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태극전사들, 1983년과 1991년의 감동을 다시 한번...
U-20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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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FA의 축구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
축구는 묘한 매력이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축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흥미를 갖고 경기의 결과에 깊은 관심을 보일 정도가 되었다. 프로축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월드컵과 같은 국가대표 축구경기는 깊은 관심을 가질 정도로 국가별 축구경기는 국가의 자존심 문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통해서 성인축구의 원숙함을 마음껏 느낀 세계의 축구팬들은 2007년으로 접어들면서 ‘청소년 축구’에 대한 매력을 마음껏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2007년 6월 30일부터 7월 22일까지 캐나다에서 열리는 ‘U-20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와 8월 18일부터 9월 9일까지 한국에서 열리는 ‘U-17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FIFA는 젊은 축구 유망주를 발굴하고 축구를 보다 대중적인 스포츠로 확고하게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를 계획했고, 1977년부터 ‘U-20', 1985년부터 ’U-27' 대회를 2년 간격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이밖에 여자축구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여자축구월드컵(1991년부터), ‘U-20 여자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2002년부터), ‘U-17 여자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2008년 예정)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시도되고 있다.
이들 대회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축구보다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참가국에게는 국가적인 명예가 걸린 대회이며, 이들 대회를 통해서 발굴된 유망주들이 앞으로의 세계축구의 중심적인 인물로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예상은 이들 대회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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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망주들의 각축장 ‘U-20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이들 대회 중에서 가장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대회는 물론 ‘U-20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이다. 1977년에 제1회 대회 이후 15회 대회를 치렀는데, 그 중에 아르헨티나가 1/3인 5회 우승을 달성했고, 브라질이 4회, 포르투갈이 2회, 그리고 소련, 서독, 유고슬라비아, 스페인이 한 번씩 우승을 차지하였다.
비록 20세 이하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라고 하지만, 이 대회를 통해서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는 선수들이 많이 탄생했는데, 그 중에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는 1979년 제2회 대회에서 조국 아르헨티나 우승으로 만든 주역으로 혜성처럼 등장하기도 했다.
5회 우승의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 이외에 부루차가, 고이코체아(1981년), 시메오네(1989년), 에스나이더(1991년), 사비올라(2001년), 메시(2005년) 등의 뛰어난 선수들이 팀을 이끌었다.
브라질은 1983년에 베베토와 둥가를 앞세우며 우승을 이루었고, 1985년에는 골키퍼 타파렐의 활약으로 연속 우승을 달성하였다. 그 밖에 호나우딩요(1999년), 카카(2001년)이 비록 우승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스타급 선수로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스페인은 1985년에 고이코체아를 앞세워 브라질에 이어 준우승을 달성하였고, 1995년에는 모리엔테스를 앞세워 4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모리엔테스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 연장전에 호아킨의 크로스를 헤딩슛으로 연결했지만 노골로 판정되어 우리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 선수이다. 스페인의 정상 도전은 결국 1999년에 달성되었는데 당시에 사비의 활약이 돋보였다.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를 이끈 핀토, 루이스피구, 루이 코스타 등은 1989년과 1991년 포르투갈이 연속으로 우승하는 데 앞장섰다. 유고슬라비아는 1987년 미야토비치의 활약에 힘입어 서독을 누르고 우승을 달성했다.
잉글랜드는 1997년 대회에서 아르헨티나에게 1-2로 패하며 16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지만 원더보이 마이클 오웬이라는 특급 스타를 선보였다. 프랑스는 1997년에 티에리 앙리와 트레제게를 앞세워 8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8강에서 당시 준우승국 우루과이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좌절하고 말았다. 2001년에 시세를 앞세우며 다시 한번 도전한 프랑스는 8강에서 당시 우승국 아르헨티나에게 패하고 다시금 좌절하고 말았다.
토탈사커의 네덜란드는 반 바스텐을 앞세워 1983년에 8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아르헨티나에게 1-2로 패하며 4강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그 밖에 코스타리카의 완초페(1995년), 일본의 나카다와 오노 신지는 1999년 준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1991년과 1993년 연속으로 4강 진출에 성공한 호주는 1995년에 비두카를 앞세워 다시 한번 4강의 신화에 도전했지만 준준결승에서 포르투갈에게 연장 접전 끝에 1-2로 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콜롬비아에는 ‘골 넣은 골키퍼’ 이키타가 1985년에 선수 명단에는 올라있었지만 후보선수로 골문 대신에 벤치를 지키며 구경하는 입장이 되었다.
# 1983년, 박종환 감독의 4강 신화
1983년 제4회 멕시코 대회는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우리나라 대표팀은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게 0-2로 패했지만 이후 개최국 멕시코에게 2-1로 역전승을 거두었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호주를 2-1로 누르고 2승 1패로 스코틀랜드에 이어 조 2위로 8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8강에서 우루과이를 만난 박종환 사단은 신연호의 선취골로 앞서갔지만(54분) 마르티네즈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71분) 연장전에 돌입했는데, 선취골의 주인공 신연호가 결승골을 넣으며(104분) 4강 진출의 신화를 달성하였다. 당시에 “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라고 외치는 아나운서의 감격적인 맨트와 함께 밤잠을 설쳐가며 응원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박종환 사단은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김종부가 선취골을 넣었지만, 쉽게 동점골을 내주고 후반 종반에 역전골을 내주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3-4위전에서 폴란드를 상대로 선취골을 넣으며 앞서나가며 3위를 바라보았지만 후반에 동점골을 내주고 연장전에서 역전골을 내주며 아쉽게 4위에 그치고 말았다.
비록 4위에 머물기는 하였지만 당시에 신연호, 김종부, 김종건, 김판근을 앞세운 태극전사들은 한국축구의 매운맛을 세계에 널리 알리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 1991년, 남북단일팀의 감동
1991년 포르투갈 대회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참가한 대회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당시의 기억으로는 수비는 남한이 공격은 북한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한 것 같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한 남북단일팀은 이임생이 아르헨티나의 에스나이더를 꽁꽁 묶으며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았고 경기 종료 직전 조인철이 골을 성공시키며 1승으로 기분좋은 출발을 했다.
남북단일팀의 두 번째 상대는 아일랜드였는데, 후반 종료 직전까지 0-1로 끌려가던 남북단일팀은 또 다시 경기 종료 직전에 최철이 한 골을 성공시키며 극적으로 무승부를 이루며 1승 1무를 기록하였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포르투갈에게 0-1로 패했지만 아르헨티나와 아일랜드가 2-2로 비기는 바람에 조 2위를 차지하여 8강이 겨루는 결승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하였다.
남북단일팀은 준준결승에서 강호 브라질을 만났다. 국내의 축구팬들은 아르헨티나를 이긴 것처럼 브라질도 이겨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한 두명의 공격수를 봉쇄하면 공격력이 무뎌지는 팀이었지만, 브라질은 선수 전원이 뛰어난 개인기를 갖춘 팀이라서 어느 한 선수를 집중적으로 막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결국 선취골을 내주고 전반 종료를 앞두고 최철이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다시 한 번 국내의 축구팬들을 흥분시켰지만, 더 이상의 이변은 없었다. 브라질은 동점골 직후에 한골을 넣으며 2-1로 전반을 마무리하였고, 후반에 세 골을 추가로 넣으며 5-1로 승리를 거두었다.
남북단일팀은 비록 8강에 머물렀지만 그들이 이룬 업적은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대립관계가 있는 남한과 북한이 스포츠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귀중한 의미를 포함하는 한편, 짧은 기간 동안 단일팀을 구성하여 본선에서 극적인 승부를 연출한 것은 세계의 축구팬들에게 1983년의 강한 인상 이후에 다시 한 번 ‘코리아’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된 것이다.
# 젊은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기대하며
이후의 대회에서 한국은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1983년과 1991년의 감동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2007년 제16회 대회를 맞이하여 캐나다로 출발한 대표팀이 비록 브라질, 폴란드, 미국 등 만만치 않은 팀들과 한조가 되어 있지만, 신영록과 하태균을 앞세운 한국의 선수들은 예전의 감동 기억하며 새로운 신화를 쓰기위해서 많은 준비를 해왔다.
지난 주말 새벽, 폴란드를 겨냥한 가상의 적국 체코슬로바키아와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한층 사기를 북돋운 젊은 태극전사들의 소식은 우리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과거의 감동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비록 지금까지 청소년 축구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쏟지 않았지만 앞으로 그들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실수를 할 수 있고, 분위기에 휩싸여 경기를 잘 풀어나가지 못한 경우가 생길 수 있지만, 우리는 머나먼 이국 땅에서 우리나라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젊은 태극전사들이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순간적인 결과 보다는 한국 축구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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