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신화는 어디까지인가?
[비전문가의 월드컵 관전 소감 9] F조 호주 vs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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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를 모르는 우리나라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002년 4강 신화를 이루어낸 히딩크 감독이 호주 감독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물에 빠진 호주가 히딩크라는 지푸라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와의 플레이오프를 통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예상을 깨고 히딩크 감독은 승부차기 연습까지 시키면서 우루과이와의 마지막 경기를 준비했습니다. 결과는 1승 1패... 히딩크 감독의 예상대로 승부차기를 통해서 호주는 월드컵의 땅 독일에 갈 수 있는 티켓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조추첨이 끝났을 때 히딩크 감독의 호주는 세계 최강 브라질, 신흥 강호 크로아티아, 얄밉지만 떠오르는 아시아의 강호 일본과 한조가 되었습니다. 브라질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할리 없다는 것을 가정할 때, 과연 크로아티아, 일본, 호주 중에 어느 나라가 16강에 진출할 한 장의 티켓을 거머쥘 것인지 축구팬들의 예상은 일치하지 않고 저마다 제각각이었습니다.

F조의 첫 경기인 일본과 호주와의 경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안드는 일본에 대해서 히딩크 감독의 호주가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단 나만의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지방 출장으로 혼자 남아서 집을 지키는 아내는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일본과 호주의 경기를 지켜보았고, 일본이 1대 0으로 이기는 상황에서 신경질나서 TV를 끄고 잤다고 했습니다)

하필이면 일본과 호주와의 경기가 있는 날, 지방(대전)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몸은 대전에서 회의를 하고 있지만 머리는 계속해서 월드컵 생각에 오전과 오후의 회의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위원회 회의를 끝내고 저녁을 먹고 스텝 회의를 하는 가운데 온통 관심은 일본과 호주의 경기에 가 있었습니다. 밖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의 응원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회의를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습니다.

갑자기 회의장 밖에서 아쉬운 탄식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궁금한 나머지 나가보니 일본이 선취골을 넣고 기뻐하는 모습이 TV에 보였습니다. 골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데 명백하게 골피커 차징이었습니다. 일본의 공격수가 공을 잡기 위해 뛰어오르는 호주의 골키퍼를 밀었던 것입니다.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한골을 먹은 것처럼 아쉬워했고, 일본의 골이 정당하지 못했다며 억울해 했습니다.

후반전까지 밖에서 아무런 소리가 없어서 1대 0의 스코어로 경기가 끝날 것 같다는 예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환호성이 터졌습니다. 나가보니 호주가 39분경 동점골을 넣고 기뻐하는 모습이 TV에 잡혔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우리나라가 한골을 넣은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다시금 회의를 진행하는 데 다시 밖에서 환호성이 터졌고, 나가보니 호주가 두 번째 골을 넣은 것입니다. 기쁜 마음에 흥분을 억누르고 다시금 회의를 진행하는 데 다시 환호성이 들렸습니다. 3대 1의 스코어였습니다.

이때쯤 회의의 주제는 갑자기 축구로 옮겨졌고, 히딩크 감독이 일을 낼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일본의 패배가 이렇게 기쁠 수 없다는 말, 이러다가 히딩크 감독이 브라질도 잡는 거 아니냐는 말 등 이런 저런 이야기로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밖에서 또 다른 함성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호주가 한골을 더 넣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함성소리는 경기가 끝나고 골 장면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과정에서 TV에서 나온 함성소리였습니다.

일본은 선취골을 지켜내지 못하고 후반 39분 이후에 세골을 연달아 허용하면서 뼈아픈 1패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하이라이트로 호주가 승리하는 감격적인 장면에 늦게나마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매스컴의 보도로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이 뛰어났던 경기였다는 평가도 들었습니다.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던 대한민국을 2002년에 4강으로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은 2006년에 1승은커녕 한골도 넣지 못한 호주의 감독이 되어 새로운 신화에 도전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 신화를 향한 첫 신호탄은 일본에게 1대 0으로 지고 있던 가운데 3골을 몰아넣어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입니다.

호주로서는 남은 두 경기는 오히려 일본전보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세계 최강 브라질과 신흥 강호 크로아티아는 호주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월등히 앞선 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2002년 포르투칼,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세계 4강의 신화를 이룩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호주는 오히려 브라질이나 크로아티아보다 부담없는 경기를 펼칠 수 있습니다. 브라질과 크로아티아는 전력상 우위에 있기 때문에 이기면 본전, 지면 대망신이라는 부담으로 경기에 임할 것입니다.

아직 첫 경기밖에 치르지 않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팀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거스 히딩크가 보여준 용병술과 경기를 읽는 능력은 팀의 전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히딩크의 마법이 일본을 격침시켰다는 표현이 나왔겠습니까?

일본으로서는 자국에서 벌어진 한일월드컵에서만 승리한 기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2006년 월드컵을 통해서 진정한 실력을 발휘하고 인정을 받을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이제 남은 경기에서 전패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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