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야기 6] 축구의 변방, 미국의 4강 신화
[제1회 월드컵] 스피드와 체력이 낳은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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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 단계의 미국, 독특한 선수 구성
제1회 월드컵이 개최될 당시에 미국은 무늬만 미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10년 전에 축구가 소개되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들어선 미국이 첫 월드컵에서 강호로 분류되었는데, 그것은 축구의 본 고장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대거 미국 대표로 선발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전 선수 11명 중에 5명은 스코틀랜드에서 프로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은 잭 콜이었는데, 그는 체력과 스피드를 중시하였다. 이렇게 선발된 미국의 선수들에 대해서 다른 팀들은 마치 역도나 투포환 선수들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수비에 치중하다가 곧바로 빠르게 역습을 시도하는 미국의 전술은 단순했지만 꽤 위협적이었다. 이들은 전형적인 영국 스타일의 거친 축구를 구사하였는데, 육중한 거구가 뒷받침되고 있어서 그 위협의 강도는 배가되었다.
미국의 승리와 벨기에의 몰락
미국은 유럽의 벨기에와 남미의 파라과이와 조별리그 4조에 속하게 되었다. 미국은 7월 13일 유럽의 강호 벨기에와 첫 경기를 치르게 된다. 벨기에는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스페인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팀이었다. 1924년과 1928년, 남미의 우루과이가 올림픽 챔피언에 등극하기 전에 챔피언의 자리에 있었던 팀이 바로 벨기에였던 것이다.
미국은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예상을 뒤엎고 3대 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10년 전(1920년) 세계 대회(올림픽)에서 우승할 정도로 화려한 시대를 경험한 벨기에의 몰락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벨기에는 제1회 월드컵에 출전은 했지만 각 클럽의 비협조적 태도 때문에 정예 맴버를 구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적인 첫 월드컵 출전에서 미국에게 0대 3으로 패하였고, 두 번째 경기인 파라과이에게도 0대 1로 패하면서 한골도 못 넣고 2패를 기록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수모를 겪게 된다.
미국과 벨기에의 경기를 돌아보면, 이날의 경기에서 벨기에의 선수 구성이 너무 여유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어설픈 것 같으면서도 폭발적인 미국의 역습에 치중한 공격은 위협적이었다고 한다.
파라과이를 꺾고 조별리그 1위
7월 17일, 사실상 조별리그 통과를 위해서 자웅을 가려야 할 파라과이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대회조직위원회도 두 팀의 실력차이를 판단하지 못하고 같은 조에 배정할 정도로 경기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미국은 전반 10분과 15분에 연속골을 성공시키며 2대 0으로 앞서나갔다. 후반전에도 파라과이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으며 한골을 추가시켜 3대 0으로 승리를 거두고 조별리그의 나머지 경기(벨기에와 파라과이의 대결)에 상관없이 조 1위를 확정지으며 4강 토너먼트에 진출하게 된다.
7월 20일, 미국에게 나란히 0대 3으로 패한 파라과이와 벨기에가 양보할 수 없는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들은 이미 4강 탈락이 확정된 상태였지만, 나름대로 국가적인 자존심을 걸고 조별리그 최하위를 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이 경기에서 파라과이는 전반 40분에 터진 바르가스의 골 덕분에 1대 0으로 승리하면서, 조 2위를 기록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첫 월드컵 4강 신화, 그리고 미국의 영원한 숙제
벨기에와 파라과이를 예상외로 쉽게 격파하고, 4강에 진출한 미국은 4강에서야 진정한 강자를 만나게 된다. 상대는 비록 올림픽에서 우승은 못했지만 2년 전 올림픽(1928년 암스테르담) 준우승으로 실력에 있어서는 당시 우승팀 우루과이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아르헨티나였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7월 26일에 열렸는데, 이 경기에서 미국은 경기 초반 강호 아르헨티나를 맞이하여 상당히 잘 싸웠다. 미국의 저항이 의외로 거셌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전반전에 한 골을 넣는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후반전에 들어서서 아르헨티나의 무차별한 공격이 시작되었고, 미국은 후반전에서만 다섯 골을 허용하면서 무너졌다. 미국은 마지막 경기 종료 직전에 브라운이 한골을 만회해서 영패는 면하게 되었다.
미국은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패함으로 4강에 오른 것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미국의 4강 진출은 당시에 출전한 팀들이 들쑥날쑥한 실력과 컨디션, 그리고 상대적으로 대진운이 좋았던 행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서 조직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감독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감독은 월등한 체력을 바탕으로 스피드를 급격하게 상승시키며 자신들의 약점을 커버하려고 한 것이다.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이 개인기가 약한 한국 선수들의 체력 훈련을 강화하여 전후반 그리고 연장전까지 거침없이 뛸 수 있는 무서운 팀으로 만든 것을 기억나게 한다.
이렇게 첫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미국은 이상하게도 축구라는 스포츠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비인기종목으로 밀려났고, 올림픽이나 다른 여타 스포츠 종목에서는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결코 빼앗기지 않는 미국은 오늘날의 월드컵까지 영원한 변방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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