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의 무승부, 트리니다드 토바고...
[월드컵 관전 소감 4] 우승보다 값진 승점 1점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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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이번 대회 최약체로 평가를 받는 팀이었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북중미 예선에서 4위를 차지하고 아시아의 바레인과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천신만고 끝에 월드컵 본선에 오른 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또한 출전 국가 중에서 가장 적은 팀이며 피파 랭킹은 월드컵 예선을 거치면서 그나마 상승하여 47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나가 48위인 것은 피파 랭킹이 얼마나 산술적인 평점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북중미 예선을 거친 팀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필자도 처음에 아무런 생각없이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아프리카팀인줄 알았습니다) 이에 비하여 피파 랭킹 16위인 스웨덴은 8강까지도 노려볼만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팀으로 평가되는 북유럽의 강호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이야기를 주워들으면서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대해서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워낙 알려져 있지 않은 팀의 경기이고, 결과가 뻔한 경기이며(당연히 스웨덴의 승리 예상), 새벽에 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많은 축구팬들이 잉글랜드와 파라과이의 경기 이후에 TV를 꺼버렸을 가능성이 더 많았습니다.

실제로 월드컵이나 축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야 인터넷이나 매스컴의 보도를 통해서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주전 선수들 중에서 어떤 선수를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베일에 가려진 팀, 트리니다드 토바고... 인터넷을 통해서 경기 전에 잠깐 살펴본 것은 요크와 스턴 존이 그나마 알려져 있으며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지휘하는 감독은 네덜란드 출신의 감독이라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이번에 트리니다드 토바고와 스웨덴과의 경기는 TV 아나운서의 표현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를 새벽 1시에 시작해서인지 점차 졸린 눈을 비비면서 전반전을 지켜보았습니다. 스웨덴은 반드시 이겨서 승점 3점을 얻기 위해서 노력했고,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비기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수비에 치중했습니다. 일방적인 경기는 게임의 흥미를 반감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골기퍼 히즐롭은 경기 직전 캘빈 잭이 부상으로 대타로 출전했다고 하지만 스웨덴의 공격을 기가막히게 막아내었습니다. 뛰어난 위치 선정과 동물적인 감각으로 스웨덴의 공격수의 슛을 여러차례 막아내었고, 트리니다드 토바고 수비수들도 스웨덴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시켰습니다.

지루하게 흐를 수 있는 경기에 흥밋거리를 안겨준 것은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수비수 에이버리 존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숫적인 열세는 곧바로 스웨덴의 파상공격으로 이어졌고, 경기장의 한쪽 면만 사용하는 일방적인 게임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공격수 두 명만 남겨놓고 전원이 미드필드를 포기하고 수비에 치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한명이 퇴장 당해서 숫적인 열세로 경기를 치르는 경우에는 공격수를 빼고 수비수를 보강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트리니다드 토바고 감독은 공격수 코넬 글렌을 투입하는 변칙적인 선수교체를 시도하였습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퇴장을 당했기 때문에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10명으로 후반전 45분(추가시간 3분)을 견뎌야 했습니다. 후반 초반에는 스웨덴 관중들은 일방적인 경기로 흐르면서 다득점을 예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대타 골키퍼 히즐롭의 신들린 선방과 수비수들의 육탄방어는 점차 스웨덴을 초조하게 만들었습니다.

월드컵의 첫 출전 첫 경기에서 10명이 싸우는 숫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끝까지 침착하게 스웨덴의 파상공격을 막아내었습니다. 결국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첫 출전 첫 경기에서 우승보다 값진 승점 1점을 얻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번의 기적같은 무승부는 체력적인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복한 작은 나라의 대반란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응원단은 마치 경기에 패배한 분위기로 침울해져 있었습니다. 반면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응원단은 마치 우승이나 한 것처럼 자축하는 모습으로 대조를 보였습니다.

파라과이와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남겨둔 스웨덴은 이중 삼중으로 부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핵심 수비수 에버리지 존이 퇴장당함으로 다음 경기인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뛰지 못하기 때문에 잉글랜드에게 더욱 유리한 경기가 될 것이 뻔하고, 다음번에 스웨덴이 만나야 하는 파라과이 또한 만만한 팀은 아니라는 것이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승점 1점을 얻었지만 다음 경기에서는 더욱 힘든 경기를 치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 귀중한 승점 1점을 얻었기 때문에 그 어느 팀들보다 사기가 높아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즐거움은 다음번 경기에서 또 다른 사고를 칠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보여준 후반전 45분의 투혼은 그야말로 선수들에게 있어서 다음이라는 미래 보다는 지금이라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 월드컵을 즐기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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