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된 압수수색

 


진시황은 분서(焚書)와 갱유(坑儒)를 실시했다. 새로운 권력의 기틀을 위협하는 목소리를 철저히 잠재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승상 이사(李斯)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써 사마천의 표현대로 ‘천하에 감히 수장되어 있는 시(詩), 서(書) 및 제자백가의 저작들’이 모두 불살라지게 되었으니, 남은 책이라고는 의약·점복·종수(種樹)에 관련된 서적들뿐이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분서’ 이상의 참혹한 도서 절멸 기도를 목격해야 했다.

 

“1982년 6월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납본필증 없이 사전 배포했다 하여 이틀간 안기부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날 때였다. 퇴계로에서부터 트럭 하나가 우리 뒤를 따라붙더니 중앙청 문공부까지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수사관들과 함께 어느 국장 방으로 갔더니 백지를 내밀며 ‘재산포기 각서’를 쓰라고 했다. 그 트럭에는 시중 서점에서 압수한 1만여권의 시집이 실려 있었다. 그날 저녁 원효로 경신제책에선 나와 수사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형과 함께 시집 1만권이 분쇄되었는데 분쇄기를 직접 잡은 김상무의 엄지손가락 없는 오른손이 마구 떨렸다. 그리고 1주일 후 김상무에게서 폐휴지값 5만8천원이 나왔으니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이시영의 산문시 ‘타는 목마름으로’에서)


출판인들에게 책은 자식이다. 기획에서 편집·인쇄·제본까지 여러 과정 동안 수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마침내 햇빛을 본 한 권의 책을 쥐었을 때, 출판인은 매번 그래왔지만 다시 감동한다. 그런데 그 생때같은 자식을 아무런 이유 없이, 또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앗아간다면? 전두환 정권은 백주대낮에 그런 짓을 스스럼없이 자행했다.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세무사찰


사계절출판사는 85년 9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의 재고와 지형을 압수당했는데, 3개월이 지난 후에는 서울지방국세청이 기습적인 세무사찰을 실시해 거액의 벌과금과 추징금을 부과했다. 창작과비평사와 일월서각도 각기 김지하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와 박찬종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발간한 괘씸죄로 기습적인 세무사찰을 당했다.


▲압수수색


85년 8월 실천문학사는 서울시경 소속 경찰관들에 의해 교육무크지 ‘민중교육’ 8,000부와 지형을 압수당했다. 이밖에 84년부터 87년까지 거름의 ‘산자여 따르라’, 한울림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일월서각의 ‘π=10·26 회귀’, 풀빛의 ‘자주관리제도’ ‘한국 독점자본과 재벌’, 백산서당의 ‘전공투’ 등 수많은 책들이 압수됐다. 압수수색 당시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영장의 근거는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44호(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인데, 헌법에 보장된 출판의 자유가 경범죄로 다스려지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버젓이 반복됐다.


▲불법연행


86년 4월21일 도서출판 청사 대표 함영회가 서울 동대문경찰서로 강제연행돼 ‘대중경제론’(김대중 저)에 관해 조사를 받고 즉심에 회부돼 구류 5일을 선고받았다. 이밖에도 불법연행 사례는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다. 84년부터 87년까지 거름, 한울림, 일월서각, 풀빛, 돌베개, 사계절, 아침, 형성사, 광주, 청년사, 미래사, 인간사, 친구, 녹두, 세계, 동녘 관계자들이 한 차례 이상씩 불법 연행과 구금을 당했다.


▲등록취소


85년 8월26일 서울시는 도서출판 이삭에 대해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기관지를 5회에 걸쳐 계속적으로 불법 발행하여 왔다’는 혐의를 걸어 언론기본법 위반으로 등록취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원래 출판사나 언론사, 또는 인쇄소를 경영하기 위해 등록 신고를 하면 행정관청으로서는 구비서류만 갖추어지면 당연히 등록증을 교부하도록 돼 있었다. 한 마디로 출판사 등록은 허가나 인가 사항이 아니므로 당연히 ‘취소’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당국은 거름(84년 11월), 아침(85년 10월), 화다(85년 11월), 창작과비평사(85년 12월), 녹두(86년 7월) 등에 대한 등록취소를 버젓이 감행했고, 계간문예지 ‘실천문학’(85년 8월)에 대한 정기간행물 등록도 취소했다.


▲신규등록 규제


80년 이후 87년까지 서울에서는 출판사의 신규등록 자체를 아예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거름출판사는 이 봉쇄 작전을 기묘하게 뚫고 나가는 웃지 못할 ‘기지’를 발휘했다. 82년 서울시에서 신규등록을 받아주지 않아 인천에서 등록했다. 그러다가 등록이 취소되자 이번에는 수원에서 새로 등록했다. 84년 다시 등록이 취소당하자, 이번에는 서울에 있는 다른 출판사를 인수해 상호를 ‘기획출판 거름’(이전에는 ‘도서출판 거름’)으로 변경해 대망의 서울시 등록에 기어이 성공했다. 이런 놀라운 전법을 간파한 당국은 이마저도 봉쇄했다. 84년 12월부터는 유독 출판 등록에 대해서만큼은 명의 변경이나 상호 변경을 불허하기 시작한 것이다.


▲납본필증 미교부


법률에 따르면 출판사가 간행물을 출판하면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납본을 이행하면 해당 장관은 당연히 납본필증을 교부해야 한다. 즉 납본이란 간행물에 대한 ‘출생신고’이며, 납본필증이란 납본을 받았다는 ‘영수증’인 셈이다. 그렇지만 5공화국 정권은 이 제도를 불온서적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기묘하게 활용했다. 말하자면 이것이 마치 판매허가증처럼 돼버린 것이다. 86년의 경우 8개 출판사에 대해서만 조사한 결과가 있는데, 그들이 납본한 책 117종 중 80%에 이르는 97종이 납본필증을 교부받지 못했을 정도였다.


▲시판중지 종용


당국은 출판사나 서점에 대해 사실상 판매금지(판금) 조치를 내리고도 밖에다가는 ‘시판중지를 종용한다’는 부드러운 말을 썼다. 문공부는 납본필증을 내주지 않기로 결정한 출판사를 불러 ‘시판중지 각서’를 쓰도록 회유하는데, 그 회유도 당연히 강요였다. 이러한 판매금지 조치는 80년대 내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어떤가 하면, 형사들이 대학가 앞 서점에 들렀다가 제목에 ‘민중’이나 ‘혁명’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일단 수거부터 하고 보는 정도였다.


이로 인해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도 종종 벌어졌다.


“사건 현장에서 곧바로 연행이 된 희영이의 소지품 중에는 ‘전략!’이라는 붉은 글씨 선명한 제목의 책이 있어 경찰관들을 긴장시켰으나, 그 부제는 이러했다. ‘대입 합격, 필승의 전략!’”(김인숙 소설 ‘강’ 첫머리)


이 소설에서 고등학생인 주인공은 대통령 후보의 벽보 사진 위에 붉은 사인펜으로 ‘살인마!’라고 써놓은 혐의로 연행된다. 경찰은 학생의 가방을 뒤지다가 ‘전략!’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발견하자 ‘한 건’ 했다고 좋아 했던 것이다.


85년 5월3일부터는 10여일 동안 이른바 ‘불온사상 서적, 불법간행물 집중 단속기간’을 설정해 50여종의 도서와 300여종의 유인물을 마구잡이로 압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집중단속은 일상화된 탄압을 보강해 주는 것 이외의 큰 의미는 없었다.


80년대 초·중반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그저 책을 찍어내고 파는 장사치가 아니었다. 70년대 후반 이후 무수히 쏟아져 나온 시국사범들은 올 데 갈 데 없었는데, 출판업은 소자본으로 그들이 해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풀빛의 나병식, 한울의 김종수, 사계절의 김영종, 이론과실천의 김태경, 한마당의 최권행, 청사의 함영회, 세계의 윤후덕, 청년사의 정성현, 아침의 정동익, 동녘의 이태복·이건복 형제 등은 70년대 후반 우리나라 사회과학 출판의 새 장을 연 한길사의 김언호, 두레의 신홍범 등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빵잡이’ 또는 해직 언론인 등 운동권 인사들이었다.


그 중에는 특히 돌베개 대표 임승남처럼 절도 혐의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운동권 학생을 만나 ‘교화’되어 나와 새 삶을 정력적으로 펼친 인사까지 있었다.


한마디로 당시 사회과학 출판사에는 제적 학생들이나 빵잡이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이들은 특히 6월항쟁을 전후해서는 체제 비판을 넘어서 사회 변혁을 꾀하는 책들을 출간하는 쪽으로 사회과학 도서의 방향축을 이동시켜 나갔다. ‘자본론’ ‘공산당선언’ 등 마르크스-레닌주의 저작들이 여과없이 출판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이에 따라 출판 탄압도 전에 없이 강력해졌는데, 책을 펴내고 곧 ‘잠수함’(당국의 체포를 피해 도피하는 것을 뜻함)을 타거나 감옥으로 가는 악순환이 거의 정석처럼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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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집필에 참여한 사람-

유시춘(소설가) 이우재(자유기고가) 김남일(소설가) 황인성(인권운동가) 정재돈(농민운동가) 한상봉(자유기고가) 김명인(문학평론가) 최민희(민언련 사무총장) 박노승(경향신문 논설위원) 문성현 (" 미디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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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신문, 2004년 0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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