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 양탄자에 대한 고찰]
 
1. 손오공의 근두운을 뛰어넘는 중동지방의 새로운 브렌드... [날으는 양탄자]
 
신밧드의 모험... 알라비바와 40인의 도적... 여기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아이템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날으는 양탄자]... 이 아이템은 중국의 손오공이 타고 다녔다는 [근두운]이 비현실적인 것을 고려하여 약간 현실적으로 탈바꿈한 아이템이 아닌가... 이렇게 필자는 보고 있다...

참고로 근두운은 운전을 순전히 발로 해야 한다... 근두운을 탔을 경우에 (오른손잡이의 경우는 오른쪽 발을 앞으로) 앞쪽으로 내딛은 발을 가지고 운전을 하기 때문에 나중에 한쪽 발만 기형적으로 발전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이것은 [근두운]이 기능의 특수함에도 불구하고 대중화에 실패한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제조도 힘들다... 구름을 떼어다가 만들기기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날으는 양탄자]는 일단 발의 무리를 없애고 대신 손으로 운전을 하기 때문에... (간혹 말을 알아듣는 특수한 고급 양탄자가 있지만... 보급형은 손으로 운전했을 것이다...) 세밀한 운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글은 [날으는 양탄자]... 특별히 말을 알아듣는 특수 고급형 양탄자가 아닌 보급형 양탄자를 기본으로 작성했음을 미리 알려둔다...
 
2. [날으는 양탄자]의 제조상의 두가지 기술적 혁신
 
우리가 날으는 양탄자가 등장하는 만화를 보면 양탄자 앞이 항상 말려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아마도  두가지 측면에서 탑승자를 생각한 제조사의 배려인 것 같다...
 
1) 탑승자를 고려한 고객 위주의 제작
 
고공 비행을 함에 있어서 앞에 약간 말려 올라간 부분은... 무릎을 보호하는 보호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에 [안전벨트]이 개념이 없었을 당시를 고려해 볼때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탑승자의 위치가 뒤로 갈수록 앞에 말려 올라간 부분이 길어기지 때문에 바람을 막아주는 보호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판매자는 카달로그를 펴놓고 설명함에 있어서 남쪽의 따뜻한 지방을 비행할 경우에는 탑승자(운전자)가 최대한 앞쪽에 앉아야 하며, 북쪽의 추운 지방을 비행할 경우에는 탑승자가 뒷부분에 앉아야 비교적 편한 비행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해 주어야 한다.
 
2) 운전자를 위한 특별한 배려 - (인체공학적 설계)
 
두번째 제조사의 배려는 운전(?)을 위한 제조사의 배려인 것 같다. 앞이 말려있는 양탄자에는 항상 어깨넓이 부분에 운전자가 잡을 수 있도록 특수 가공 처리를 해야 한다. 인체공학적 설계를 위해서는 거친 소재 대신에 부드러운 소재로 처리해야 함은 물론이고... 추운 지방의 비행을 대비해서 오토바이에서 볼 수 있는 장갑(?)이 탈부착이 가능해야 한다. 참고로 운전할 경우... 좌회전 할때는 오른쪽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왼쪽 손을 당겨야 한다... 우회전 할시는 반대로...
 
3. [날으는 양탄자] 운전에 필요한 조건
 
그렇다면 양탄자의 운전에 필요한 조건은 어떤 경우였을까??
당시에 양탄자 운전은 아마도... 양손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고... 손가락으로 양탄자를 잡았을 때 힘이 비행중 바람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자유자재로 양탄자를 당겼다 밀었다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장시간 앉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 양탄자 운전면허 시험이 있었다면... 가부좌를 틀고 오래 앉아 있기... 선풍기 앞에서 양탄자 들기... 등의 과목이 있었을 것이다. 
 
4. [날으는 양탄자]를 소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렇다면 이야기 속에서 [날으는 양탄자]를 소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일단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날으는 양탄자]를 소유한 사람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에게 양탄자를 공짜로 얻는 경우가 많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정서와 비교해서 추리해 본다면... 양탄자를 소유한 사람은 대머리였을 가능성이 많다(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 그리고 젊은 사람, 혹은 주인공이 소유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나이에 대머리로서 성공한 주인공...
함께 동승한 사람(만화를 보면 항상 공주임... -_-;;;)은 비행중 안전을 위하여 운전자의 옷을 붙잡고 있거나... 양탄자를 붙잡아야 하는데... 아마도 여성의 손톱 길이에 비례하여 양탄자의 올이 많이 빠져나왔을 듯... 따라서 공주를 많이 태우면 태울수록 운전자이 옷이 늘어나거나... 양탄자의 올이 빠지기 때문에... 옷집이나 양탄자 수선집에서 AS를 해야한다...
(내가 당시에 태어났더라면... 운전자를 위한 특수한 옷을 제조해서 장사를 했을 것이다... 등에 손잡이가 달린... ^^;;;)
그리하여 중동지방 옷수선집이나 양탄자 가게에 자주 수선을 맡기는 사람은 날으는 양탄자를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필자는 판단한다... ^^;;;
 
5. 결론에 대신하여...
 
결론은...
중동지방에 살면서... 손가락의 힘이 유난히 발달되어 있고... 앉은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으며... 젊은 나이에 대머리의 가능성이 있으며... 옷 중에서 상의(그것도 등짝 부분)를 자주 수선 맡기거나... 양탄자 올을 자주 수선하러 오는 사람은... [날으는 양탄자]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
 
이 글의 저작권은 엠파스 블로그 [수호천사의 하늘 바라보기]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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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커피전문점을 나오니 갈데가 없었다. 가는 곳마다 돈이 드니... 이럴줄 알았으면 커피전문점에 계속 있을걸... 그러나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마음만 더 아프다.

 

“오랜만에 한강 고수부지나 가자.”
“그러지뭐.”

 

나의 제안에 정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신사동 사거리에서 고수부지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렸다. 해는 어드덧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한강물에 비친 황혼은 낭만 그 자체였다. 이러한 낭만을 칙칙한 정수 녀석과 느끼다니... 아마 정수도 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어느새 정수는 캔맥주 두 개를 사왔다. 4월의 저녁이라 약간 쌀쌀했지만, 태양빛의 흔적은 아직 우리를 따사롭게 감싸주고 있었다.

 

“정수야, 저기 한남대교 보이지? 저기 아래가 내가 태어난 곳이야.”
“형, 그 얘긴 수십번도 더 들었어.”
“벌써 28년전 이야기다. 내가 70년생이니... 그래도 아직 이렇게 반백수 생활을 하니...”
“형은 그래도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잖아.”
“2002년 월드컵이 열릴 때, 보기좋게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꺼야. 그때 여기에 다시 와야지. 성공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오지 않을꺼야.”
“형, 지난주에도 여기에서 그런말 했잖아. 혹시 캔 하나 먹고 취한 건 아니지?”

 

그렇다. 취한게 아니라 취한척 하고 싶었다. 인생에서 마땅한 길이 안보이는 이 시점에서 엄청 취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취하는 것도 두려워서 고작 캔 하나 마시고 취한 척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느껴가며 들어간 대학과 대학원 생활... 거기에서 건진거라곤 부조리와 비인간적인 사회를 보는 눈과, 그러한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을 발견한 것뿐이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12시가 넘어서였다. 이러한 늦은 귀가에 면역이 되신 듯 어머니는 졸린 듯한 눈을 비비시며 문을 열어주었다. 이제 12시가 지났으니, 내일이면 혜선이를 만나는 구나. 왜 내가 일곱 살 어린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 긴장해야 되지?

 

어제 늦게 들어온 관계로 늦잠을 자버렸다. 상철이가 11시경에 전화를 해주었다.

 

“세훈아 아직도 자는 거냐? 내가 모닝콜이 되었네...”
“상철이구나.”
“별일없으면 두시까지 올림픽공원으로 나와라.”
“왜?”
“오늘 하루 모델좀 되주라. 내가 사진기를 어디서 구했거든.”
“모델료는?”
“사발면 하나.”
“관둬.”
“그래, 인심썼다. 거하게 떡복기 1인분 내지.”
“정문에서 두시다.”
“늦지 마라.”

 

꼭 약속시간을 잡을 때, 늦지 말라고 당부한 녀석이 늦는다. 두시에 맞춰서 공원 정문에 도착했는데, 상철이는 20분이나 늦었다.
두어시간동안 사진도 찍고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아파서 벤취에 앉았다.

 

“여기에서 쉬었다 가자.”
“그건 그렇고 세훈아, 어제 누구랑 있었냐?”
“정수랑 있었어.”
“그녀석은 왜 너를 졸졸 따라다니는거냐?”
“몰라, 아마 나를 좋아하나봐... 난 왜 이렇게 남자들에게만 인기가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상철이 너도? 안돼! 우린 사랑하기에는 너무 힘든 난관이 있어. 난 도저히 못하니까 니가 수술해라. 요즘에는 공짜로 성전환수술 해주는 곳도 있데.”
“아까 먹은 떡복기가 곤두선다.”

 

다른 일에 몰두했을 때는 까맣게 잊어먹고 있던 것들이 차분한 생각을 요구하는 시간에 되살아 나곤 한다. 혜선이와의 만남...

 

“야, 상철아 너 알지?”
“뭘?”
“혜선이 말이야. 송혜선.”
“아... 그애? 알지.”
“혜선이가 또 삐삐쳤다.”
“그래서 뭐래?”
“한번 만나자고 했어.”
“걔가 너랑 몇살차이더라? 너가 70이고, 걔가 77이니...”
“그렇구나, 어제 삐삐의 번호가 7077 이었어. 그런 오묘한 뜻이 있었네... 내일 만나자고 했는데, 어떻게 하지?”
“너무 나이차이가 난다. 너가 대학교 1학년때 6학년이었다는 거잖아.”
“난 재수해서... 내가 대학교 1학년때 걔는 중1이야.”
“이제, 걔는 잊어버리고 새로운 너의 삶을 찾아야지.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내가 언제 걔를 못잊었다고 그래?”
“넌 만날때마다 혜선이 얘기 안하고 지나가는 법이 없었어. 그건 못잊고 있다는 증거야.”
“짜식, 갖다 붙이긴.”

 

그렇다. 혜선이와 헤어진지 6년이 흘렀건만 나는 아직도 6년전의 삶을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97년의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아직도 92년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혜선이와의 만남의 날이다. 영풍문고 음반코너에서 2시에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보다 1시간 먼저가서 책좀 보다가 음반코너로 향했다.

 

‘아직 안 왔네... 여자들은 꼭 약속시간보다 10분정도 늦는다니까...’

 

2시가 조금 지나서 테이프를 구경하던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곤색 가방을 두 어깨에 매고 머리를 짧게 깎은 한 소녀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혜선이냐? 정말 머리를 짧게 깎았구나. 몰라보겠다.”
“제가 늦었죠? 언제 오셨어요?”
“응... 10분전에 왔지. 그건 그렇고, 점심은 먹었냐?”
“예...”

 

순간, 괜히 만나자고 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예뻐진 혜선이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커피전문점에서 이야기 할 때, 달라진 그녀의 모습에 한동안 바라보고만 있었을 때도 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냈어. 너는 어떻게 지냈냐?”
“그저 그래요.”

 

그 뒤로 우리는 지나온 6년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 함께 지냈던 짧은 순간을 이야기하며 즐거워 했다. 어느덧 시간이 5시를 향하고 있었다.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카운터 아가씨한테 혼날 것 같다. 우리 나가자.”

 

을지로에서 종로 1가를 지나 광화문으로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화문에서 그녀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우연하게 내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사람은 때로는 자기의 감정에 솔직할 필요가 있어. 사람들은 그 때를 모르고 나중에 후회하기도 하지.”
“그런가요?”

 

아마 이 말이 그날 헤어지는 마지막 인사가 된 것 같다.

그뒤로, 다시 혜선이에대한 생각을 머리속에서 정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흘렀다. 5월이 되어 이제 어느덧 여름을 향해서 치닫고 있던 어느날... 다시 혜선이에게 연락이 온 것이다. 다시 혜선이를 만났고,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 7시가 되어 집으로 보내주려고 했다. 그때 혜선이가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꼭 저를 만나면 일찍 집에 보내려고 하시네요.”

 

94년초... 과외를 그만둔지 한달만에, 혜선이가 이별 선물을 주겠다고 해서 신사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때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집에는 도서관 간다고 하고 나왔다고 하면서 나왔을때도 일찍 집에 보내주었다. 그 뒤 6개월, 1년만에 만날때에도 일찍 보내주었던 것 같다.

 

“그러면 이제 뭐하지?”
“글쎄요. 미리미리 생각하고 나오셨어야죠. 선생님은 친구만나면 어디어디 가시나요?”
“커피전문점, 그다음에는 호프집...”
“그래요? 그럼 우리 맥주마시러 가요.”
“호프집?”
“저도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라고요. 우리 저기 가요.”

 

혜선이가 가리킨 곳은 ‘하이트광장’이었다.
술은 인간에게 남모를 용기를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술기운을 빌려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한참 맥주를 마시며 다시 6년전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문득,

“선생님, 저 그때 선생님 좋아했던 거... 선생님은 아셨어요?”
“뭐?”
“왜그렇게 놀라세요? 모르셨나요? 괜찮아요, 지금은 마음이 정리되었으니까요.”

 

혜선이의 이 두마디 말이 나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했는지 모른다. 옛날에는 좋아했다가 지금은 아니란 얘긴가? 아니면 옛날에도 지금도 나를 좋아한다는 말인가?

 

“선생님이 이런 얘기 하셨었죠? 좋아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눈빛으로 알아차린다고...”
“그랬었지.”
“그런데 제가 선생님 좋아하는거 못느끼셨나요?”

 

혜선이는 이제 자기와는 상관없는 먼 옛날의 과거를 이야기하듯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지금은?”
“지금은... 괜찮아요. 정리가 되었으니까...”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한때 사춘기 소녀시절 좋아하던 선생님으로 간직되고 있었다. 이제 사춘기를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되어가면서 그러한 사춘기의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하는데, 나는 그 추억을 현실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꼴이 되었다.


그 뒤에 늦었지만 나는 혜선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과거를 떠나 현실에서 살고 있었다. 나만 과거 속에서 혼자 헤매고 있었다. 내가 계속 과거에만 집착하게 되자, 어렵고 힘들어지는 건 현실의 혜선이었다.

 

“저에게 선생님은 그냥 좋은 인생의 선생님으로 남아주셨으면 해요.”

 

이것이 혜선이가 나에게 바라는 나의 모습이었다. 내가 혜선이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한달 뒤 사당 지하철 역에서였다. 계속 만나자는 나의 연락을 피하다가 마지막으로 만나러 나온 것이다. 우리는 지하철 벤취에 앉아서 2시간동안 이야기를 했다.

 

“정말... 안되겠니?”
“......”
“참 웃긴다, 우리들... 처음엔 너가 그렇게 나를 좋아했고... 지금은 내가 너를 그렇게 좋아하고... 너가 나를 좋아할 때, 모른척했던 벌을 받나?”
“......”
“나한테 좋아했었다고 말한거 후회는 안하냐?”
“잘 모르겠어요. 전... 선생님이 저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줄 알고 이야기 한건데...”

 

그리고는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혜선이가 침묵을 깨뜨렸다.

 

“제가 걱정하는 건... 이후로 선생님을 못보게 되는 거예요. 그래도 선생님은 저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셨는데...”

 

이제, 혜선이의 마음은 어느정도 알수 있었다. 더 이상 매달리는 건 좋지 않은 모습이라고 판단이 되었다.

 

“그래... 괜히 강요하는 것도 좋은 모습이 아니지. 난 별로 터프한 사람은 못되니까... 그만 일어나자... 너 약속있다고 했잖아.”

 

내가 일어나자, 혜선이는 따라 일어나면서 말했다.

 

“선생님은 제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미 내가 바라는 너의 모습을 이야기했는데... 그게 힘드니까... 할수 없다는 거지...”

 

그 이후로 나는 6개월동안 망가졌다. 친구들을 만나 하루가 멀다하고 술을 마셨고... 그러한 나를 보면서 어떤 친구들은 그녀의 얼굴도 보지 않고서 상사병(?)이 걸리기도 했다...

 

“야~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너를 그렇게 망가뜨렸냐?”
“좋은 여자야. 나를 믿고 인정해준 유일한 여자니까...”

 

지금 내가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혜선아... 평범한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해준 것에 대해서 참 고맙게 생각한다. 너는 그래도 나를 좋아해준 처음 여자였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나버린 것 같아... 내가 너의 손을 잡은 적이 한 번도 없었지... 그리고 내가 너의 어깨에 딱 한 번 손을 올렸었지... 아마 그때가 사진을 찍을 때, 어색하게 손을 어깨에 올렸던 것 같은데... 그리고 내 후배중에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화이트 3집’을 나한테 사주었지... 거기에 ‘소녀’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의 가사가 참 우리들에게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소녀...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 넌 아주 작은 소녀. 난 너의 짝사랑을 받던 너보다 조금 어른. 너는 나를 좋아했지만 내눈엔 너무 어려 난 그냥 좋은 오빠로만 너를 대하곤 했어. 그후 왜인지 몰라도 너의 연락은 줄어가고 그렇게 긴, 아주 긴 시간을 지나며 난 너를 잊게 됐지만.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듯 내모습, 내생각도 바뀌어만 갔고 어디선가 너도 변해가는 걸 난 의식하지 못했던 거야. 다시 너를 만났을 때에 넌 아름다운 여인. 난 너무나 반가와 했고 떨리기 까지 했어. 너는 웃으며 얘길했지. 왜 나를 좋아했을까. 지금에와 생각해 보면 너무 어렸었다고. 잠시 뜻모를 침묵뒤에 애써 커다란 웃음짓고. 너의 생활, 너의 남자 얘길 들을땐 실망감까지 느꼈지만 그렇게 난 사랑에 빠졌지. 고백도 하지 못하는 힘든 사랑에 보고싶고 또 보고 싶어져도. 너에게 있어 난 그냥 추억... 그렇게 난 사랑에 빠졌지. 거리를 두어야 하는 그런 사랑에 지난날 넌 얼마나 속상했니. 내게 있어 넌 지금의 사랑. 내게 있어 넌 지금의 사랑... 너에게 있어 난 그냥 추억...

 

여러분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사랑은 기다려주지 않는답니다... 여기의 이야기는... 95퍼센트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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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그때는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았는지... -_-;;;
세상의 고민을 다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었나 봅니다...
그때 유난히 나를 힘들게 하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기억 속에서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그녀에 대한 기억을...
컴퓨터 정리하다가 당시에 소설로 써두었던 글을 발견했습니다...
 
 

삼일동안 침묵을 지키던 삐삐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동안 하도 안와서 없애버릴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이렇게 가끔가다 오는 소식 때문에 없애지도 못하고 애매한 돈만 매달 소비한다. 삼일에 한 번이면 한달이면 열번... 이 열번 때문에 매달 만원을 사용한다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막상 없애려고 하니까 망설이게 되고... 그렇게 지낸 세월이 벌써 6개월이다.

 

삐삐의 화면에는 내 번호가 찍혀 있고 그 뒤에 음성메시지가 왔다는 신호 [01]이 찍혀 있었다. 보통 음성을 녹음하면 자신의 신분을 금방 알아볼수 있게 특정한 번호를 찍는 것이 예의인데, 지금 삐삐의 주인공은 그러한 예의를 무시하고 있었다. 순간 일주일전의 악몽이 떠올랐다. 그때도 오늘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공중전화에서 10분을 기다려 확인해본 결과, 잘못온 삐삐였었다. 설마 이번에는 제대로 온 삐삐겠지. 그렇지만 주인공이 누굴까?

 

오늘따라 공중전화박스에는 만원이었다. 그중에 제일 빨리 전화를 끝낼 것 같이 생긴 사람 뒤에서 기다리는데, 제일 오래까지 전화기를 붙잡고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학교에 지각했어.”

 

신호등이 한 번 바뀌었다. 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쁜지 빨간색이 초록색으로 바뀌기전에 서둘러서 길을 건너기 시작한다.

 

“그런데 말이야, 오늘 교수가 사정이 있어서 휴강을 했지 뭐야. 그 기념으로 복권하나 샀지.”

 

도대체 누구한테 이야기를 하길래 저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보고하는 걸까?

 

“오늘 날씨가 참 좋다. 환장할 지경이야.”

 

신호등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이번에 건너는 사람들도 좀전에 건너갔던 사람들처럼 참을성이 별로 없었다. 앞에 사람이 잠시후에 나를 돌아보고는 이렇게 양해를 구했다.

 

“저, 음성을 남기다가 도중에 끊겼거든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웃는 얼굴에 침뱉지 못한다고, 나는 고개만 끄덕거려 주었다. 그 사람은 다시 번호를 누르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응 이건 두 번째 메시지야. 내가 #표를 두 번 눌러야 하는데, 실수로 세 번을 눌러버렸지 뭐야. 그건 그렇고 언제 시간이 나냐? 나야 뭐 매일 시간이 있으니까. 너가 되는 시간에 연락해 그러면 모든 일 제쳐놓고 달려갈게.”

 

저렇게 여자한테 저자세로 나가다가는 주도권을 빼앗기는데... 여자들은 좀 당당한 남자를 좋아하지 않나?


신호등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여전히 바쁜 사람들만 길을 건너 다니는 것 같다.

 

“혹시 이 음성 듣고 연락할수 있으면 내 삐삐에다가 음성좀 남겨줘. 기다릴게.”

 

내용으로 보아, 여자는 어느정도 이 남자에게서 마음이 떠나간 상태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전화박스에서 나오는 그사람의 얼굴을 보고도 알수 있었다. 나는 전화박스에서 나오는 그 사람의 얼굴을 흘낏 보고는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삐삐의 주인공은 천만뜻밖에도 혜선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혜선이예요. 참으로 오랜만에 남기는 메시지 같아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저는 잘 지내고 있는데. 그냥 길가다가 전화박스가 있길래 생각나서 음성을 남기는 거예요. 언제 시간나면 만나서 함께 얘기도 해요. 오늘 날씨가 참 좋아요.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그럼 나중에 다시 음성 남길께요. 안녕히 계세요.]

 

또 일주일동안 고생하겠다... 자식, 잊을만 하면 연락하고... 잊을만 하면 연락하고...

 

메시지 확인하고 곧바로 연락하는 건 약한 모습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다니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곧바로 연락하지 않으면 다시는 연락할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혜선이냐? 참 오래간만이다. 오늘 늦잠자서 학교에 지각하고...”

 

생각해보니 좀전에 그 남자와 같은 말을 한다는 생각에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그러면, 너가 시간 나는 날 정해서 연락해라. 그때 만나서 이야기하지.”

 

혜선이와는 내가 대학 2학년에 올라가면서 우연하게 만났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전이다. 당시에 혜선이의 나이는 중학교 3학년... 한없이 어려보이는 그런 소녀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과외를 시작했는데 그때 만난 학생이었다. 처음에는 7살 차이라는 생각에 아무런 감정없이 과외를 할수 있었다. 조용한 듯 하면서도 가끔 황당한 질문을 해서 나를 골탕먹이는 그런 소녀였다.

 

“선생님은 어떤 영화를 제일 감명깊게 보셨어요?”
“선생님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고백할 거예요?”

“선생님은 첫사랑이 이루어질수 없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대학 4학년이 되면서 과외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혜선이는 선물로 영화음악 테이프를 사주었다. 내가 평소에 감명깊게 보았다는 ‘미션’이란 영화의 오리지날 사운드 트랙이었다. 그냥 무심코 듣고 넘어갔는줄 알았는데,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일주일동안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했다고 하면서 또 하나의 테이프를 건네주었다. 이렇게 서로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고, 현실에서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화를 끊고 길을 건너기 위해서 건널목에 섰을 때, 좀전의 그 남자가 옆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삐삐를 꺼내 손으로 들고 삐삐줄을 계속 돌리면서 건너편을 바라보는 그 남자의 시선이 어딘지 모르게 처량해 보였다.

 

정수와의 약속장소인 CF 커피전문점에는 이미 많은 선남선녀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 전화기가 있는 줄 진작에 알았으면 아까 괜한 시간 허비하는게 아닌데...’

 

평소에 구석자리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이미 다 채워진 상태여서 하는수 없이 가운데 테이블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피다가 구석자리에서 혼자 커피를 시켜놓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발견했다. 좀전에 전화박스에서 전화걸던 사람이었다. 오늘은 계속 저 사람만 만나는 구나. 곧이어 정수가 전문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형! 왠일이야 구석만 고집하더니...”
“괜찮은 구석이 없어. 그건 그렇고, 왜 불렀냐?”
“잠깐 숨좀 돌리고 이야기하자. 왜 그리 급한 사람처럼 굴어? 시간도 남아돌면서...”

이때 시간을 보려고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던 삐삐가 진동을 했다.

“봐라. 이래도 내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으로 보이냐?”
“어, 왠일이지? 형한테 삐삐가 다오고...”

번호가 7077로 찍혀 있었다.

“7077... 이건 무슨 뜻이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형 아는 사람중에 이 번호와 관련된 사람 없어?”
“글세 없는 것 같은데... 잘못 온건가? 한 번 확인하고 올게.”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좀전의 그 사람이 전화를 걸고 있었다. 설마 이 남자와 내가 사귀라는 하늘의 뜻은 아니겠지. 하나님도 동성연애는 좋아하시지 않으시니...

 

“거기 은정이네 집이죠? 은정이 있습니까? 아... 예... 언제 나갔죠? 예... 그러면요 철민이한테 전화왔었다고 전해주세요. 안녕히 계세요.”

 

철민이란 사람은, 당연히 긴 통화를 예상했는데 짧게 끝내고 다시 자리에 돌아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음성을 확인해보니, 혜선이였다.

 

[예, 안녕하세요, 선생님? 좀전에 메시지 확인했구요. 이번주 금요일에 시간이 있어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그날 만났으면 하는데... 그리고 저 머리 짧게 짤랐어요. 아마 보시면 몰라보실 거예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오늘이 수요일이니 이틀 남았다. 자리에 돌아오니, 정수가 궁금해서 안달이었다.

 

“형 누구야? 여자지?”
“그래 여자다. 속 시원하냐?”
“시원하긴 배아프다... 그 여자 누구야? 뭐래?”
“싱거운 녀석아. 만나자고 한 건 너야. 니 이야기나 해!”
“그냥 간만에 만나서 차나 한잔 마시자는 거지 뭐.”
“그래. 참으로 오래간만이다.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나니...”
“형 혹시 소개팅 안할래요? 내가 좋은 여자 소개시켜줄께요.”
“왜 안하던 짓 하냐? 사람이 갈때가 되면 안하던 짓 한다고 하던데... 혹시...”
“괜히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봐요. 소개팅 할꺼유 안할꺼유.”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왜?”
“그냥...”
“좀전의 여자가 사귀자고 했나보지? 그래서 튕기는 거구나.”

 

평소에 아무생각없이 지내는 정수가 던진 한마디가 이렇게 날카롭게 들릴줄은 몰랐다. 그런가? 내가 혜선이를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나? 그리고 한가지 궁금한 것은... 왜 혜선이는 7077이라고 번호를 찍었지?

 

내가 삐삐를 없애지 않고 계속 살려두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혜선이가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삐삐였다. 혜선이는 오랜만에 삐삐를 치고 안부를 물어왔다. 그리고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다시 혜선이에 대한 기억을 잊기 위해서 몸부림 쳐야만 했다. 너무 즐거웠던 추억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수 없는 추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잊어버려야 현실에서 내가 살아갈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간신히 마음을 정리하고 잊을만 하면, 어김없이 혜선이에게서 삐삐가 온다. 이렇게 짧게는 3주, 길게는 두달 사이를 두고 혜선이에게서 삐삐가 왔던 것이다. 만약 내가 삐삐를 없앤다면 혜선이는 나에게 연락할 방법을 모른다. 전화를 하라고 했지만 전화를 걸었을 때 내가 없을지도 모르니 전화는 싫다고 했었다. 하긴 나도 4년전에 한 번 전화를 했었는데, 혜선이 어머니가 받으셔서 누구냐고 물었을때는 말하기가 난감했었다. 이미 관둔 과외 선생이라고 하면 이상할 것 같고, 아는 오빠라고 하면 더 이상할 것 같고...

 

“형, 잘생각해봐. 내가 소개해주는 여자는 어디가서 찾을수 없는 여자야.”
“됐다. 커피나 마시고 일어나자.”
“오늘따라 꽤 비싸게 구는데? 뭔가 예사롭지가 않아.”

 

왜 꼭 커피전문점에 가면 선배가 후배의 커피값도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커피값을 내고 밖으로 나오니 4월의 햇살이 그렇게 따사로울수가 없었다.

‘내일 모레도 이런 날씨여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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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한창 삐삐가 유행이던 시절에 썼던 작품입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삐삐...

그러나 당시에는 연인들끼리 연락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참고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는 저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두고 떠나갔습니다...

 

=-=-=-=-=-=-=-=

 

<< 삐삐의 하루 >>

 

 

☎ 다같은 삐삐지만 요즘들어 내 팔자가 바늘방석이다... 삐삐의 생명은 호출인데 나는 지금 시계역할만 하고 있다... -_-;;; 나랑 같은 회사에서 나온 제품번호 980414-7 녀석은 예쁜 여학생에게 팔려갔다고 하는데.. 삐삐의 본분을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내가 팔렸어야 하는건데.... 나는 지금 주인 잘못만나서 이 고생을 하고 있으니.... 나도 삐삐처럼 살고 싶지만 주변의 여건이 나의 행복을 방해하고 있다... 처음에 세상구경을 했을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삐삐가 되겠다는 웅대한 포부를 가졌었는데.... 나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녀석들이 잘나가는 것을 보면 눈꼴 사나워서 못보겠다.

 

"제기랄, 요즘 한달에 생돈 만원이 나가는게 아까워 죽겠어..."

 

☎ 주인이라고 하는 녀석은 인기관리를 어떻게 해왔길래 삐삐 치는 사람이 이렇게 없지? 일주일에 하나도 안올때가 있으니...

 

"그래도 형... 가끔가다 삐삐 치는 사람이 있잖아."

 

☎ 그랬었지... 내가 삐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고 나 스스로 삐삐임을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내가 삐삐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 주었던 여자가 하나 있었지... 또 삐삐 칠 때가 되었는데...

 

"형,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삐삐 하나 바꾸지 그래?"

 

☎ 뭐라고? 삐삐를 바꾼다고? 그렇다면 나를 버리라는 말이잖아? 요즘 정리해고다 퇴출이다 뭐다 해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줄 알았는데... -_-;; 삐삐를 바꾼다고 안오던 호출이 올까?

 

"그래도 이 삐삐가 그동안 정이 들어서..."

 

☎ 그 말은 마음에 든다... ^^;;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겠다... 가만, 그러는 녀석이 지난주에 내가 배고프다고 밤새도록 울 때, 시끄럽다고 아예 건전지를 빼버리고 3일 동안 굶겨?

 

"그런 구닥다리 삐삐는 요즘 거저줘도 안가져 간다던데..."

 

☎ 이게 삐삐를 무시해도 유분수지... 자기 삐삐는 얼마나 잘나서...

 

"이번 기회에 나는 PCS로 하나 구입했지..."

 

☎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구나... 삐삐가 대우받던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게 한이다. 그래도 내가 우리 주인을 믿는 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나를 저버리지 않을거라는 사실이다.

 

"나도 돈만 되면 PCS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 (-_-;;;) 아마 말뿐일 꺼야... 어? 뭐지? 이 느낌은?? 음... 삐삐가 왔구나... 흐흐흑... 드디어 2주만에 오는 호출이다... 주인 녀석..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키느라고 진동으로 해놨구나.

 

"어? 삐삐 왔다!!"

 

☎ 하도 호출이 안와서 어떻게 진동하는지도 잊어버렸을 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군... ^^;;

 

"잠깐, 삐삐 확인하고 올께."

 

☎ 어? 잠깐! 이렇게 빨리 반응을 보이면 약한 모습인데... 뭔가 바쁜 척 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하긴 그 심정 이해가 간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호출이었던가. 주인이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군...  이번 호출의 주인공은 누굴까? 기왕이면 남자보다는 여자였으면 좋겠는데...

 

"여보세요? 호출하신 분이요... 몇번이냐고요? 2547인데요... 예... 예... 알겠습
니다."

 

☎ 주인의 말투가 왜 이래? 돈 갚으라는 호출이라도 되나? 뭔가 심상치 않은데...

 

"형, 누구야? 누가 호출한거야?"

 

☎ 그래 나도 궁금하다.

 

"누군가 장난쳤나봐..."

 

☎ 이런... 2주만에 온 삐삐가 누군가의 장난이었다니... 난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쪽팔릴까.... 어?? 또 삐삐가 오는 군... 좀전에 친 녀석이 또 장난치는 거 아냐??

 

"어? 또 삐삐왔다... 이번에도 누가 장난 친건가?? 이번에는 음성이네..."

 

☎ 확인 해보나 마나... 좀전에 그 녀석일꺼야... 어떤 녀석인지 음성으로 장난을 치고... 그래도 순진한 주인 녀석... 확인하러 공중전화 박스로 가는 군...

 

"......"

 

☎ 뭐, 뭐야? 이 심각한 표정은... 주인 녀석... 간만에 분위기 엄청 잡네...

 

"형 뭐야?"

 

☎ 그래 그래... 나도 궁금하다...

 

"그 여자야..."

 

☎ 음... 드디어 그 여자한테서 호출이 왔군... 그 여자도 양반 되기는 글렀군... 근데... 주인 녀석... 좋으면서 괜히 분위기를 잡네...

 

"그 여자... 지난번에 형한테 선배 이상의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 그랬었지... 그때 주인 녀석이 엄청 망가졌었지... 여자가 뭔지...

 

"다시 나를 망가뜨리려고 삐삐를 쳤나?"

 

"그래서... 안만나겠다는 거야?"

 

☎ 내가 주인을 좀 아는데... 안만날 사람이 아니지...^^;;

 

"그래... 안만날꺼야..."

 

☎ 오늘 스타일 완전히 구기네... -_-;; 아마 말뿐일꺼야...

 

"형이 지난번에 말했잖아... 정말로 편한 사람이 되어줄 꺼라고... 그런데 이제와
서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 쫀쫀한 사람이 되는거지... 자기 입으로 툭하면... 여자한테 고백할 때 이후에 비참하게 채이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후의 행동에서 당당할 수 있을 때에만 말하라고 했으면서...

 

"형이 여기에서 더 만나주지 않으면.. 형은 그 여자한테 아직도 미련이 있다는 것
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거야..."

 

☎ 짝짝짝... 손이라도 있으면 박수라도 칠텐데... 후배지만 똑똑한 녀석이군...

 

"그래 만나야지..."

 

"잘생각했어요. 형..."

 

"자 음료수 마시고 나가자..."

 

☎ 이제 드디어 다시 그 여자를 만나게 되는군... 그때 그 여자가 나를 참 귀엽다고 칭찬해 주었었는데... 나도 그녀를 만나고 싶다...

 

=-=-=-=-=-=

 

컴퓨터 하드 정리하다가 예전에 썼던 글이어서 올렸습니다... ^^;;;

여기에 등장하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건 1998년입니다...

제가 신학생 시절 교회를 옮겨서 학생회를 맡았을 때 나를 잘 따랐던 여학생이었습니다.

잊을만 하면 연락하고... 잊을만 하면 연락하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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