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월드컵 2연패의 금자탑을 이루다
[월드컵 이야기 15] 이탈리아, 운도 많이 따랐던 제3회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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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팬딩 챔피언 이탈리아

제2회 월드컵의 우승자 이탈리아는 1930년대 세계 축구의 정상으로 군림하였다. 1934년 월드컵에서 체코슬로바키아를 누르고 우승한 이탈리아는 2년 뒤 베를린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라이벌 오스트리아를 누르고 다시 한번 정상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당시 기록으로 살펴보면 이탈리아는 무적의 군단은 아니었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은 개최국이라는 이점을 충분히 살린 결과였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4강에서 노르웨이와 연장 승부를 벌이며 간신히 승리하였고, 결승에서도 오스트리아와 연장 승부 끝에 2-1로 승리하고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축구는 그야말로 ‘꿩 잡는 게 매’라는 속담처럼 과정보다는 우승이라는 결과를 더욱 선호하고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가 우연하게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토리오 포조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이 뒷받침된 이탈리아는 1938년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여전히 우승후보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었다.

# 이탈리아 이외의 우승을 노리는 국가들

1938년 제3회 월드컵을 맞이하여 이탈리아는 대회 2연패를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이탈리아가 경계해야 할 국가는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브라질 정도였다.

이 중에 오스트리아는 ‘기적의 팀’으로 불리며 대회 직전까지도 강력한 우승후보의 하나로 지목되었다. 오스트리아는 지역예선까지 통과하였지만, 역사적으로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독일에게 합병되어 팀이 해체되고 독일팀에 흡수되는 바람에 참가 자격을 상실해 버렸다.

노르웨이는 1936년에 동메달을 차지하였는데, 동메달 획득의 주역인 Arne Brustad, 그리고 지역예선에서 6골 중 혼자 4골을 넣으며 팀을 본선에 올려놓은 Reidar Kvammen, 그리고 노르웨이 국내에서 뛰어난 스트라이커로 인정받고 있는 Knut Brynildsen가 공격라인을 형성하며 다크호스로 지목되고 있었다.

폴란드는 폴란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빌리모프스키가 없이도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4강에 들었는데, 이번 월드컵을 맞이하여 빌리모프스키가 팀에 합류하면서 공격력이 상당히 증가된 팀으로 부활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4년 전에 이탈리아와 정상을 놓고 대결한 적이 있는 팀으로 4년 전보다는 그 비중이 떨어지지만 아직 네예들리가 팀을 이끌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우승후보의 대열에 꼽힐 수 있었다.

초창기 축구 역사에 있어서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와 함께 동구권(중유럽)의 축구의 정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헝가리 역시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팀으로 분류되었다.

남미의 유일한 참가국인 브라질은 그 당시에는 우루과이나 아르헨티나보다는 약간 밀리는 실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네오니다스라는 뛰어난 스트라이커를 보유하고 있었고, 다른 남미 국가들이 불참하는 가운데 우승을 장담하며 참가를 강행할 정도로 의지가 있었다.

# 이탈리아, 결승을 향한 행진

이탈리아가 우승을 향한 여정에서 처음으로 만난 상대는 북유럽의 강호 노르웨이였다. 노르웨이와 이탈리아는 2년 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준결승에서 만난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이탈리아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로 승리를 거둔 적이 있었다(노르웨이는 연장에서 이탈리아에게 패하고 3-4위전으로 밀려났으며, 폴란드에게 3-2로 승리하며 동메달을 차지했다).

1938년 6월 5일, 이탈리아는 노르웨이를 상대로 경기 시작한 지 2분 만에 페라리(Ferraris)가 골을 성공시키며 1-0으로 앞서나갔다. 한 골을 뒤진 노르웨이는 브룬스타드와 브루닐센을 앞세워 줄기차게 이탈리아의 골문을 위협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수비와 골키퍼는 많은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였다.

후반 종반까지 이탈리아는 1-0으로 앞서며 승리를 눈앞에 두었지만, 노르웨이의 스트라이커 브룬스타드가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연장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노르웨이로서는 연장에서 역전을 노렸지만, 노련한 이탈리아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2-1로 무릎을 꿇었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행운도 많이 따랐는데, 노르웨이가 넣은 골 하나가 오프사이드로 판정되어 득점으로 인정되지 못하였다.

노르웨이를 힘겹게 물리치고 8강에 진출한 이탈리아는 6월 12일, 비교적 쉬운 상대인 프랑스와 준결승 진출을 위해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보다는 전력이 약했지만, 개최국이며 첫 번째 라운드에서 벨기에를 3-1로 제압하며 사기가 올라있었다.

프랑스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선수들이 파시즘의 이탈리아를 꺾어주기를 기대했지만, 객관적인 실력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었다. 이날의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노르웨이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피올라가 두 골을 넣는 활약을 하며 3-1로 승리하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탈리아의 준결승 상대는 남미의 브라질이었다. 비록 브라질이 당시에 남미의 정상권(우루과이, 아르헨티나)에는 조금 못 미치는 실력을 갖고 있었지만,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상당히 뛰어난 팀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브라질은 첫 번째 라운드에서 빌리모프스키가 이끄는 폴란드를 상대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6-5로 간신히 이겼다(6월 5일). 다음으로 8강에서 브라질은 또 다른 강팀을 만나게 되는데, 4년전 월드컵 준우승으로 네예들리가 버티는 체코슬로바키아였다. 브라질은 체코슬로바키아와 1-1로 비긴 후에(6월 12일), 재경기를 통하여 2-1로 간신히 이기고(6월 14일)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준결승에 올라올 때까지 두 번의 연장전과 한 번의 재경기를 치른 브라질로서는 또 다시 이틀 만에 이탈리아와 준결승을 치르는 힘든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브라질 감독은 체력적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레오니다스를 준결승에 내보내지 않고 이탈리아를 이기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레오니다스의 공백과 체력적인 열세에서 브라질은 이탈리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체력적으로 우세한 이탈리아는 레오니다스가 빠진 브라질을 상대로 6월 16일에 경기를 가졌는데, 먼저 두 골을 넣으며 2-0으로 앞서나갔다. 브라질은 이탈리아의 두 번째 골인 페널티킥 판정에 불만을 품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브라질은 종료 직전에 한 골을 만회했지만 승리의 여신은 이탈리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탈리아는 브라질을 2-1로 이기며 결승에 진출하여 헝가리와 우승을 다투게 되었다.

# 이탈리아, 월드컵 2연패의 금자탑을 이루다

이탈리아의 경쟁상대로 지목된 다른 팀들 중에서 노르웨이를 제외하고는 서로 물로 물리는 접전 가운데 탈락하거나(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체력적인 부담을 안고 이탈리아와 상대하는 바람(브라질)에 이탈리아는 비교적 운 좋게 결승까지 합류하였다.

한편 헝가리는 비교적 쉬운 상대를 만나 결승까지 순탄하게 행진했다.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와 함께 중유럽의 정상권을 형성하고 있던 헝가리는 네덜란드령 인도를 6-0으로, 스위스를 2-0으로, 스웨덴을 5-1로 격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헝가리의 스트라이커 사로시(Sarosi)는 매 경기 득점을 올리며 팀이 결승에 오르는 데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세 번째 월드컵의 정상을 위한 경기는 1938년 6월 19일에 파리의 콜롬보 스타디움에서 6만 5천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작되었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피올라(Piola 16분, 82분)와 콜라우시(Colaussi 6분, 35분)가 각각 2골을 기록하며 틱코스(Titkos, 8분), 사로시(70분)가 한 골씩 만회한 헝가리를 4-2로 누르며 승리를 거두었다.

이탈리아는 1934년 월드컵 정상, 1936년 올림픽 정상에 이어 1938년 월드컵 정상에 오르는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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