하는 사람들의 미래’), ‘반시’ 8집(‘반시주의’), ‘민의’ 2집(‘시와 현실’) 등이 속간되고
‘시인’ 1집(‘움직이는 시’)이 창간되는 등 시 동인 무크도 계속 활발하게 간행됐다.
문학 무크지의 이러한 폭발적 발간 러시에는 ‘창비’와 ‘문지’의 폐간에 따른 지면의 상실에 대한 보상이라는 점이 우선
작용했다.
문학 무크가 당시 무크운동의 대종을 이루고 있었지만 문학 무크만으로는 80년대 초반 무크운동의 의미를 다 담아낼 수는 없었다.
81년 9월 처음 모습을 보인 종교 무크 ‘역사와 기독교’ 1집(‘민족주의와 기독교’)은 안병무·서남동 등과 같이 당시 쟁쟁한 민중신학자들이
관여한 깊이있는 종교사상지였다. 이 무크는 82년에 2~4집, 83년에 5~7집이 나오는 등 80년대 초반 3년 동안 무려 7회에 걸쳐 발간되는
저력을 보였다. 또한 각 호의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기독교라는 창을 통해 80년대 초반의 일그러진 역사상황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한편 83년 창간된 ‘공동체문화’와 ‘일과 놀이’ ‘민중’ ‘모퉁이돌’ ‘르뽀시대’ 등은 각자 접근방법은 달랐지만 70년대부터
지식인 담론 속에 등장하기 시작해 한국적 근대화에 대한 대안적 아이콘으로 떠오른 ‘민중’과 ‘민중문화’를 본격적인 주제로 삼아 천착해 나간
무크들이다.
이외에 민중미술운동의 이론적 모색이 시작된 ‘시각과 언어’ 1집(‘산업사회와 예술’)이 82년에 나왔고 83년에는 아동문학에서의
리얼리즘을 지향한 ‘살아있는 아동문학’, 민중불교의 이념을 담지하는 ‘실천불교’ 1집(‘갑시다 중생 속으로’), 그리고 본격적인 사회과학 무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한국사회연구’ 1집이 간행돼 종교·문화·예술·학술 분야까지 무크운동이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신군부의 폭압
아래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견고한 신념과 희망을 잃지 않고 있던 지식인과 민중들이 단지 고통을 토로하는 수준을 넘어 점점 당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필연을 인식하고 여러 분야에서 그 대안을 모색하는 경지로까지 나아가고 있음을 웅변하는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중들의 지칠 줄 모르는 저항을 배경으로 한 이러한 문화적 저항은 결국 84년 유화국면이라는 신군부의 ‘문화통치’를 이끌어냈고
그렇게 완화된 상황에서 ‘현실과 전망’ ‘현장’ 등과 같은 본격적인 종합운동 무크의 출현이 가능해졌다. 마침내 86년 ‘창비’가 복간되고 87년
‘문지’가 ‘문학과 사회’로 재탄생하면서 다시 정기간행물 시대가 도래했다.
백낙청은 “무크시대라 일컬음직한 시기가 무한정 지속되어도 곤란한 일이다. 무크와 같은 일종의 변칙적 출판활동이 이 땅의 문화운동을
계속 주도할 수는 없다”고 함으로써 80년대 초반 무크운동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선을 명확히 그었다. 이에 대해 김정환 등 바로 80년대
무크운동의 태반에서 자기의 세계를 정립해 나간 뒷세대들은 ‘창비’나 ‘문지’ 등을 통한 문화운동이 진지전이었다면 무크운동은 유격전 혹은
기동전이라고 주장했다.
80년대 후반 이래 ‘창비’와 ‘문지’가 다시 몸을 추슬러 굳은 진지를 구축했지만 그러한 정규전이 90년대 이후 상황까지 전부
감당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창비’와 ‘문지’라는 진지는 그동안 너무 비대해져 이제는 대항문화라기보다 스스로 하나의 기성문화이자
문화권력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무크운동은 분명히 80년대 초반의 특수하고 변칙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든 지금 그 유격전적인
감수성과 의식은 인터넷 문화를 기반으로 해 여전히 대항이자 대안으로서 젊은 생동성을 견지하고 있다.
-무크의 효시 ‘실천문학’-
‘실천문학’은 암울한 시대 신군부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민족문학의 존엄성을 지켰다.
고은, 이문구, 박태순, 이시영, 송기원 등 비판적 문인들이 속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주요 멤버들이 발행과 편집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창간호 때부터 계엄사령부의 검열을 받는 등 숱한 고난을 겪었지만 민족지성들의 보금자리로서 문학운동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천문학’은 진보적 지식인뿐 아니라 노동자·농민들의 글도 많이 실어 민족·민중문학을 크게 발전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1985년에는 이른바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편집주간 송기원, 시인 윤재철·김진경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당하고 발행사인 ‘실천문학사’가 등록취소되기도 했다.
80년 3월 ‘서울의 봄’에 무크로 출발해 계간지로 바뀐 85년 가을 폐간됐으며, 88년 계간지로 복간됐다.
=-=-=-=-=-=-=
〈기획·집필에 참여한 사람>
유시춘(소설가) 이우재(자유기고가) 김남일(소설가) 황인성(인권운동가) 정재돈(농민운동가) 한상봉(자유기고가) 김명인(문학평론가) 최민희(민언련 사무총장) 박노승(경향신문 논설위원) 문성현 (" 미디어부 기자)〉
=-=-=-=-=-=-=
[출처 : 경향신문, 2004년 0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