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야기 9] 아주리 군단, 월드컵을 제패하다
[제2회 월드컵] 집착에서 우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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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목표는 우승"
제2회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이탈리아가 우승할 가능성은 점차 커졌다. 전 대회 챔피언인 우루과이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해 온 것이다. 제1회 대회에서 유럽의 비협조적 태도에 대한 복수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루과이의 전력이 그다지 독보적이지 못했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루과이의 불참은 이탈리아로서는 우승의 가능성을 한층 높여준 것이 사실이다.
다음으로 남미의 강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본선에 진출했지만 정예 멤버를 구성하지는 않았다. 비록 2진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존재는 상당히 위협적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로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상당히 먼 곳에 배치해 놓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가 유럽의 국가들 중에서 경계해야 할 팀은 후고 마이슬이 이끄는 오스트리아였다. 당시 유럽의 축구 판도는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뭉쳐 있는 잉글랜드는 여전히 월드컵 참가에 회의적이었다. 따라서 이탈리아로서는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가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였다.
이탈리아의 포치오 감독은 이탈리아가 최강의 군단으로 탄생되려면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리그를 대표하는 클럽의 소속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한편, 다른 나라의 선수라 할지라도 이탈리아와 연관이 있다면 이탈리아 대표 선수로 만들어 버렸다. 파시스트의 협조 아래 아르헨티나의 대표였던 오르시와, 몬티, 구와이타가 이탈리아 대표팀에 합류했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이번 대회에서 홈그라운드 이점 이상으로 국민의 기대와 우승에 대한 집념은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참가국 16개 팀 중에 최고의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대표로 뛰었던 선수들까지도 불러들이면서 선수 구성이 끝난 뒤, 포치오 감독은 전형적인 잉글랜드 축구를 도입하여 힘과 체력을 바탕으로 한 막강한 '아주리 군단'을 창설했다. 그들이 최후의 순간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면 가장 우승권에 가깝게 접근해 있는 팀이라고 할 수 있었다.
# 16강전, 미국
이탈리아가 16강에서 만난 상대는 전 대회 4강 진출의 신화를 일궈낸 미국이었다. 1934년 5월 27일 파시스트의 열렬한 응원 아래 이탈리아는 구와이타, 메아짜, 스키아비오, 페라리, 오르시, 몬티로 이어지는 힘의 포진에서 분출되는 엄청난 파워로 내세울 것은 힘밖에 없었던 미국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지면 탈락이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탈리아는 스키아비오(18분), 오르시(20분), 스키아비오(29분)의 연속 골로 전반을 3대 0으로 끝냈다. 후반 들어서 미국의 도넬리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57분), 다시 이탈리아의 페라리(63분), 스키아비노(64분), 오르시(69분)가 연거푸 득점에 성공하면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경기 종료 직전에 메아짜(90분)가 골을 성공시키면서 최종 스코어는 7대 1, 이탈리아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버렸다.
# 8강전, 스페인
5월 31일, 이탈리아는 남미의 강호 브라질을 3대 1로 꺾고 올라온 스페인과 8강에서 맞붙었다. 스페인이 예상을 뒤엎고 브라질을 격파하고 8강에 진출하는 데는 자모라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이 있었다. 당시 경기에서 브라질의 파상 공격은 자모라 골키퍼의 전설을 만들어주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이탈리아로서는 브라질을 만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브라질을 격파하고 올라온 스페인이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스페인의 자모라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은 계속되었다. 전반에만 16개의 코너킥을 얻은 이탈리아로서는 철통같은 스페인의 골문을 열지 못하고 오히려 전반 3분을 남겨놓고 역습으로 한골을 잃고 만다. 후반이 시작되고 경기의 집중력이 생기기 전에 이탈리아의 페라리가 동점골을 넣어 경기는 1대 1이 되었다.
1대 1의 스코어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결국 양 팀은 무승부를 기록하고 6월 1일에 재경기를 하게 되었다. 스페인으로서는 이탈리아의 난폭한 플레이 덕분에 자모라 골키퍼가 부상을 당해 재경기에는 뛸 수가 없었다. 결국 승리에만 집착한 이탈리아는 자모라 골키퍼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한 스페인을 재경기 끝에 1대 0으로 물리치고 4강에 진출하였다.
# 4강전, 오스트리아
제2회 월드컵의 4강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로 압축되었다. 이탈리아로서는 결승의 문턱에서 최대의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1대 5라는 처참한 스코어로 패한 바 있는 오스트리아와의 준결승이 사실상 결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준결승은 밀라노에서 6월 3일에 거행되었는데, 이 날의 경기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중전으로 전개되었다. 수중전이 전개되자, 힘의 축구를 구사하는 이탈리아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러나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오스트리아에게는 상당한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오스트리아의 화려한 기술은 빗속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결국 전반 18분 이탈리아의 구와이타가 오스트리아의 골문을 흔들었고, 그것이 그대로 결승골이 되었다.
이탈리아가 미국과 스페인,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꺾고 결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르헨티나 대표로 뛰었던 몬티, 구와이타, 오르시의 활약이 컸다. 제1회 대회 때 남미의 아르헨티나 대표가 되어 결승에 진출했던 그들이, 제2회 대회에서는 유럽의 이탈리아 대표가 되어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 결승전, 체코
이탈리아가 마지막으로 상대해야 할 팀은 루마니아, 스위스, 독일을 차례로 이기고 올라온 체코슬로바키아였다. 대진운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체코 역시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기술에 의존하는 팀이었다. 반면에 이탈리아는 포치오 감독의 지휘 아래 힘의 축구를 구사하며 우승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온 팀이었다.
숙명의 결승전은 6월 10일 로마에서 거행되었다. 양 팀은 최선을 다해서 상대편의 골문을 공략했지만 후반전 20분까지 0대 0의 균형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균형의 상황에서 먼저 한 골을 넣은 것은 체코였다. 체코의 왼쪽 윙 푸치가 선제점을 넣으면서 승리의 여신이 체코를 선택하는 듯싶었다.
이탈리아 관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경찰이 동원되어서야 관중들의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중들의 흥분은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이 경기는 난폭한 관중과 독재자 무솔리니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기에서 진다면 이후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선수들의 머리에 떠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남은 시간 8분, 아르헨티나 대표였다가 이탈리아 대표가 된 오르시가 필사적인 돌파 끝에 오른발 슈팅을 날렸고 기적 같은 동점골을 성공 시켰다(이 기적의 골을 넣은 오르시는 경기 다음날 똑같은 지점에서 20여차례 슈팅을 날렸지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르시의 동점골은 패색이 짙은 이탈리아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선수들을 구한 것이 되었다.
연장전이 시작되면서 이탈리아가 체코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연장 7분에 메에짜가 체코 진영으로 공을 몰고 들어갔고, 포치오 감독의 사인을 받고 구와이타에게 패스를 했다. 체코의 수비수들이 구와이타에게 몰리는 틈에 구와이타의 발을 떠난 공은 체코 문전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키아비오에게 정확히 전달되었고, 스키아피오의 슛은 체코의 골문을 뒤흔들면서 이탈리아가 역전승을 거두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출발하여, 결국 제2회 월드컵의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의 선전장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월드컵은 제1회 대회 때 심판으로 이름을 날렸던 랑제니의 표현에 따르면 실패작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조건 이기는 것에만 집착했던 이탈리아가 우승을 하면서 스포츠 정신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2회로 접어들면서 월드컵 축구는 불순한 생각과 과정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스포츠 제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제1회 대회에서는 한 군데에서 모든 경기가 진행되었지만, 벌써 제2회 대회에 접어들면서 한 도시에서 치르기에는 거창한 대회가 되어버렸다.
[제2회 월드컵] 집착에서 우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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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목표는 우승"
제2회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이탈리아가 우승할 가능성은 점차 커졌다. 전 대회 챔피언인 우루과이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불참을 통보해 온 것이다. 제1회 대회에서 유럽의 비협조적 태도에 대한 복수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루과이의 전력이 그다지 독보적이지 못했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루과이의 불참은 이탈리아로서는 우승의 가능성을 한층 높여준 것이 사실이다.
다음으로 남미의 강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본선에 진출했지만 정예 멤버를 구성하지는 않았다. 비록 2진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존재는 상당히 위협적임에 틀림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로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상당히 먼 곳에 배치해 놓는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가 유럽의 국가들 중에서 경계해야 할 팀은 후고 마이슬이 이끄는 오스트리아였다. 당시 유럽의 축구 판도는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에 뭉쳐 있는 잉글랜드는 여전히 월드컵 참가에 회의적이었다. 따라서 이탈리아로서는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오스트리아가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였다.
이탈리아의 포치오 감독은 이탈리아가 최강의 군단으로 탄생되려면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리그를 대표하는 클럽의 소속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한편, 다른 나라의 선수라 할지라도 이탈리아와 연관이 있다면 이탈리아 대표 선수로 만들어 버렸다. 파시스트의 협조 아래 아르헨티나의 대표였던 오르시와, 몬티, 구와이타가 이탈리아 대표팀에 합류했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이번 대회에서 홈그라운드 이점 이상으로 국민의 기대와 우승에 대한 집념은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참가국 16개 팀 중에 최고의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대표로 뛰었던 선수들까지도 불러들이면서 선수 구성이 끝난 뒤, 포치오 감독은 전형적인 잉글랜드 축구를 도입하여 힘과 체력을 바탕으로 한 막강한 '아주리 군단'을 창설했다. 그들이 최후의 순간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면 가장 우승권에 가깝게 접근해 있는 팀이라고 할 수 있었다.
# 16강전, 미국
이탈리아가 16강에서 만난 상대는 전 대회 4강 진출의 신화를 일궈낸 미국이었다. 1934년 5월 27일 파시스트의 열렬한 응원 아래 이탈리아는 구와이타, 메아짜, 스키아비오, 페라리, 오르시, 몬티로 이어지는 힘의 포진에서 분출되는 엄청난 파워로 내세울 것은 힘밖에 없었던 미국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지면 탈락이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오히려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탈리아는 스키아비오(18분), 오르시(20분), 스키아비오(29분)의 연속 골로 전반을 3대 0으로 끝냈다. 후반 들어서 미국의 도넬리가 한 골을 만회했지만(57분), 다시 이탈리아의 페라리(63분), 스키아비노(64분), 오르시(69분)가 연거푸 득점에 성공하면서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경기 종료 직전에 메아짜(90분)가 골을 성공시키면서 최종 스코어는 7대 1, 이탈리아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버렸다.
# 8강전, 스페인
5월 31일, 이탈리아는 남미의 강호 브라질을 3대 1로 꺾고 올라온 스페인과 8강에서 맞붙었다. 스페인이 예상을 뒤엎고 브라질을 격파하고 8강에 진출하는 데는 자모라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이 있었다. 당시 경기에서 브라질의 파상 공격은 자모라 골키퍼의 전설을 만들어주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이탈리아로서는 브라질을 만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브라질을 격파하고 올라온 스페인이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스페인의 자모라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은 계속되었다. 전반에만 16개의 코너킥을 얻은 이탈리아로서는 철통같은 스페인의 골문을 열지 못하고 오히려 전반 3분을 남겨놓고 역습으로 한골을 잃고 만다. 후반이 시작되고 경기의 집중력이 생기기 전에 이탈리아의 페라리가 동점골을 넣어 경기는 1대 1이 되었다.
1대 1의 스코어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결국 양 팀은 무승부를 기록하고 6월 1일에 재경기를 하게 되었다. 스페인으로서는 이탈리아의 난폭한 플레이 덕분에 자모라 골키퍼가 부상을 당해 재경기에는 뛸 수가 없었다. 결국 승리에만 집착한 이탈리아는 자모라 골키퍼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한 스페인을 재경기 끝에 1대 0으로 물리치고 4강에 진출하였다.
# 4강전, 오스트리아
제2회 월드컵의 4강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로 압축되었다. 이탈리아로서는 결승의 문턱에서 최대의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1대 5라는 처참한 스코어로 패한 바 있는 오스트리아와의 준결승이 사실상 결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준결승은 밀라노에서 6월 3일에 거행되었는데, 이 날의 경기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수중전으로 전개되었다. 수중전이 전개되자, 힘의 축구를 구사하는 이탈리아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러나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오스트리아에게는 상당한 장애물이 되어버렸다. 오스트리아의 화려한 기술은 빗속에서는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결국 전반 18분 이탈리아의 구와이타가 오스트리아의 골문을 흔들었고, 그것이 그대로 결승골이 되었다.
이탈리아가 미국과 스페인,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꺾고 결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르헨티나 대표로 뛰었던 몬티, 구와이타, 오르시의 활약이 컸다. 제1회 대회 때 남미의 아르헨티나 대표가 되어 결승에 진출했던 그들이, 제2회 대회에서는 유럽의 이탈리아 대표가 되어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 결승전, 체코
이탈리아가 마지막으로 상대해야 할 팀은 루마니아, 스위스, 독일을 차례로 이기고 올라온 체코슬로바키아였다. 대진운이 상대적으로 좋았던 체코 역시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기술에 의존하는 팀이었다. 반면에 이탈리아는 포치오 감독의 지휘 아래 힘의 축구를 구사하며 우승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온 팀이었다.
숙명의 결승전은 6월 10일 로마에서 거행되었다. 양 팀은 최선을 다해서 상대편의 골문을 공략했지만 후반전 20분까지 0대 0의 균형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균형의 상황에서 먼저 한 골을 넣은 것은 체코였다. 체코의 왼쪽 윙 푸치가 선제점을 넣으면서 승리의 여신이 체코를 선택하는 듯싶었다.
이탈리아 관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경찰이 동원되어서야 관중들의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중들의 흥분은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이 경기는 난폭한 관중과 독재자 무솔리니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기에서 진다면 이후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선수들의 머리에 떠다니고 있었던 것 같다.
남은 시간 8분, 아르헨티나 대표였다가 이탈리아 대표가 된 오르시가 필사적인 돌파 끝에 오른발 슈팅을 날렸고 기적 같은 동점골을 성공 시켰다(이 기적의 골을 넣은 오르시는 경기 다음날 똑같은 지점에서 20여차례 슈팅을 날렸지만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르시의 동점골은 패색이 짙은 이탈리아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선수들을 구한 것이 되었다.
연장전이 시작되면서 이탈리아가 체코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연장 7분에 메에짜가 체코 진영으로 공을 몰고 들어갔고, 포치오 감독의 사인을 받고 구와이타에게 패스를 했다. 체코의 수비수들이 구와이타에게 몰리는 틈에 구와이타의 발을 떠난 공은 체코 문전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키아비오에게 정확히 전달되었고, 스키아피오의 슛은 체코의 골문을 뒤흔들면서 이탈리아가 역전승을 거두게 되었다.
이탈리아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출발하여, 결국 제2회 월드컵의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의 선전장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월드컵은 제1회 대회 때 심판으로 이름을 날렸던 랑제니의 표현에 따르면 실패작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조건 이기는 것에만 집착했던 이탈리아가 우승을 하면서 스포츠 정신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2회로 접어들면서 월드컵 축구는 불순한 생각과 과정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스포츠 제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제1회 대회에서는 한 군데에서 모든 경기가 진행되었지만, 벌써 제2회 대회에 접어들면서 한 도시에서 치르기에는 거창한 대회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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