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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캐나다 ①] ‘영어울렁증’과 함께한 캐나다 여행기

*미카엘* 2006. 11. 27. 06:28
복잡하고 까다로운 캐나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다.
[안녕 캐나다 ①] ‘영어울렁증’과 함께한 캐나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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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말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허울좋은 '재충전'의 시간에 돌입한지 한 달이 훨씬 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가족들에게 2007년부터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하겠다고 해서 3개월(10, 11, 12월)의 재충전 생활에 돌입했습니다. 말이 재충전이지 백수 생활에 돌입한 것이지요.

아내는 모처럼 얻은 3개월의 자유를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계획을 세워서 보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침 아내가 비행기 티켓을 싸게 구할 수 있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외국 여행을 하면서 머리도 식히고, 견문도 넓히고, 경험을 쌓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럴듯한 제안이라 생각하고 친한 후배들이 유학중인 캐나다에 갔다 오기로 했습니다. 연락을 받은 후배들은 오기만 하면 먹는 것과 자는 것은 책임지고 해결해 준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하기 전에 꼼꼼하게 준비한다지만 나로서는 그런 꼼꼼한 성격을 타고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외여행이라곤 신혼여행 경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의 목적지인 캐나다에서 생활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많은 부분 의존해야 했습니다. 여행 이틀 전까지 말로만 캐나다 간다고 하면서 정작 준비는 하나도 안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아내는 '교회 수련회나 MT를 가도 그렇게 준비하지는 않는다'며 걱정했습니다.

캐나다의 토론토로 가기 위해서 준비한 티켓은 캐세이 퍼시픽(Cathay Pacific) 항공사 티켓이었습니다. 홍콩을 기점으로 활동하는 항공사였기 때문에 인천에서 토론토로 곧장가는 직항편은 없고 홍콩에서 갈아타는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홍콩으로 가는 데에는 한국인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지만, 홍콩에서부터는 영어와 중국어만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무수히 무협영화와 홍콩액션영화를 봤지만 중국어는 ‘따꺼’, ‘워 아이 니’ 정도밖에 모르는 수준이었고, 영어 역시 중학교부터 배웠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한국어 맞춤 발음 구조와 '영어울렁증'으로 출발 전부터 걱정이 되었습니다. 영화 '터미널'을 보면 주인공(톰 행크스)이 공항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생활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영어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나에 대하여 잘 아는 친구들은 혹시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지 못하고 국제 미아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의 걱정은 내가 가지고 있는 티켓은 비행기의 좌석에 여유가 있어야 발급받는 100% 오픈티켓(open ticket)이었기 때문에 행여 좌석의 여유가 없으면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에는 한국말로 좌석 여유를 확인할 수 있지만 캐나다에서 되돌아 올 때에는 영어로 확인을 해야 합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티켓이 일반 티켓보다 4분의 1 수준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출발 시간은 11월 7일 오전 10시 20분이었습니다. 여행 전날 본격적으로 짐을 정리하다 보니 챙기지 않은 짐이 많이 있었습니다. 별수 없이 챙기지 못한 것은 토론토에 있는 후배 기숙사(토론토의 대학생을 위해 제공하는 가족 기숙사)에서 현지 조달하기로 하고 7일 아침에 새벽같이 출발하기로 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혹시 몰라서 알람을 세 개나 맞춰놓고 잤는데, 너무 긴장해서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까지 잠을 설치다가 잤기 때문에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늦잠을 잤습니다. 급한 마음에 허둥지둥 대충 씻고서 가방을 챙겨들고 태릉역의 공항리무진을 타는 곳으로 나가서 7시 경에 공항리무진을 탔습니다.

출발 전에 가장 걱정되는 것은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탈 때 짐을 찾아서 다시 갈아타는 비행기 티켓을 끊으면서 붙여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천공항에서 그러한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홍콩에서 특별한 절차 없이 비행기만 갈아타면 캐나다 토론토에서 짐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홍콩에서 갈아탈 비행기 좌석도 미리 확정해 주었습니다.

8시 3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티켓을 발급받기 위해서 출국 심사대에 올랐습니다. 금속성 물질을 바구니에 올려놓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면세점에 들러서 캐나다의 후배가 부탁한 화장품을 사서 챙긴 후에 서둘러 출발시간(10시 20분)에 맞춰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비행기는 출발시간보다 40분이 지연되어 11시에 홍콩으로 출발했습니다. 인천을 떠나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라 한국 사람들이 많았고, 기내 승무원 중에서 한국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홍콩에 도착해서 두어 시간 기다리다가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토론토로 가는 CX828 비행기를 타기 위해 갈아타는 곳으로 갔습니다. 홍콩에서 미국이나 캐나다로 가는 승객들은 다른 곳으로 가는 승객들보다 철저한 검문검색을 다시 한 번 거쳐야 했습니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산 화장품을 보더니 자기들끼리 중국말로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비닐팩에 담아주었습니다.

CX828 비행기를 탑승한 이후부터는 한국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승객이 중국 사람이었습니다. 기내 방송도 영어와 중국어로만 안내해 주었습니다. 영어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서 대충 분위기를 봐서 스스로 적응해 나가야 했습니다.

일단, 시차 적응을 위해서 경유하는 공항인 앵커리지까지는 무조건 자기로 마음 먹고 잠을 청했습니다. 도중에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음식도 그다지 몸에 맞지 않았지만 먼 여행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주는 대로 받아먹었습니다. 앵커리지 공항에서 비행기는 1시간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비행기 안에서 멍하니 창밖만 바라봤습니다. 앵커리지 공항을 출발할 때의 현지 시간은 아침 9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 홍콩에서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 안... 앵커리지에 도착하기 전 창문으로 바라본 풍경은 망망대해(茫茫大海)가 아닌 망망대운(茫茫大雲)이었습니다.
ⓒ 이인배


▲ 앵커리지에 도착해서 1시간가량 비행기 안에서 기다렸습니다. 홍콩에서 앵커리지까지의 기나긴 여행 덕분에 한시간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 이인배

 
▲ 앵커리지를 출발해서 토론토로 향했습니다.
ⓒ 이인배


비행기 좌석에 달려있는 자그마한 모니터를 통해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부터 드라마까지 제공하고 있었지만 모두 다 영어와 중국어로 서비스 되어 있었기에 거의 무성영화를 보는 수준이었습니다. 수많은 채널 중에 유일하게 한국 영화 하나를 서비스 하는 곳을 발견해서 <청춘만화>라는 영화를 시청했습니다. 물론 자막은 중국어와 영어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중국어로 더빙된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도 보았습니다.

▲ 기나긴 비행 시간동안 유일하게 나의 친구가 되어준 모니터...
ⓒ 이인배


앵커리지부터 토론토까지는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8시 20분이었습니다. 거의 2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서 심사대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는 예상했던 질문(왜 왔냐? 얼마동안 머물꺼냐?)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당신이 오픈 티켓을 가지고 있느냐?"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냐?"

한국말로 대답을 하면 쉽고 간단할 수 있었지만, 영어로 대답해야 하기 때문에 설명하기가 대단히 힘들었습니다. 대충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나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에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외국인 앞에 서니까 알고 있던 영어 단어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생각같아서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당신이 알아서 뭐할꺼냐?"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대충 손짓 발짓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는 어딘지 모르는 커다란 장벽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나로서는 정확한 영어 전달이 문제였고, 캐나다 공항 직원은 승객의 입장에서 들어주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사무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다소 어렵고 복잡한 절차였지만, 입국을 허락받고 8시 40분 경에 공항 대합실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미리 마중나오기로 약속한 후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거의 50분이 지난 9시 30분에 후배들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말이 50분이었지 실제로는 거의 5시간을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비행기가 토론토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 시간이 오후 8시 50분이었기 때문에 입국 절차를 받고 나오는 시간을 9시 30분경이라고 예상하고 천천히 나온 것입니다. 덕분에 8시 40분부터 9시 30분까지 낯선 이국땅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후배들이 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오후 11시가 다되어 후배가 거처하는 기숙사에 도착했습니다. 인천을 떠나 홍콩을 거쳐서 토론토에 도착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과 함께 모든 과정 속에 어리버리한 나의 행동이 떠올라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중학교부터 시작한 영어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좌절감으로 2주간의 캐나다 생활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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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캐나다 여행에 대해서 12편으로 나누어 올릴 예정입니다.
1. 인천을 출발하여 토론토에 도착하기까지
2. 토론토 거리의 풍경
3. 코리아타운, 바타슈어 뮤지엄
4. 퀘벡 여행 (1) 몬트리올
5. 퀘벡 여행 (2) 퀘벡시티
6. 퀘벡 여행 (3) 오타와
7. 나이아가라 폭포
8. ROM 박물관, CN 타워
9. 카사로마성, AGO 미술관
10. 사이언스 박물관
11. 산타 퍼레이드
12.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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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시골아이고향, 미디어다음, U포터뉴스에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