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를 경험한 한국 축구는 어느 정도 성장했을까?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의 유산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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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딩크 이후 아드보카트
감독까지...
4년마다 축구에 환장하는 나라는 많습니다. 월드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월드컵은 4년 ‘마다’가 아니라 4년 ‘동안’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월드컵이 끝나는 순간 차기 월드컵을 위해서 각 나라는
지역 예선을 준비하고 지역 예선을 통하여 본선을 향한 기나긴 항해를 시작합니다. 축구 선진국을 살펴보면 시험에 대해서 평소에 열심히 준비하는
학생처럼 중장기 대책을 병행해서 월드컵을 준비하고 예선전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시험에 임박해서 당일치기에 의존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히딩크라는 과외선생을 통해서 변변치 못한
성적을 내던 우리나라가 4등이라는 성적을 낸 것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는 포르투칼을 상위권으로 올려놓은 쿠엘류라는
과외선생을 불러들였지만 변변치 못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다시금 나이지리아를 올림픽 우승으로 이끌었던 본프레레를 과외선생으로 불러들였지만 항상
히딩크와 비교되었습니다. 본프레레가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찍기와 운이 좌우했다는 평가 속에 과외선생을 카리스마가 있는
아드보카트로 바꾸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새로운 과외선생에 대체로 만족하는 표정입니다.
과연 아드보카트 감독이
남은 4개월 동안 어떤 족집게 전술을 사용할 것인가를 놓고서 축구팬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국민들은 전술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2002년의 영광을 다시금 2006년에 느낄 수 있도록 바라고 있습니다. 4년간의 준비에 비해서 더 나은 성적을 바라는 우리 국민의 심정은 이미
독일에 가 있습니다.
2) 히딩크의
스타일
히딩크가 남겨준 유산 중에 한국축구를 네덜란드화(化)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세계축구의
흐름이 미드필더 진영부터의 압박에 중점을 두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네덜란드의 토탈사커와 조화를 이루면서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체력과 힘이 좋은 유럽의 축구가 강세를 보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체력이
문제라고 생각한 히딩크 감독이 체력훈련을 병행해서 실시한 것은 그만큼 전후반을 팔팔하게 뛸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토끼를 잡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세계의 축구 선진국들이 그 전에까지 생각하고 느꼈던 과거의 한국팀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심어주었습니다. 예전과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 한국팀을 만난 폴란드, 포르투칼, 이탈리아, 스페인은 히딩크가 사용한 변칙공격(체력을 바탕으로 한 전술)이 그 이전의
한국 축구와는 달랐기 때문에 고배의 잔을 마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변칙공격은 한번은 통합니다. 그런데 같은 방법이 두 번,
세 번 통할 것인가에 물음표를 찍어봅니다. 이미 세계 4강이라는 성적을 낸 한국의 축구에 대해서 월드컵을 앞둔 세계 여러나라들, 특히 우리와
경기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 팀들은 한국 축구의 분석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히딩크의 스타일이 계속적으로 한국 축구의 대명사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맨 처음 의문점을 가진 사람이 바로 포르투칼의 쿠엘류였을 것입니다. 아니면 쿠엘류를 불러들인 축구협회였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축구협회가 계속 한국 축구 스타일을 히딩크 스타일로 고집하려고 했다면 히딩크 스타일의 감독을 불러들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축구협회는 쿠엘류를 선택했고, 쿠엘류는 히딩크의 방법이 아닌 자신의 방법으로 한국 축구를 변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많은 축구팬들의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쿠엘류와 그 뒤를 이은 본프레레 감독은 히딩크의 방법이 지속적인 기량의 상승을 부르지 않는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히딩크 감독은 이후에 단기간의 토너먼트에서 거의 기적같은 승리를 자주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그 최고의 작품은 호주의 월드컵 진출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3) 히딩크의
유산
히딩크의 유산 중 하나는,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중앙의 미드필더부터 압박을 가하는 축구를 최고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네덜란드의 토탈사커가 변형되어서 히딩크를 통해서 전수되었습니다. 그러한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수는 퇴물로, 실력이 없는 선수로, 가치 없는 선수로 평가되고 맙니다.
그러한 스타일에 눈이 맞춰진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윤정환, 최용수는 이미 가치 없는 선수로 잊혀져가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축구의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히딩크를 통해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히딩크가 우리나라에게 안겨준 최고의
유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전에까지는 강팀을 만나면 비기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었던 우리가 대등하게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히딩크에게 고마워해야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강팀을 만나서 이긴적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감의 차원에서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히딩크 스타일이 교과서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우리나라의 축구팬들은 어느 순간부터 히딩크
수준과 다르면 여차없이 무능한 감독, 3류 감독이라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제가 축구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히딩크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히딩크와는 다른 점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쿠엘류나 본프레레의 경우와 같이 히딩크를 보는 것처럼 아드보카트를
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쿠엘류와 본프레레가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감독을 그만 두게 된 것이 어쩌면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야 만족하는 한국 축구계의 수준을 대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4년전 히딩크는 ‘오대영’이라는 치욕의
별명을 줄기차게 받았지만, 축구협회의 아량(?)과 인내심(?) 속에 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을 냈습니다.
솔직히 2002년 세계
4강은 너무 치고 올라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과연 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은, 개최국의 이점, 붉은악마의 응원, 그리고 히딩크의 족집게 과외가 선수들에게 절묘하게 적용이 되어서 이루어낸 성과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세계 4강은 우리의 눈높이만 높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본프레레 감독이 한국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도, 감독의
힘이 아니라 선수들의 힘으로 진출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떠난 것에 대해서 우리는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다 지나간
이야기를 왜 지금 꺼내는가 하는 불만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아드보카트 감독과 그 이후의 사령탑을 맡을 사람을 위해서도
우리는 너무 단기간에 승부를 보는 것에 목말라 하는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바램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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