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iban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원리주의 무장 정치단체. 1996년 9월 수도 카불을 점령, 14년 동안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4년 동안의 무자헤딘(무장 게릴라 조직) 권력투쟁을 종식시킨 뒤 실질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다스려왔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미국테러대참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라덴을 계속 비호했기 때문에 그 해 10월 7일부터 미국아프간공격을 받았다. 11월 국내 반대 세력인 ‘북부동맹’의 공격으로 수도 카불이 함락되고, 최고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 등 탈레반 지도부는 남부 칸다하르로 옮겨 항전했으나 12월 그곳에서도 떠나 지하로 숨었다. 본디 탈레반은 1994년 10월 2만 5000여 명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칸다하르에서 결성한 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단체로,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인종인 파슈툰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탈레반은 그들의 파슈토어로 이슬람 신학생을 뜻한다. 탈레반 정권은 순수 이슬람 국가 건설을 꾀하였고, 여자의 노동 종사, 통학 금지 등 극단적인 계율의 준수를 국민에게 강요했다. 또한 이슬람 세계의 전통적인 통치체제 ‘칼리프제’의 부활을 꾀하였으며, 오마르를 이슬람의 예언자 무하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프로 추대하기도 하였다. 2001년 3월에는 군대를 동원해 로켓과 탱크 등으로 아프가니스탄 내 불교 유적과 불상들을 부수는 등 유적 파괴 행위를 공개적으로 일삼아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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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1994년 출범한 수니파 강경 이슬람 정치단체이다. 출범 직후 곧바로 아프간 전역을 접수한 이들은 오랜 내전을 끝내고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지나친 이슬람 강경 원칙론으로 여성의 사회참여 제한, 세계적인 불교유적 파괴, 유흥문화 원천봉쇄 등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책으로 스스로 붕괴의 원인을 쌓아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미국 등 서방세계에 의해 악의 축으로 규정될 만큼 외부의 그들에게 악행을 행한바는 없다. 아프가니스탄 내정에 국한된 일을두고 미국이 나서서 빈라덴을 은신시키고 있다는 주장으로 한 나라를 통째로 거덜낸 것이, 지난 2001년 9·11 사태 이후의 아프간 침공인 것이다.

 

탈레반이란 1994년 10월, 2만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결성한 수니파()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을 가리킨다.

결성 당시부터 군정세력으로 출발해 1994년에 이미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80% 정도를 장악한 뒤 이듬해 수도 카불(Kabul)을 점령, 14년간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4년 동안의 모자헤딘 (Mojahedin:무장 게릴라 조직) 권력투쟁을 종식시켰다.

이어 과도정부인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하면서 결속력 있는 세력으로 등장, 아프가니스탄 내 반군 조직을 무장해제시킨 뒤 약탈과 강도, 부정 부패를 없애는 데 힘을 쏟는 한편, 일상 상업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전통적인 아프가니스탄 가문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내전이 계속되면서 국가 접수가 어려워지자 지역 지휘관들과 전략적 협정을 체결, 지역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위법 사항과 이에 따른 각종 인권침해를 도외시함으로써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더욱이 이슬람교에 대한 엄격한 해석으로 인해 갈수록 사회 차별이 심해지고, 여학교 폐쇄, 텔레비전 금지, 가혹한 이슬람식 처벌제도 부활, 아동 학대 등 많은 부작용을 낳음으로써 국제사회
의 비난을 샀다.

또 2001년 3월에는 군대를 동원해 로켓과 탱크 등으로 아프가니스탄 내 불교 유적과 불상들을 부수는 등 유례 없는 유적 파괴 행위를 공개적으로 일삼기도 하였다.

더욱이 2001년 9월 11일 발생한 미국대폭발테러사건의 배후자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국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과 그의 추종 조직인 알 카에다(Al-Queda)를 숨겨둔 채 미국에 인도하지 않음으로써
미국과 동맹국들의 반발을 산 끝에 결국 아프가니스탄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같은 해 10월 7일부터 시작된 미군과 영국군의 합동 공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공군기지와 지휘본부, 방공망과 방송시설이 파괴되었음에도 여전히 빈 라덴을 인도하지 않고, 계속 항쟁 의지를 밝히면서 성전
을 촉구하였다.

2001년 10월 말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고,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미국과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북부동맹의 반격도 치열해 탈레반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가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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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은 이슬람 학생조직으로 출발한 강경 수니파 무장 정치세력입니다.

탈레반은 현지어로 `구도자' 또는 '학생'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요, 지난 1994년 옛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뒤 남부 칸다하르주에서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라는 젊은 수니파 신학자에 의해 조직됐습니다.

펜 대신 총을 든 근본주의 학생 2만5천명으로 출발한 탈레반은 군벌 세력에 대항하면서꾸준하게 영향력을 확장시켰고, 지난 1996년 아프간의 실질적인 통치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탈레반은 집권 과정에선 오랜 내전에 시달린 아프간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집권 이후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앞세운 공포정치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일절 금지시켰고 범죄자에 대해서는 신체 절단형과 공개처형을 실시했습니다.

특히 이슬람 율법의 `우상금지'를 내세워 바미얀 석불 등 인류 문화유산을 파괴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것은 지난 2001년 9.11 테러 직후입니다.

당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 배후로 당시 아프간에 은신하고 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면서 탈레반 정권에 신병 인도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탈레반은 이 요구를 거부했고 미국은 영국과 함께 아프간 공습에 나서 두달 만에 탈레반을 권좌에서 몰아냈습니다.

이후 탈레반 지도자 오마르를 비롯한 잔당 세력은 미국의 추적을 피해 파키스탄 접경 산악지역에 은신하면서 세력회복에 나섰고 아프간 남부와 동부에서는 과거의 세력을 회복하는 등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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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한국인 인질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중재를 맡고 있는 아프간 부족장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아프간은 99% 이상이 이슬람교인 전통적인
이슬람 국가이다. 아프간에는 여러 종류의 부족이 있지만 전체 인구의 96% 정도를 7개 부족이 나누어 차지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부족은 ‘파슈툰’으로서 전체 인구에 43%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타지크가 27%, 하자라 9%, 우즈베크가 4%로 뒤를 이었다.

이번 사건을 주도한 탈레반은 파슈툰 종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칸다하르 주를 중심으로 아프간 남부 산악지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번 납치가 일어난 가즈니 주는 하자라 부족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역시 탈레반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다.

아프간은 고대 이란에서 독립해서 나왔다. 이란처럼 여러 부족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형성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은 농민들로서 부족 단위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개인 스스로도 자신을 부족의 일원으로 생각해 국가의 영향보다 부족지도자의 영향력이 더 크게 미치게 된다. 이들은 다른 부족간에는 서로 결혼도 하지 않으며 사업상 거래조차 마다한다. 험한 산악지형으로 인한 부족들간의 고립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철저하게 부족 중심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활환경이다.

19세기 들어 왕권쟁탈을 위한 내전이 확산되고 수차례의 쿠데타와 1978년 옛 소련의 침공까지 받으면서 중앙정부의 지배력을 상실되어 갔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무장 게릴라 조직 ‘
무자헤딘’의 반격으로 친소정권이 물러나고 타지크 출신의 부르하누딘 랍바니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족간의 내전은 끊이지 않고 그 가운데 부족장들의 영향력을 점차 확대되어 갔다.

특히 2001년 한국인을 납치한 무장단체 탈레반이 축출된 뒤 부족장과 종교지도자가 주도한 원로회의 ‘로야지르가(대회의)’가 결성돼 이슬람 성법에 근거를 둔 헌법을 만들고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로야지르가는 헌법을 개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하며 전쟁의 선포 등 국가의 운명에 관계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최고결정기관이다. 이 기관은 명확한 통치체제가 성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아프간 국민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하미르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강력한
대통령제를 주창한 이유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로야지르가의 부족장과 종교지도자, 군벌 등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처럼 아프간 국민들에게 부족장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출처 : 다니
글쓴이 : dani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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