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야기 37] 유럽과 남미, 자존심의 대결
[제7회 1962년 칠레 월드컵] 지역예선

 

=-=-=-=-=-=-=

 

# 남미에서 열린 월드컵

두 번이나 유럽에서 월드컵이 열렸기 때문에 다음번 대회 경쟁에서는 남미가 유리했다. 서독이 제7회 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나섰지만,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제7회 월드컵이 남미에서 열려야 한다는 남미 국가들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였다.

제7회 월드컵의 개최권을 놓고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경합을 벌였는데, 뜻밖에도 칠레가 개최권을 획득하였다. 아르헨티나는 계속적인 개최권 경쟁에서 실패하면서 그동안 FIFA의 결정에 반발했던 행동들이 다른 회원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칠레 축구협회장 카를로스 디트본의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월드컵을 유치해야 한다”는 연설은 FIFA 위원들을 감동시키며 아르헨티나와의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비록 개최지로 선정되었지만 칠레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지진과 화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칠레는 경기장 확충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월드컵이 열리기 2년 전에 칠레를 강타한 지진은 국가의 존폐마저 위협하는 커다란 자연재해였다. 그러나 칠레 축구협회장 디트본과 칠레 국민들의 의지는 결국 월드컵 개최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칠레 축구협회장 디트본은 사재까지 털어가면서 칠레가 월드컵을 유치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최선을 다했지만, 정작 월드컵이 열리기 32일 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보지 못했다.

# 치열한 지역예선, 대륙 이기주의

제7회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는 노골적으로 축구의 변방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개최국인 칠레와 전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이 중남미 국가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본선 티켓이 줄어들 것을 예상한 유럽의 입김이 작용하여 아시아와 아프리카에게 한 장씩 할당된 본선 진출권을 놓고 유럽의 국가와 플레이오프를 치르도록 결정하였다. 그리고 북중미의 실력 또한 FIFA에 의해서 무시되기 시작하면서 북중미의 승자는 남미의 파라과이와 플레이오프를 치르도록 결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은 월드컵의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숭고한 의미와 함께, 자기들 대륙에 할당된 본선 진출권을 한 장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대륙 이기주의가 작동한 결과였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이러한 부당한 결정으로 어려운 지역예선을 치르게 되었다.

# 유럽의 지역예선

유럽의 지역예선에서는 전 대회 준우승 스웨덴이 스위스에게 플레이오프 끝에 패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만약 골득실이 순위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면 스웨덴이 본선에 오를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승점이 같으면 플레이오프를 치르도록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스웨덴은 끝내 본선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다.

2조의 프랑스 역시 골득실에서는 불가리아보다 높았지만 승점이 같았기 때문에 불가리아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고, 제3국(이탈리아)에서 열린 플레이오프에서 0-1로 패하면서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8조의 체코슬로바키아는 스코틀랜드와 3승 1패로 동률을 이루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스웨덴과 프랑스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그들은 골득실에서 스코틀랜드보다 앞섰지만 규정상 플레이오프를 치렀는데, 연장승부 끝에 4-2로 승리하며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전통의 강호 헝가리는 4조에서 네덜란드와 동독을 제압하며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오늘날 정상권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네덜란드는 아직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이류권 국가로 추락해 있었다. 동독은 서독의 화려한 모습 덕분에 더욱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2년 전인 1960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5조의 소련은 터키와 노르웨이를 제압하며 무패의 전적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축구 종주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선봉장인 잉글랜드는 포르투갈과 룩셈부르크를 제치고 6조에서 1위를 기록하여 본선 진출에 합류하였다.

# 남미의 지역예선

개최국과 전 대회 우승국이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하고 3장이 할당된 남미의 지역예선에는 7개 팀이 참가했는데, 그중에 파라과이가 북중미 승자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어 6개 팀이 3장의 티켓을 놓고 격돌했다.

아르헨티나는 약체로 지목된 에콰도르에게 2승을 거두고 본선에 무난히 합류했다. 우루과이는 홈경기에 유난히 강한 볼리비아의 홈에서 1-1로 비기며 고전했지만 홈에서 2-1로 승리하며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콜롬비아와 페루의 경기에서는 홈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콜롬비아가 1승 1무로 본선 티켓을 확보하였다.

# 축구의 변방, 어려운 조건의 지역예선을 치르다

유럽의 제7조는 복잡한 구성원으로 지역예선을 치렀다. 지역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했지만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아시아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이스라엘이 첫 번째 라운드에서 키프로스를 제압하고 두 번째 라운드에서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를 2승으로 누르고 결승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이스라엘의 결승 라운드 상대는 루마니아의 기권으로 결승 라운드에 무혈입성한 이탈리아였다. 결승 라운드에 오르기까지 두 번의 라운드를 통과한 이스라엘은 현격한 실력의 차이를 느끼며 이탈리아에게 두 번 패하고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되었다.

아프리카에 할당된 티켓을 위해서 우선 아프리카 팀들이 격돌한 지역예선에서 모로코가 튀니지와 가나를 제치고 승자가 되었는데, 그들로서는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 또 하나의 험한 산을 넘어야 했다. 그들의 상대는 웨일즈를 1승 1무로 꺾고 올라온 9조의 스페인이었다. 모로코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두 번 다 패하며(0-1, 2-3) 아프리카에 배정된 한 장의 티켓을 유럽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아시아에 할당된 티켓을 위해서는 한국이 일본을 제압하고(2-1, 2-0) 최종 승자가 되었지만, 유럽의 제10조에서 폴란드를 꺾고 올라온 유고슬라비아에게 5-1, 3-1로 패하며 아시아에 배정된 한 장의 티켓을 유럽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북중미 역시 FIFA에 의해서 그 지역의 최종 승자와 남미의 파라과이가 플레이오프를 치르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북중미의 승자인 멕시코는 홈에서 1-0으로 승리하고, 어웨이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며 1승 1무로 본선 진출에 성공하였다.

# 유럽과 남미, 자존심의 대결

본선에 오른 16개의 팀이 4개조로 나뉘어 상위 2팀이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 완전히 정착했는데, 남미의 4개 나라(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와 약체로 알려진 4개 나라(멕시코, 콜롬비아, 스위스, 불가리아)에게 시드를 배정하여 각기 다른 조에 편성하고 나머지 유럽의 8개국을 무작위로 추첨하여 조를 편성하였다.

1조 : 소련, 유고슬라비아, 우루과이, 콜롬비아
2조 : 서독, 칠레, 이탈리아, 스위스
3조 : 브라질, 체코슬로바키아, 멕시코, 스페인
4조 : 헝가리,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남미축구의 기술에 밀리기 시작한다고 느끼기 시작한 유럽은 1960년 유럽선수권대회를 통해서 실전감각을 익혔고, 강력한 파워축구를 바탕으로 적지(남미)에서 월드컵을 탈환하려고 하였다. 이에 비하여 남미는 남미대로 유럽을 제압하고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화려한 기술을 바탕으로 대회 2연패를 노리는 브라질을 선두로, 남미 축구에서 명예회복을 노리는 아르헨티나,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려는 우루과이, 그리고 개최국 칠레가 남미 축구를 이끌고 있었다면, 유럽의 축구는 유럽선수권 우승자 소련, 올림픽 챔피언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하여, 축구 종주국의 명예를 찾기 위해 참가한 잉글랜드, 전통의 강호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우승의 경험이 있는 이탈리아와 서독이 정상을 노리고 있었다.

이러한 자존심의 대결은 자연스럽게 거친 경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했으며, 역사적으로 가장 거친 대회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