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야기 10] 체코슬로바키아, 준우승에 머물다
[제2회 월드컵] 역전승으로 시작하여 역전패로 마무리한 체코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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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와 축구
체코슬로바키아, 지금은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두 나라로 분리되었지만, 제2회 월드컵 당시에는 두 개의 민족, 하나의 국가였다. 14세기에 화려한 시대를 맞이하기도 했던 그들은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300년간 받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8년 10월 28일,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이 하나가 되어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이 같은 서슬라브족의 부류에 속해 있었다는 공통분모가 한 몫을 담당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축구는 독립 전부터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지배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들이 축구를 통해서 민족주의적인 감정과 독립을 위한 꿈을 키운다고 생각해서 이들의 축구 활동을 철저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1901년 체코축구연맹이 창설되었고, 1908년 보헤미아가 FIFA에 가맹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유럽 아마추어 선수권 최강에 올랐고, 당시 세계 최강인 잉글랜드와도 대등한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독립하자마자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축구연맹이 합쳐지고 이탈리아와 벨기에와의 국가대항전에서 승리하고, 1920년 안트워프 올림픽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하는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었다(그러나 벨기에와의 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경기를 포기하고 철수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1934년 제2회 월드컵,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16강전, 루마니아
제2회 월드컵에 참가한 체코슬로바키아는 유럽 지역 예선에서 같은 서슬라브족의 폴란드를 제압하고 본선 티켓을 확보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의 16강 상대는 지역예선에서 제1회 대회 4강 진출로 유럽의 자존심을 지켰던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올라온 루마니아였다. 루마니아는 당시 지역적으로는 동유럽에 속하였지만 루마니아인은 라틴계열에 속해있는 민족이었다.
5월 27일에 열린 루마니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경기에서 먼저 기선을 잡은 팀은 루마니아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전반 37분경 루마니아의 도바이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면서 전반전을 0대 1로 리드 당한 채로 마무리 했다. 그러나 후반전에 들어서면서 16분에 푸치의 동점골과 28분에 네예들리의 역전골에 힘입어 루마니아를 2대 1로 물리치고 8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8강전, 스위스
체코슬로바키아의 8강 상대는 네덜란드를 3-2로 꺾고 올라온 스위스였다. 5월 31일에 열린 8강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16강전과 마찬가지로 스위스에게 선제골을 내주면서 불안한 출발을 하였다. 네덜란드 전에서 두골을 넣으며 스위스의 8강 진출에 결정적인 활약을 한 스위스의 키엘홀츠가 전반 18분에 체코슬로바키아의 골문을 열고 선제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곧이어 체코슬로바키아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스보보다가 24분에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후반전에 들어서 먼저 웃은 것은 체코슬로바키아였다. 체코의 스보트카가 후반 시작 4분만에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기분좋은 출발을 하였다. 그러나 스위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후반 26분경 스위스의 아베글렌 3세가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놓는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16강전 결승골의 주인공 네예들리가 후반 38분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승리를 결정하는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체코슬로바키아의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16강전과 8강전을 모두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경기를 뒤집어 역전승을 거두며 경기를 지켜보는 축구팬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4강전, 독일
본선 두 경기를 모두 다 역전승으로 이기고 4강에 진출하며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체코슬로바키아는 4강에서 독일과 맞붙게 되었다. 독일은 16강전에서 벨기에를 5대 2로, 8강전에서 스웨덴을 2대 1로 격파하고 올라온 팀이었다. 이날의 경기는 장신(체코슬로바키아)와 단신(독일)의 경기였다. 이탈리아 관중들은 파시스트당의 주선으로 독일을 응원하였다.
6월 3일에 열린 준결승전은 체코슬로바키아의 해결사 네예들리의 독무대였다. 네예들리는 전반 21분과 후반 15분, 36분에 골을 성공시키며 독일의 노아크가 한골을 만회한 독일을 3대 1로 격파하고 대망의 결승진출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현재 기록상으로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네예들리가 3골을 넣었다는 기록과 두 골을 넣었다는 기록이 공존하고 있다. 후반 36분에 넣은 골이 네예들리의 골이라면 네예들리는 이 대회 기간 동안 총 다섯 골을 넣은 것이고, 만약 다른 선수(크르실)라면 네예들리는 총 네 골을 넣은 것이다.
결승전, 이탈리아
결승전의 상대는 파시즘 군단 이탈리아였다.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승리 아니면 죽음이라는 각오로 결승에 올라온 이탈리아보다는 비교적으로 대진운이 좋았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였지만 실상은 이탈리아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서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6월 10일 대망의 결승전의 주도권은 이탈리아가 잡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가 이탈리아를 몰아붙였다. 체코의 소보보다와 소보르카 콤비가 전반 20분에 골대를 맞추는 슛을 날리면서 이탈리아 관중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전에는 양팀이 득점에 성공하지 못했다.
후반 26분 체코슬로바키아의 푸치가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체코슬로바키아가 1대 0으로 리드하기 시작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로서는 추가골을 성공시킬 두 번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골로 연결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로서는 다행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우승에 굶주린 이탈리아와 파시즘으로서는 엄청난 굴욕이라는 생각이 그라운드에 팽배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독재자 무솔리니가 관전하고 있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은 결코 패배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사력을 다해 뛰었고 결국 후반 36분, 구아이타의 패스를 받은 오르시가 골문을 향해 회심의 슛을 날렸다. 오르시로서는 정확하게 맞지 않고 빗맞은 것이 행운이었다. 오르시의 발을 떠난 공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골키퍼 플라니카의 손가락을 스치면서 골 안으로 들어갔다. 아르헨티나 대표 출신의 두 명(구아이타, 오르시)이 이탈리아를 벼랑 끝에서 건져올린 것이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 돌입하자 경기는 더욱 달아올랐지만,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비진은 몸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이탈리아 선수들의 체력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연장 5분, 이탈리아의 메아자에게 공이 연결되었다. 당시에 메아자가 부상으로 발을 절고 있었기 때문에 체코슬로바키아로서는 메아자를 전담으로 마크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전담할 수비를 배치하지 않고 있었다. 메아자는 센터링할 충분한 여유와 시간을 갖게 되었고, 메아자의 발을 떠난 공은 구아이타를 거쳐 스키아비오에게 연결되었다.
스키아비오는 수비 한 명과 골키퍼를 제치고 대회의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을 작렬시켰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동점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의 운명은 준우승이었다. 결국 승리의 여신은 파시스트 독재자의 이탈리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다 잡은 승리를 놓치게 되었고, 준우승에 머물게 되었다. 대회 초반 역전승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마지막 결승전에서 역전패로 마무리함으로써 아쉬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달콤한 왼발, 네예들리
체코의 네예들리는 총 다섯 골을 넣고 대회득점왕이 되었지만 팀이 준우승에 머무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네예들리가 넣은 골이 다섯 골이 아니라 네 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달콤한 왼발'로 불리는 올드리치 네예들리는 탁월한 감각을 지닌 뛰어난 선수였다. 체코의 공격 루트에서 왼쪽 후방을 맡아 골을 넣는 데 다소 불리한 조건이었으나 그는 언제나 상대팀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네예들리와 푸치의 조화로 인하여 왼쪽 측면 공격이 상당히 날카로왔다고 한다. 준결승까지 거침없이 골 폭풍을 몰아가던 네예들리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철벽수비에 묶여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만약 결승전에서 네예들리가 이탈리아의 수비를 뚫었다면 경기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제2회 월드컵] 역전승으로 시작하여 역전패로 마무리한 체코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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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와 축구
체코슬로바키아, 지금은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두 나라로 분리되었지만, 제2회 월드컵 당시에는 두 개의 민족, 하나의 국가였다. 14세기에 화려한 시대를 맞이하기도 했던 그들은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300년간 받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18년 10월 28일,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이 하나가 되어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이 하나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이 같은 서슬라브족의 부류에 속해 있었다는 공통분모가 한 몫을 담당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축구는 독립 전부터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지배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들이 축구를 통해서 민족주의적인 감정과 독립을 위한 꿈을 키운다고 생각해서 이들의 축구 활동을 철저하게 탄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1901년 체코축구연맹이 창설되었고, 1908년 보헤미아가 FIFA에 가맹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는 유럽 아마추어 선수권 최강에 올랐고, 당시 세계 최강인 잉글랜드와도 대등한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독립하자마자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축구연맹이 합쳐지고 이탈리아와 벨기에와의 국가대항전에서 승리하고, 1920년 안트워프 올림픽에서는 결승까지 진출하는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었다(그러나 벨기에와의 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경기를 포기하고 철수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1934년 제2회 월드컵,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16강전, 루마니아
제2회 월드컵에 참가한 체코슬로바키아는 유럽 지역 예선에서 같은 서슬라브족의 폴란드를 제압하고 본선 티켓을 확보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의 16강 상대는 지역예선에서 제1회 대회 4강 진출로 유럽의 자존심을 지켰던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올라온 루마니아였다. 루마니아는 당시 지역적으로는 동유럽에 속하였지만 루마니아인은 라틴계열에 속해있는 민족이었다.
5월 27일에 열린 루마니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경기에서 먼저 기선을 잡은 팀은 루마니아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전반 37분경 루마니아의 도바이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면서 전반전을 0대 1로 리드 당한 채로 마무리 했다. 그러나 후반전에 들어서면서 16분에 푸치의 동점골과 28분에 네예들리의 역전골에 힘입어 루마니아를 2대 1로 물리치고 8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8강전, 스위스
체코슬로바키아의 8강 상대는 네덜란드를 3-2로 꺾고 올라온 스위스였다. 5월 31일에 열린 8강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16강전과 마찬가지로 스위스에게 선제골을 내주면서 불안한 출발을 하였다. 네덜란드 전에서 두골을 넣으며 스위스의 8강 진출에 결정적인 활약을 한 스위스의 키엘홀츠가 전반 18분에 체코슬로바키아의 골문을 열고 선제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곧이어 체코슬로바키아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스보보다가 24분에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후반전에 들어서 먼저 웃은 것은 체코슬로바키아였다. 체코의 스보트카가 후반 시작 4분만에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기분좋은 출발을 하였다. 그러나 스위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후반 26분경 스위스의 아베글렌 3세가 경기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놓는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16강전 결승골의 주인공 네예들리가 후반 38분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승리를 결정하는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체코슬로바키아의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16강전과 8강전을 모두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경기를 뒤집어 역전승을 거두며 경기를 지켜보는 축구팬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4강전, 독일
본선 두 경기를 모두 다 역전승으로 이기고 4강에 진출하며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체코슬로바키아는 4강에서 독일과 맞붙게 되었다. 독일은 16강전에서 벨기에를 5대 2로, 8강전에서 스웨덴을 2대 1로 격파하고 올라온 팀이었다. 이날의 경기는 장신(체코슬로바키아)와 단신(독일)의 경기였다. 이탈리아 관중들은 파시스트당의 주선으로 독일을 응원하였다.
6월 3일에 열린 준결승전은 체코슬로바키아의 해결사 네예들리의 독무대였다. 네예들리는 전반 21분과 후반 15분, 36분에 골을 성공시키며 독일의 노아크가 한골을 만회한 독일을 3대 1로 격파하고 대망의 결승진출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현재 기록상으로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네예들리가 3골을 넣었다는 기록과 두 골을 넣었다는 기록이 공존하고 있다. 후반 36분에 넣은 골이 네예들리의 골이라면 네예들리는 이 대회 기간 동안 총 다섯 골을 넣은 것이고, 만약 다른 선수(크르실)라면 네예들리는 총 네 골을 넣은 것이다.
결승전, 이탈리아
결승전의 상대는 파시즘 군단 이탈리아였다.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승리 아니면 죽음이라는 각오로 결승에 올라온 이탈리아보다는 비교적으로 대진운이 좋았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였지만 실상은 이탈리아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충분히 살려서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6월 10일 대망의 결승전의 주도권은 이탈리아가 잡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가 이탈리아를 몰아붙였다. 체코의 소보보다와 소보르카 콤비가 전반 20분에 골대를 맞추는 슛을 날리면서 이탈리아 관중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전에는 양팀이 득점에 성공하지 못했다.
후반 26분 체코슬로바키아의 푸치가 선취골을 성공시키며 체코슬로바키아가 1대 0으로 리드하기 시작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로서는 추가골을 성공시킬 두 번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골로 연결하지 못했다. 이탈리아로서는 다행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우승에 굶주린 이탈리아와 파시즘으로서는 엄청난 굴욕이라는 생각이 그라운드에 팽배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독재자 무솔리니가 관전하고 있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선수들은 결코 패배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사력을 다해 뛰었고 결국 후반 36분, 구아이타의 패스를 받은 오르시가 골문을 향해 회심의 슛을 날렸다. 오르시로서는 정확하게 맞지 않고 빗맞은 것이 행운이었다. 오르시의 발을 떠난 공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골키퍼 플라니카의 손가락을 스치면서 골 안으로 들어갔다. 아르헨티나 대표 출신의 두 명(구아이타, 오르시)이 이탈리아를 벼랑 끝에서 건져올린 것이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 돌입하자 경기는 더욱 달아올랐지만,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비진은 몸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이탈리아 선수들의 체력은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연장 5분, 이탈리아의 메아자에게 공이 연결되었다. 당시에 메아자가 부상으로 발을 절고 있었기 때문에 체코슬로바키아로서는 메아자를 전담으로 마크할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전담할 수비를 배치하지 않고 있었다. 메아자는 센터링할 충분한 여유와 시간을 갖게 되었고, 메아자의 발을 떠난 공은 구아이타를 거쳐 스키아비오에게 연결되었다.
스키아비오는 수비 한 명과 골키퍼를 제치고 대회의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을 작렬시켰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동점골을 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의 운명은 준우승이었다. 결국 승리의 여신은 파시스트 독재자의 이탈리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다 잡은 승리를 놓치게 되었고, 준우승에 머물게 되었다. 대회 초반 역전승으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던 체코슬로바키아는 마지막 결승전에서 역전패로 마무리함으로써 아쉬움은 더욱 컸을 것이다.
달콤한 왼발, 네예들리
체코의 네예들리는 총 다섯 골을 넣고 대회득점왕이 되었지만 팀이 준우승에 머무는 바람에 빛이 바랬다(네예들리가 넣은 골이 다섯 골이 아니라 네 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달콤한 왼발'로 불리는 올드리치 네예들리는 탁월한 감각을 지닌 뛰어난 선수였다. 체코의 공격 루트에서 왼쪽 후방을 맡아 골을 넣는 데 다소 불리한 조건이었으나 그는 언제나 상대팀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네예들리와 푸치의 조화로 인하여 왼쪽 측면 공격이 상당히 날카로왔다고 한다. 준결승까지 거침없이 골 폭풍을 몰아가던 네예들리는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철벽수비에 묶여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만약 결승전에서 네예들리가 이탈리아의 수비를 뚫었다면 경기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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