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리 군단, 1936년 올림픽 축구 정상에 오르다
[올림픽 축구 9]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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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 올림픽
1932년 LA 올림픽에서는 축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바로 2년 전에 프로 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 대회인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순수 아마추어만을 고집하는 올림픽에서 축구 종목은 제외된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뒤, 아돌프 히틀러가 야심 차게 준비한 1936년 제10회 베를린 올림픽에서 축구는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축구가 가지고 있는 흥행 요소와 함께 그 수입은 올림픽 조직위원회로 하여금 외면할 수 없는 단계가 되어 버렸다.
1928년 우루과이가 올림픽 정상에 등극한 이후, 세계 축구의 흐름은 남미와 유럽이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2년 뒤에 우루과이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으나 유럽의 소극적인 태도로 그 빛이 바랬다. 1934년 제2회 월드컵에서는 남미의 강국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불참한 가운데 비토리오 포조 감독이 이끄는 이탈리아가 ‘기적의 팀’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는 총 16개 팀이 참가했다(이탈리아, 스웨덴, 독일,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폴란드, 헝가리, 핀란드, 오스트리아, 미국, 일본, 터키, 중국, 페루, 이집트). 특별히 이번 대회에서는 오랫동안 참가하지 않던 영국(대영제국)이 24년 만에 올림픽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참가했다. 그러나 남미에서는 페루만 참가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참가를 신청한 팀들 중에서 단연 우승 후보로 꼽히는 나라는 비토리오 포조가 이끄는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였다. 그 밖에 아주리 군단에게 수중전 패배로 월드컵을 놓친 ‘기적의 팀’ 오스트리아가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개최국 독일, 축구 종주국 영국, 북유럽의 노르웨이와 스웨덴, 폴란드, 그리고 유일한 남미국가 페루 등이 다크호스로 지목되었다.
이탈리아, 결승을 향한 힘겨운 행진
1934년 제2회 월드컵에서 개최국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며 우승을 이룩한 이탈리아는 첫 번째 상대로 비교적 약체로 지목된 미국을 만났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 힘겨운 승부 끝에 1-0으로 간신히 이겼다. 이탈리아의 안경잡이 공격수 프로시(Frossi)의 득점이 결승골이 된 것이다.
이탈리아가 첫 라운드를 힘겹게 통과한 반면, 개최국 독일은 룩셈부르크를 9-0으로 격파하였고, 오스트리아는 이집트를 3-1로 격파했으며, 노르웨이는 터키를 4-0으로, 남미의 페루는 핀란드를 7-3으로 누르고 나란히 8강에 진출하였다.
이탈리아의 8강전 상대는 스웨덴을 3-2로 이기며 돌풍을 일으킨 아시아의 일본이었다. 모두 다 스웨덴의 승리를 예상한 가운데 일본은 전반의 0-2를, 후반에 3-2로 역전하며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은 이탈리아를 맞이하여 또 한 번의 기적 같은 승리를 기대했지만 기적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8월 7일에 열린 이탈리아와 일본의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전반에 두 골, 후반에 여섯 골을 기록하며 8-0으로 승리를 거둬 첫 경기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버리며 준결승에 진출에 성공했다.
8월 10일, 이탈리아의 결승을 향한 마지막 관문은 북유럽의 노르웨이였다. 노르웨이는 비록 1924년과 1928년 올림픽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영국을 침몰시킨 전적을 가지고 있는 저력의 팀이었다. 특히 노르웨이는 16강에서 터키(4-0), 8강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지켜보는 가운데 2-0으로 승리하고 준결승에 진출해 있었다.
비토리오 포조 감독이 이끄는 아주리 군단은 노르웨이를 맞이하여 전반에 먼저 한 골을 성공시키며 1-0으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곧바로 노르웨이가 한 골을 성공시키며 동점을 이루었다. 결국 양 팀은 전 후반 1-1의 무승부를 기록하고 연장전 승부에 돌입하였다. 연장전에서 이탈리아의 한 골이 추가되었고, 이탈리아는 2-1로 승리하고 결승 진출에 성공하였다.
아주리 군단, 올림픽 재패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금메달을 놓고 8월 15일, 행운의 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가 자웅을 가리게 되었다. ‘기적의 팀’ 오스트리아는 이번 대회에는 ‘행운의 팀’으로 결승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그들의 행운은 곧 남미의 불행이었다.
이집트를 3-1로 격파하고 8강에 오른 오스트리아는 유일한 남미 국가 페루와 대결하였다. 전후반을 2-2로 마무리한 양 팀이 연장전에 돌입하였고, 연장에서 페루가 두 골을 넣으며 4-2의 스코어를 기록하였으나, 판정 시비로 인하여 유혈사태가 발생하였다.
FIFA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양 팀에게 관중 없이 재경기를 치를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FIFA의 결정에 불복하며 페루가 재경기에 불참하였다. 페루의 실격이 확정되고 오스트리아에 4강 진출 자격이 주어졌다. 오스트리아는 4강에 진출하여 준결승에서 폴란드를 3-1로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하였다.
8월 15일,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와 ‘기적의 팀’ 오스트리아가 올림픽 금메달을 놓고 서로 격돌했다. 전반전은 양 팀이 서로 골을 기록하지 못하고 0-0으로 끝났다. 후반전에서 먼저 골을 넣은 팀은 아주리 군단이었다. 이탈리아는 프로시가 70분경 한 골을 넣으며 1-0으로 앞서나갔는데, 오스트리아의 K. 카인베르거(Kainberger)가 80분경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양 팀이 1-1로 비긴 가운데 연장전으로 승부를 가리게 되었다.
연장전 시작되자마자 첫 골의 주인공 프로시가 2-1을 만드는 골을 성공시켰고, 이 골을 끝까지 지켜 이탈리아가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영국에서 벨기에로, 벨기에에서 우루과이로 넘어갔던 올림픽 금메달은 이탈리아가 차지했다. 이탈리아는 1934년 월드컵 우승과 함께 1936년 올림픽까지 우승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 전성기의 배경에는 뛰어난 지도자 비토리오 포조 감독이 있다.
대회 이모저모
오랜만에 참가한 영국은 첫 라운드에서 아시아의 중국을 상대로 전반전을 0-0으로 득점 없이 비겼으며, 후반전에 간신히 한 골을 넣으며 1-0으로 승리를 챙겼지만 상대가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골밖에 못 넣었다는 사실은 영국으로서는 부끄러운 결과였다. 영국으로서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 명예 회복을 노렸으나 오히려 폴란드에 4-5로 패하고 탈락하고 만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영국을 처음으로 격침시킨 노르웨이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영국을 두 번째로 침몰시킨 폴란드가 8월 13일, 3-4위전에서 동메달을 놓고 한 판을 벌였는데, 노르웨이가 3-2로 승리를 거두며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이탈리아의 프로시(7골)며, 그 뒤로 노르웨이의 아르네 부루스타드(Arne Brustad), 페루의 T. 페르난데스(Fernandez), 폴란드의 게라르드 보다르스(Gerard Wodarz)가 각각 5골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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