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올림픽, 덴마크 또 한번 울다!
[올림픽 축구 3] 제5회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2연패 위업을 세운 대영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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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다시 한번 우승을 향하여...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아쉽게 대영제국에게 무릎을 꿇은 덴마크로서 설욕을 하기 위해 기다린 4년은 참으로 지루한 시간이었다. 1912년 제5회 스톡홀름(스웨덴)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덴마크는 1910년 5월 5일에 대영제국을 불러들여 친선경기를 벌였다. 이 경기에서 덴마크는 2-1로 승리하며 올림픽을 앞두고 사기를 크게 고양시키며 다가오는 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 친선경기가 자극제가 되었는지 아니면 당시에 유럽의 열강들이 '타도 대영제국'의 기치를 높이 올리는 것에 긴장했는지 대영제국은 1908년 우승 당시의 멤버들을 대폭 교체하여 1912년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제5회 스톡홀름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팀은 총 14개 팀이었다(스웨덴, 대영제국,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 핀란드, 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러시아, 프랑스, 벨기에, 보헤미아).

이들 중에 프랑스와 벨기에는 사정상 포기하였고, 보헤미아는 당시의 복잡한 동유럽의 정치 상황에 의해서 올림픽 참가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당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팀은 국가대표였는데,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의 한 주에 편입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가대표로 볼 수 없었다. 한편,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하나의 제국이었으나 두 개의 정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각각 대표팀을 구성하여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우승을 향한 덴마크의 거침없는 행진

덴마크는 제1라운드(16강전)를 부전승으로 통과하였고, 8강이 겨루는 준준결승에서 역시 부전승으로 제1라운드를 통과한 노르웨이와 4강 진출을 위한 일전을 벌였다. 6월 30일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된 이 경기에서 덴마크는 1908년 준우승의 주역인 S. 닐센(2골), 볼프하겐(1골), 닐스 미델뵈(1골)의 활약 이외에 안톤 올센이라는 새로운 스타가 3골을 몰아넣으며 노르웨이를 7-0으로 크게 이겼다.

4강에 진출한 덴마크가 결승에 오르기 위해서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은 이전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고 동메달을 획득한 바 있는 네덜란드였다. 7월 2일 오후 7시에 치러진 준결승전에서 덴마크는 총 다섯 골을 성공시켰는데, 그 중 한 골은 덴마크의 수비수 해럴드 한센의 자살골이었다. 자살골에도 덴마크는 4-1로 네덜란드를 격파하였는데,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세 골을 넣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한 안톤 올센은 두 골을 성공시키며 뛰어난 득점감각을 보여주었다.

덴마크의 결승 상대는 예상대로 대영제국이었다. 대영제국은 제1라운드를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부전승으로 통과하고, 8강이 겨루는 준준결승에서 헝가리를 7-0으로 물리쳤는데 공격수 해롤드 왈든이 혼자서 여섯 골(21분, 23분, 49분, 53분, 55분, 85분)을 성공시키는 원맨쇼를 연출하기도 했다.

준결승에서 대영제국은 핀란드 수비수의 자살골(2분)과 왈든의 두 골(7분, 77분), 그리고 주장인 비비안 우드워드의 쐐기골(82분)로 4-0 승리를 거두고 결승까지 올라왔다.

제5회 올림픽에서 덴마크와 대영제국은 비슷한 기록으로 결승까지 진출하였다. 덴마크가 11득점에 1실점을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하였는데, 대영제국은 11득점에 무실점으로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10명이 싸운 결승전

1912년 7월 4일, 역사적인 결승전이 2만5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되었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먼저 득점에 성공한 것은 대영제국의 스트라이커 해롤드 왈든이었다(10분). 이 선취골로 기선을 제압한 대영제국이 10여분 뒤인 22분에 고든 호어의 추가골로 2-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4년을 기다린 덴마크는 27분에 안톤 올센이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귀중한 골을 성공시키며(27분) 스코어를 2-1로 만들었다. 추격하는 덴마크보다 앞서 있는 대영제국이 심리적으로 불안해하기 시작할 무렵 덴마크로서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고 만다. 전반 30분경, 덴마크의 미드필더 찰스 부흐발트가 부상으로 더는 경기를 속행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에는 선수 교체의 룰이 없었기 때문에 덴마크는 나머지 60분을 한 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실력으로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대영제국이 이러한 덴마크의 약점을 놓칠 리가 없었다. 대영제국이 수적인 열세에 놓인 덴마크를 몰아붙여서, 전반 41분과 43분에 연속으로 골을 성공시키며 4-1의 스코어를 만들었다. 후반전에 접어들면서 10명의 덴마크 전사들은 최선을 다해서 경기에 임했고, 결국 81분에 안톤 올센이 다시 한 골을 만회하면서 2-4로 추격하였지만, 더는 무리였다.

결국 대영제국은 4-2로 승리하고 1908년에 이어 1912년에도 올림픽에서 우승하면서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등극하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하였다. 한편으로 덴마크는 1908년에 이어 1912년에도 준우승에 머물렀는데, 특별히 1912년의 결승전은 10명이 싸우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축구팬들에게 승리보다 값진 스포츠 정신을 보여주었다.

한편 같은 날 벌어진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네덜란드와 핀란드가 격돌하였는데, 네덜란드는 공격수 Jan Vos가 혼자서 다섯 골을 넣는 수훈을 바탕으로 핀란드를 9-0으로 격파하고 1908년과 마찬가지로 1912년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로써 1908년의 대영제국(금), 덴마크(은), 네덜란드(동)의 순서는 1912년 올림픽에서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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