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야기 14] 남미의 불만과 전쟁의 불안
[제3회 월드컵] 개최국 선정과 지역예선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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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대회, 개최국 선정과 남미의 불만


제3회 월드컵 개최를 희망한 나라는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유럽의 프랑스였다. 당시 FIFA 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은 그들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막강하였다. 초대 회장 로베르 게렝, 그리고 당시 FIFA 회장 쥴리메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이러한 영향력과 함께, 유럽의 국가들은 머나먼 남미로의 여행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이후 열린 FIFA 총회에서 제3회 대회의 개최권은 프랑스로 결정되었다.

제3회 대회는 제2회 대회의 방식(16개 팀이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을 그대로 채택하였다. 또한 전 대회 우승국과 개최국에게 자동진출권을 부여하였기 때문에 월드컵 참가를 희망하는 국가들은 14장의 티켓을 놓고 지역예선을 치러야 했다.

당시까지 세계축구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던 남미는 제3회 대회의 개최국 결정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개최국 경쟁에서 물먹은 아르헨티나는 당연히 남미에서 열릴 차례의 대회를 교통수단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프랑스로 결정한 FIFA의 처사를 ‘유럽 국가들의 편견이며, 축구에 열광적인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생각하였다. 나아가 지역예선도 통과하지 못할 프랑스를 걱정한 쥴리메를 위한 유럽의 결정이라고 비난하였다.

제2회 대회에 자국의 유능한 선수들을 이탈리아에게 빼앗기고 감정이 상해있던 아르헨티나는 제3회 대회의 개최권도 얻지 못하게 되자 제3회 대회 불참을 결정하였다. 제1회 대회의 앙금이 가시지 않은 우루과이가 여전히 참가를 거부하고 있었고, 새로이 아르헨티나가 불참의 대열에 합류하면서 남미의 국가들 중에 지역예선에 참가한 나라는 브라질과 볼리비아뿐이었다. 그나마 볼리비아는 브라질과의 경기에 기권함으로 브라질만이 제3회 대회에 참가한 유일한 남미 국가가 되었다.

줄리메와 프랑스에게는 기쁘고 감격적인 순간이었지만, 유럽을 제외한 지역의 국가들에게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결정으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온 세계인의 축제로 발돋움을 하기 시작한 월드컵이 성숙한 단계로 도약하기에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전쟁의 불안감 속에 진행된 지역예선

이러한 남미 대륙의 불만과 소극적인 태도와 함께, 유럽에서는 정치적으로 국가간의 긴장과 갈등 관계가 증폭되었고, 전쟁 직전의 불안감이 서서히 증가되는 가운데 지역예선이 진행되었다.

독일, 스웨덴, 에스토니아, 핀란드가 2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대결한 결과 3승을 거둔 독일과 2승 1패를 거둔 스웨덴이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이 결과는 이미 시작 전부터 많은 축구팬들이 예상하고 있었다. 독일은 제2회 대회 3위의 성적을 거둔 바 있고, 스웨덴은 제2회 대회에서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3-2로 꺾은 바 있는 저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2회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걸출한 스트라이커 브루닐센을 보유한 노르웨이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폴란드를 3-0으로 누르고 동메달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노르웨이는 아일랜드와 본선 진출을 놓고 맞대결을 하여 힘겨운 승부 끝에 1승(3-2), 1무(3-3)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폴란드는 제1회 대회 4강 진출국인 유고슬라비아와 1승(4-0), 1패(0-1)를 기록하였지만 골득실에 의해서 본선에 합류하게 되었다. 제1회 대회 4강 진출국인 유고슬라비아는 제2회 대회와 제3회 대회 지역예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강호의 대열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또한 제2회 대회 지역예선에서 아쉽게 강호 체코슬로바키아에게 1무(0-0), 1패(1-2)를 기록하며 탈락했던 폴란드로서는 감격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루마니아는 같은 조에 배정된 이집트가 기권하는 바람에 싸우지 않고 본선 진출을 결정하는 행운을 맛보았다. 루마니아는 특별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팀은 아니었지만 제1회 대회부터 3회 대회까지 연속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한편, 제2회 대회 당시에도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팀으로 인정받고 있던 헝가리는 팔레스타인을 꺾고 올라온 그리스를 상대하여 무려 11-1로 대파하면서 본선진출을 확정지었다. 헝가리의 스트라이커 사로시는 제2회 대회보다 훨씬 원숙한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한층 기대를 받고 있었다.

스위스는 포르투갈을 2-1로 제압하고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제2회 대회에서 강호 스페인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을 맛보았던 포르투갈로서는 스위스를 맞이하여 본선 진출을 희망했으나 아쉽게 무릎을 꿇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제2회 대회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보여준 스위스(강호 네덜란드 격파, 체코슬로바키아에게 아쉽게 패배)는 아베글렌 3세를 중심으로 한 공격력이 한층 강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2회 대회 준우승 체코슬로바키아는 제3회 대회를 맞이하여 제2회 대회보다는 질적인 면에서 다소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지역예선에서 불가리아를 맞이하여 1승(6-0) 1무(1-1)로 따돌리고 본선 진출을 확정하였으며, 아직 네예들리가 건재하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제2회 대회에서 하마터면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기적의 팀’ 오스트리아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숙적 이탈리아를 상대로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1-2로 아쉽게 패하며 월드컵에 이어 올림픽에서도 이탈리아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3회 월드컵을 맞이하는 오스트리아로서는 이번이 설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지역예선에서 리투아니아를 2승으로 따돌리고 올라온 라트비아를 2-1로 제압하면서 본선 진출을 확정하였다.

그러나 이탈리아를 꺾고 최강자가 되려는 오스트리아의 꿈은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좌절되고 말았다. 조국 오스트리아가 본선을 앞두고 독일에 합병되는 바람에 오스트리아 팀은 본선에는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오스트리아의 유능한 선수들은 독일 대표에 뽑혀서 월드컵의 무대를 밟아야 했으며, 오스트리아 최고의 공격수 진델라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더욱 슬픔을 안겨주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룩셈부르크를 따돌리며 나란히 1승 1무를 기록하고 본선행 티켓을 확보하였다. 전통의 강호 벨기에는 월드컵에 세 번 연속으로 출전하는 영광스러운 기록을 획득하였지만, 제1회 대회(3패), 제2회 대회(1패)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본선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한 벨기에로서는 구겨진 자존심을 제3회 대회에서 만회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었다.

남미에서는 브라질이 볼리비아의 기권으로 본선 티켓을 확보하였다. 브라질은 실력에 비해서 월드컵에서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제1회 대회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게 덜미를 잡히며 8강 진출에 실패했고, 제2회 대회에서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치고도 스페인에게 무릎을 꿇은 바 있었다. 이제 제3회 대회를 맞이한 브라질은 다른 남미 국가들이 월드컵 참가를 거부하고 있었지만, 브라질로서는 우승을 향한 집념이 강했고 충분히 우승을 할 수 있는 전력을 갖고 있었다. 브라질 선수들의 개인기는 최고였으며, 걸출한 스트라이커 레오디나스를 앞세운 공격력은 최강이었다.

아시아에서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일본이 지역예선에 참가했는데, 일본이 기권하는 바람에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어부지리로 본선에 진출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일본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유럽의 강호 스웨덴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유럽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지만, 지역예선에서 기권하는 바람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는 영광은 네덜란드령 동인도가 차지하게 되었다.

야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쿠바가 제3회 대회에 북중미 대표로 깜짝 출전하게 되었다. 쿠바는 지역예선에 참가한 다른 팀들이 줄줄이 기권하는 바람에 참가 자격을 얻게 되었다.

이로써 제3회 월드컵은 지역예선을 통과한 14개 팀(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스위스,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브라질, 네덜란드령 동인도, 쿠바)과 개최국 프랑스, 전 대회 우승국 이탈리아의 16개국이 본선에서 겨루게 되었다. 그러나 본선 직전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는 바람에 출전 자격이 상실되면서 FIFA는 잉글랜드에게 자리를 채워달라고 부탁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결국 15개 팀이 토너먼트로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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