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자료/미디어 이야기

연개소문, 단재 신채호는 어떻게 보았을까?

*미카엘* 2006. 8. 14. 00:40
연개소문, 단재 신채호는 어떻게 보았을까?
드라마 <연개소문>을 보며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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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BS 대하 사극으로 <연개소문>을 방영하고 있는데, 연개소문에 대하여 야사의 기록만을 참고했다는 비난도 적지 않은 듯하다. 연태조의 아들 연개소문이 신라 땅에서 자라난다는 설정 자체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논쟁거리를 던져주었다.

역사적으로 김유신과 연개소문이 청년 시절을 함께 보냈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연개소문의 청년시절을 보면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가 머리에 떠올랐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상고사>를 보면 유독 그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하고 싶은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연개소문’(淵蓋蘇文)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연개소문은 ① 고구려 9백 년 이래로 전통의 호족공화(豪族共和)의 구제도를 타파하여 정권을 통일하였고, ② 장수왕 이래 철석같이 굳어온 서수남진(西守南進) 정책을 변경하여 남수서진(南守西進) 정책을 세웠고 그래서 국왕 이하 대신 호족 수백 명을 죽여 자기의 독무대로 만들고, 서국(西國) 제왕 당태종(唐太宗)을 격파하여 지나 대륙의 침략을 시도했는데 그 선악현부(善惡賢否)는 별문제로 하고 아무튼 당시 고구려뿐 아니라 동방 아시아에 전쟁사 중에 유일한 중심 인물이다”(조선상고사, 제11편 고구려와 당의 전쟁).

신채호의 설명에 의하면 연개소문의 성은 ‘연’(淵)이었지만 당시에 당나라 사람이 자기들의 고조(高祖)의 이름 연(淵)을 피하여 ‘천’(泉)으로 대신 표기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신채호 선생은 이러한 연개소문은 지나(당나라)를 침략하려고 서유(西遊)를 감행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갓쉰동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연국혜라는 재상의 아들 갓쉰동은 15년 동안 부모의 곁을 떠나서 자라야 액을 면할 수 있다는 도사의 말대로 등에 ‘갓쉰동’이라는 이름을 새겨서 보냈고, 갓쉰동은 원주(原州) 학성동(鶴城洞)에서 장자(長者) 유씨(柳씨氏)의 집에서 자라게 되었다. 15년이 지나 장자의 세 딸 문희, 경희, 영희 중에 영희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갓쉰동은 늘 자신의 나라를 침공하는 달딸국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름을 돌쇠로 바꾸고 달딸국으로 들어가 달딸국왕의 가노(家奴)가 되어 왕의 신임을 받았다. 그런데 왕의 둘째 아들이 갓쉰동을 범상하게 여겨서 그를 제거하려고 했으나, 갓쉰동은 달딸왕의 공주의 도움으로 달딸국을 탈출한다. 달딸의 둘째왕자가 공주의 목을 베었고, 갓쉰동은 고국에 돌아와 과거에 급제하여 영희와 결혼하고 달딸을 정벌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연개소문이 지나를 정탐한 전설의 일단(一段)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갓쉰동은 곧 개소문(蓋蘇文)이니 개(蓋)는 갓으로 읽고, 소문(蘇文)은 쉰으로 읽을 것이며, 국혜는 곧 남생(男生)의 묘지(墓誌)에 보인 개소문의 아버지 태조(太祚)니... 달딸국왕은 곧 당고조(唐 高祖)요 둘째왕자는 곧 당고조의 둘째아들 태종이니...”

바로 ‘갓쉰동전’을 참고하여 연개소문의 청년시절을 그리고 있는 SBS 대하 사극 ‘연개소문’이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연개소문이 중국에서 돌아온 뒤, 중국에서는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섰다. 이후 당나라의 태종이 ‘정관의 치’를 펼치며 세계 제국을 꿈꾸고 있을 때, 고구려는 (신채호 선생의생각으로) 하늘이 내려준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을지문덕과 함께 수의 군사를 물리친 공을 세운 왕의 아우 건무는 북진남수(北進南守)의 을지문덕과는 달리 북수남진(北守南進)을 주장하고 있었다. 영양왕이 죽고 건무(영류왕)가 즉위(기원 618년)하자 고구려는 중국과 화해를 꾀하고 남쪽으로 자주 군사를 일으켰다.

기원 646년경 서부(西部)의 살이(薩伊) 연태조가 죽으니 아들 연개소문이 살이의 직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늘 격렬하게 당을 치기를 주장하므로, 영류왕과 모든 대신과 호족들은 다 연개소문을 평화를 파괴할 인물이라고 위험시하고 그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이에 연개소문이 선수를 쳐서 군사를 일으키고 왕과 대신들을 몰살하고 정권을 잡게 된다. 이러한 혁명을 통하여 연개소문은 정권과 병권을 장악하여 실질적인 대권을 손에 쥐게 된다. 신채호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연개소문은 고구려 9백 년 동안의 장상 대신들뿐 아니라 고구려 9백 년 동안의 제왕도 가지지 못한 권력을 쥔 사람”이 된 것이다.

연개소문의 필생의 목적은 당을 고구려의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당나라의 침공을 방어하는 동시에 침공하여 당태종 이세민을 사로잡을 계획까지 시도한 웅대한 기상을 품었던 영웅이었지만, 후대의 신라가 연개소문을 백제의 원조자라 하여 그에 대한 기록을 많은 부분 삭제하고 왜곡했다고 신채호는 말하고 있다.

망국의 한을 품고 일생을 조선의 독립과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한 단재 신채호 선생에게서 연개소문은 고구려는 물론 중국까지 평정할 위대한 인물로 재구성되었다. 100% 따르지는 않았지만 현재 방영되고 있는 SBS 대하 사극 <연개소문>은 이러한 신채호 선생의 주장을 많이 참고한 흔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 <연개소문>에 대하여 우리 민족의 억울함을 대변하는 통쾌한 사극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나친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고구려 건국신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MBC의 <주몽>이 시청률 고공비행을 하는 반면, <연개소문>은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나로서는 오히려 <주몽>이 역사보다는 허구적 상상력이 훨씬 많이 가미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재 신채호의 역사 서술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의 기록과 삼국사기의 기록만을 근거로 연개소문에 대한 평가를 낮게 해서도 안된다. 그런 점에서 <연개소문>은 우리 민족이 지난 천 오백년 동안 외면해왔던 영웅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살펴본 연개소문이라는 인물은 권력에 눈이 멀어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은 아니다. 그는 웅대한 고구려의 기상을 펼치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고, 거대한 중국과의 싸움에서 한 치의 양보나 두려움 없이 정면 대응한 영웅이다.

<연개소문>을 방영하면서 오픈한 홈페이지(http://tv.sbs.co.kr/ygsm/index.html)는 역사적 자문과 함께 다양한 자료를 제시해 주고 있다. 그 홈페이지에서는 <연개소문>의 기획의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마지막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 드라마는 연개소문을 중심으로 그가 살았던 격동의 세월을 극화하여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묻혀있는 고구려의 역사를 되살리고자 한다. 아울러 민족의 혼과 정기를 일깨워 세계를 향해 웅비할 수 있는 대한민국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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