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야기 3] 우루과이의 영광
[제1회 월드컵] 우루과이,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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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루과이, 월드컵 우승을 향한 도전

1924년 파리 올림픽,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연거푸 우승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우루과이는 남미 축구가 더 이상 변방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실력으로 최고임을 자부하던 유럽의 자존심은 우루과이를 선봉으로 하는 남미 축구의 급성장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우루과이가 어떤 나라인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던 유럽 국가들은 올림픽의 결과를 놓고 남미 축구가 상당히 위협적으로 성장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유럽은 프로를 포함하면 결코 남미 따위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마추어들만 참가한 올림픽에서 우승한 국가가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공식은 성립할 수 없었다. 세계는 아마와 프로를 통합한 진정한 챔피언의 등장을 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바람에 대하여 FIFA는 ‘월드컵’이라는 대회를 탄생시킨 것이다.

제1회 월드컵 유치에 일찌감치 목숨을 건 우루과이는 넉넉하지 않은 나라 살림에도 불구하고 참가국의 경비 일체 지원, 새로운 스타디움 건설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경쟁 국가들을 따돌리고 유치에 성공한다.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자국의 안방에서 세계 축구의 진정한 챔피언이 되겠다는 우루과이로서는 외적인 조건(월드컵 유치)을 갖추고,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필승의 자세로 맹훈련에 돌입했다.

‘우루과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이 나라에 흐르는 “새(uru)가 모여드는 물(gua)”이라는 강(우루과이)이름에서 유래했다. 1930년 7월, 이 우루과이에 새가 아닌 FIFA에서 초청장을 받은 13개국의 축구 대표팀이 저마다 우승을 향한 꿈을 갖고 모여들었다.

우루과이는 우승을 위해 드림팀을 구성하였다. 당시에 남미 정상의 스트라이커 페드로 세아를 비롯하여 그라운드의 마법사로 불리며 올림픽 2연패 선봉장이었던 스카로네, 외팔이 킬러 카스트로, 수비의 천재 나사지 등 뛰어난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2) 조별리그, “우리는 점차 나아지고 있다”

역사적인 월드컵의 시작, 우루과이는 루마니아, 페루와 함께 3조에 속해 있었다. 개막 6일째인 7월 18일, 우루과이는 페루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르게 된다. 페루는 이미 루마니아와의 경기(7월 14일)에서 후반 종반에 연거푸 실점을 허용하며 1대 3으로 패하고 1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객관적인 조건은 우루과이의 승리에 근접해 있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우루과이로서는 쉽게 경기를 풀어가지 못했다. 홈 관중의 압도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우루과이는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전력상 월등히 앞선다고 생각한 우루과이는 전반전을 득점 없이 비긴채로 끝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팀을 구한 영웅은 외팔이 선수 카스트로였다. 우루과이는 카스트로의 골에 힘입어 페루를 1대 0으로 제압하고 1승을 기록하고 있는 루마니아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맞이하게 된다.

루마니아로서는 페루를 꺾은 기세를 몰아 내친김에 올림픽 챔피언 우루과이를 잡기를 원했고, 우루과이로서는 페루와의 경기에서 부진했던 모습을 루마니아 전에서 회복하기를 원했다. 7월 21일 양 팀간의 피할 수 없는 경기가 시작되었다. 막상막하의 대등한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경기는 쉽게 결판이 나버렸다. 우루과이는 전반전에만 네 골을 성공시키며(도라도, 스카로네, 안젤모, 세아) 4대 0으로 승리하면서 2승으로 준결승 티켓을 확보하고, 2조에서 예상외로 브라질을 격파하고 올라온 유고슬라비아와 준결승에서 맞붙게 되었다.

3) 준결승전(대 유고슬라비아)

유럽의 자존심 유고슬라비아는 조별 리그에서 예상을 깨고 브라질을 2대 1로 격파한 뒤, 내친김에 약체 볼리비아를 4대 0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 올라왔지만, 남미까지 머나먼 선박여행과 장기간 원정으로 그다지 좋은 컨디션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7월 27일, 우루과이와 유고슬라비아의 준결승이 센테나리오 경기장에서 열렸다. 9만 3천명이 운집한 가운데 첫 골은 예상을 뒤엎고 유고슬라비아의 브라니슬라브(SEKULIC Branislav)가 전반 4분에 기록하였다. 너무 일찍 일어난 유고슬라비아의 득점은 오히려 우루과이에게 약이 되었다. 정신을 차린 우루과이는 세아의 동점골(18분)로 분위기를 쇄신하였다. 그리고 미처 유고슬라비아가 동점골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전인 20분경 안셀모가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10분 뒤 안셀모는 다시금 한골을 성공시켰다.

전반전을 3대 1로 앞선 상황에서 후반전에 들어선 우루과이는 기세가 꺾인 유고슬라비아의 진영을 향해 줄기차게 공격해 들어갔다. 후반전에는 이리아테(61분), 세아(67분, 72분)의 골이 우루과이의 골대 안으로 들어가 6대 1이라는 엄청난 스코어 차이로 우루과이가 승리했다.

4) 우루과이, 월드컵 초대 챔프로 등극하다

이제 우승까지는 단 한 경기, 그러나 결승에서 만난 우루과이의 상대는 아르헨티나였다. 2년 전 암스테르담 올림픽 결승에서 2대 1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지만,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에게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였다. 아르헨티나 역시 올림픽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서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7월 30일, 역사적인 제1회 월드컵의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이 경기는 시작부터 날카로운 신경전이 계속되었다. 경기 직전 사용할 공을 둘러싸고 시합이 지연되자 전반전에는 아르헨티나제 공을, 후반전에는 우루과이제 공을 사용하기로 하고 경기가 시작될 정도였다.

▲ 제1회 월드컵 결승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초대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격돌했다.
ⓒ fifaworldcup.com
우루과이는 전반 12분, 카스트로의 패스를 받은 도라도의 골이 터지면서 1대 0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 아르헨티나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페우셀레가 동점골(20분)을, 스타빌레(37분)가 역전골을 성공하며 분위기를 반전했다. 스타빌레의 역전골에 대해서 우루과이는 오프사이드 반칙이라고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반 들어 우루과이는 세아(57분)가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뒤이어 이리아스테(68분)가 역전골을, 마지막으로 종료 직전 카스트로(89분)가 승부의 쐐기를 박는 골을 성공시켰다. 경기의 결과는 4대 2로 우루과이의 승리로 돌아갔다.

▲ 제1회 월드컵 결승전, 우루과이의 외팔이 공격수 카스트로가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 fifaworldcup.com

▲ 제1회 월드컵 결승전, 4대 2로 아르헨티나에 승리를 거둔 우루과이 선수들의 기뻐하는 모습
ⓒ fifaworldcup.com
제1회 월드컵은 우루과이를 위한 월드컵이었다. 당시 인구로 따지면 남미 대륙에서 가장 작은 우루과이가 세계 챔피언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우승에 이어 초대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우루과이의 축구는 최고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비록 유럽의 강호들이 불참한 가운데 등극한 챔피언이었지만 월드컵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우루과이는 실력과 함께 온 국민의 열렬한 응원과 정부의 후원이라는 다양한 조건에서 다른 국가를 압도하였다. 내세울 것 없는 남미의 자그마한 나라였지만, 온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세계의 정상에 오른 우루과이는 건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월드컵 제패라는 기억에 남는 경험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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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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