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이 높다고 역사 왜곡 문제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
1) 시청률과 작품성은 별개의 문제
최근 연장방영과 역사 왜곡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드라마 <주몽>은 역사 드라마에 퓨전과 환타지를 가미한 성공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작품성까지도 뛰어났다고 할 수는 없다.
각 방송사들은 간판 드라마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시청률에 의존한다. 작품성보다는 대중성을 가지고 있어야 시청률이 오른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꿩 잡은 게 매’라는 식으로 일단 드라마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점차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끌어안으려는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의 소신은 시청자들의 요구에 의해서 럭비공 튀듯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도 한다.
2) 주몽 신드롬
방송 초기부터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MBC의 간판 드라마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해 온 퓨전 역사 드라마 <주몽>은 그야말로 MBC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주몽>이 방영되는 날에는 저녁 술자리 약속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주몽 폐인’이 등장하기도 했고, 하필이면 드라마 <주몽>의 방영 시간대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담화는 욕을 먹기도 했다.

▲ <주몽>, 위대한 고구려의 건국을 그린 드라마... 그러나 역사 왜곡의 문제는 집고 넘어가야 한다...
ⓒ MBC
드라마에 살고 드라마에 죽는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결말조차 바꿔버릴 정도로 위력이 있다. 심지어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도 시청자 게시판에는 결말에 대한 다양한 요구가 올라오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서 과거의 역사적 인물이 오늘의 상황에 적용되기도 한다. 한 인터넷 검색 사이트는 주몽의 인물들이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 누가 될 것인가를 놓고 ‘네티즌 투표’를 실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주몽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왕이 된 유리에 대해서 왕위 계승에 대해서 찬반을 논하기도 한다. 이 찬반 논쟁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그의 계승에 대해서 평가하는 차원이 아니다. 현재 드라마를 통해서 시청자들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역사적 찬반 평가라면 유리왕의 사료를 다양하게 비교 검토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는데, 시청자(네티즌)들은 드라마를 보고서 평가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 인터넷 사이트에서 네티즌의 참여로 진행중인 <주몽>에 대한 이벤트
ⓒ yahoo
뒤늦게 고구려사에 뛰어들은 <연개소문>이나 <대조영>이 <주몽>을 능가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두 드라마가 비슷한 시간대에 편성이 되어서 시청자들이 동시에 보는 경우 혼동되기 쉽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연개소문>이나 <대조영>의 시기가 고구려의 후기와 연관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사극 중에서 <용의 눈물>, <태조 왕건>과 같이 어떠한 국가의 시작은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매력이 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도 처음부터 읽지 중간이나 후반부부터 읽지는 않는다.
<연개소문>이나 <대조영>을 보면서 ‘이렇게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던 고구려는 어떻게 건국되었을까?’라는 의문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이다. 인물의 설정 측면에서 당나라를 위협했던 연개소문이나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새로운 제국을 일으킨 대조영이라는 인물이 뒤떨어지지는 않지만, 시청자들의 근본적인 호기심 측면에서 주몽이 조금 앞서는 것 같다. 물론 대조영도 새로운 국가의 시작을 가져온 인물이지만,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구려의 멸망이라는 당시의 복잡한 역사적인 상황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더 이른 시기의 고구려 건국의 주몽은 당시의 역사적 사료가 연개소문이나 대조영의 시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작가가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도 괜찮은 환타지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3) <주몽>이 잘못 알려준 역사
어떤 사람들은 역사 드라마가 올바른 역사를 왜곡해서 알려주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퓨전이건 정통이건 모두 다 해당하는 문제다. <주몽>이 시청자들에게 잘못 인식시켜준 역사적 사실은 무엇이 있을까? 주몽은 정통 사극이 아니라 퓨전 사극을 표방하고 있다. 그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무협소설을 보는 듯 착각에 빠진다.
일단 고구려를 중심으로 그리다 보니 우리 민족 역사의 한 뿌리인 ‘부여’를 너무 부정적으로 그렸다. 그리고 당시 중국의 한나라에 대한 시각이 너무 소극적이다. 당시에 외척 왕망에게 나라를 빼앗겼다가 간신히 회복해서 국력을 정비하지도 못한 한나라가 동북아시아 영역의 맹주로 그려지고 있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이다.
역사의 커다란 틀(주몽이 고구려를 세웠다)은 그대로 따르지만 주변의 상황을 환타지와 허구로 채우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역사적 꼬임이 있었다. 마치 고조선 이후에 우리 민족 전체가 한나라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것처럼 그리고 있다. 당시에 역사적으로 부여와 한사군(현토군)이 인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류가 쉽지 않았는데, <주몽>은 마치 옆 동네 들락거리듯 부여와 현토군을 묘사하고 있다. 역사적 영웅이 10살이나 많은 과부와 결혼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소서노와의 관계 역시 작가의 상당한 창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 역사 왜곡의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
MBC는 <주몽>이 끝난 다음 주인 12, 13일 이틀간 <주몽> 특집방송을 통해 10개월간의 내용 정리와 제작 뒷이야기, 배우 인사 등을 내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뒷풀이를 통해서 <주몽>의 성공을 크게 자축하려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특집 방송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주몽>이 종영을 앞둔 시점에서 고구려 건국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학설에 대해서 MBC가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서 방영해 주는 것은 어떤지 한번 제안해 보고 싶다. 드라마 주몽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적 이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제 종영을 앞둔 드라마에 소금을 뿌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를 역사와 혼동하는 수준 낮은 시청자가 아니라고 주몽의 편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전체 시청자들의 50%를 넘을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상에서 역사 왜곡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은 드라마에서 왜곡된 역사를 선별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이 쌓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 주변에는 그것이 왜곡이라는 사실에 별다른 관심이 없이 재미있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무비판적인 시청자들이 존재한다. 내 주변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주몽>의 드라마 전개를 역사와 동일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시청자들이 많이 있다.
왜 고리타분한 역사를 들먹이면서 재미있는 드라마에 시비를 거냐고 안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대답을 하고 싶다.
“우리에게 있어서 고대사는 너무나 많이 왜곡되었고 빼앗겨온 역사이다. 더 이상 빼앗기거나 왜곡되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역사이기도 하다.”
역사 왜곡의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있어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주몽>을 보면서도 고구려사에 대해 정확한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왜곡된 부분을 선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 속에도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고 고공행진을 할 수 있었다. 작가가 나름대로 창작의 소신(?)을 고수할 수 있도록 시청자들이 도와준 것이다.
그러나 비판 의식이 없이 드라마를 그대로 받아들인 우리 이후의 세대들이 만약 ‘당시에 고조선이 망한 이후에 우리나라는 한나라의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었고, 철기 무기도 없어서 한나라의 눈치만 봤다’라고 당연시하게 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 끊임없이 저항했던 학자들의 수많은 연구발표보다 드라마 하나가 가지고 있는 위력이 엄청나게 큰 것 같다.
역사적으로 고대사 왜곡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일본의 고대사 왜곡과 함께 중국의 고대사 왜곡이 심해지는 요즘에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대 역사에 대하여 올바른 시각을 전해줄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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