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우리는 이 순간을 16년간 애타게 기다려왔다!"
[비전문가의 월드컵 관전 소감 10] E조, 체코 vs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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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랭킹 2위, 동유럽 최강의 체코는 1990년 이후 16년 동안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고 합니다.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도 번번히 본선 티켓을 놓치던 체코가 2006년 월드컵에 천신만고 끝에 본선행 티켓을 얻었습니다.

지역예선에서 네덜란드(10승 2무)에 밀려 9승 3패의 성적으로 2위에 머물러 노르웨이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이김으로 어렵게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특히 34살의 네드베트는 유로 2004 준결승에서 그리스에게 패한 후 대표팀을 떠났다가, 월드컵 지역예선 노르웨이와의 경기에 복귀하여 꿈에 그리던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체코가 속한 E조는 톱시드를 배정받은 이탈리아와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 북중미 예선을 1위로 통과한 미국이 속해 있는 또 하나의 ‘죽음의 조’라고 부를 수도 있는 조였습니다. 체코의 조별리그 첫 상대로 예정된 팀은 피파랭킹 5위의 미국이었습니다.

물론 미국이 진정한 피파랭킹 5위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겠지만, 미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팀으로 북중미 예선에서 멕시코를 제치고 조 1위를 차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팀이었습니다.

피파랭킹 2위와 5위의 대결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었지만 16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체코는 승리에 굶주려 있었습니다. 경기 시작 5분만에 얀 콜레르의 헤딩골로 기선을 제압한 체코는, 동점골을 넣기 위한 미국의 공격(28분 레이나)이 골대를 맞는 불운으로 불길한 징조를 보이는 가운데, 36분 로시츠키의 25m 중거리 슛이 작렬하면서 2대 0으로 달아났습니다.

후반전에도 밀고 밀리는 접전이 있었지만 미국의 공격이 체코의 체흐 골키퍼를 뚫지 못하고 로시츠키가 추격의 의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쐐기골을 성공시켜 점수 차이는 3대 0으로 더 벌어졌으며 이 점수는 그대로 경기의 결과가 되었습니다.

체코는 이번 경기에서 피파 랭킹 2위가 결코 허풍이 아님을 증명했으며, 34살에 월드컵에 데뷔한 네드베트는 첫 출전에 감격적인 승리로 운동장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TV에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체코가 16년동안 월드컵 본선 무대를 갈망했던 것처럼, 월드컵 역시 체코와 같이 화려하게 등장하는 팀을 기다려왔을 것입니다. 이제 조별리그가 점차 진행되면서 브라질의 독주체제를 막기 위한 새로운 팀들에 대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가지 체코로서 아쉬운 것은 주공격수 콜레르가 전반 종료 직전에 부상으로 교체된 것이었습니다. 부상의 정도가 생각보다 심하다는 진단은 체코의 남은 경기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02년부터 보여준 미국의 실력은 솔직히 들쭉날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번 체코와의 경기를 생각하면 대단히 실망스러웠는데, 한가지 전반 28분에 골대를 맞힌 레이나의 슈팅이 만약 성공했더라면 경기의 분위기는 다르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체코가 미국과의 경기만큼 남은 경기에 임한다면 보기드문 명승부를 연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은 하루빨리 패배의 기억을 잊고서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하지만 실점 3점에 무득점이라는 초라한 모습을 쉽게 잊어버리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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