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등장인물에 대한 생각들...
각자의 삶의 방식에 대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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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시청자의 삶의 위치에서 평가하고 판단한다. 우리의 삶의 자리를 인식하지 않고 드라마를 본다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현실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등장인물에 대한 생각과 판단은 저마다 제각각으로 나타난다. <하얀거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뚜렷한 선악의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은 ‘현실’에 대한 대응 방식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1)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생존력이 강하다(우용길)
처음에 김창완이 악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선한 이미지 속에 숨겨졌던 섬뜩한 이미지가 드러날 때마다 시청자들은 전율하고 그의 캐릭터에 빠져들고 있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대체로 그가 무언가 일을 꾸미려고 하는 순간에는 그의 얼굴이 화면 전체로 클로즈업 된다. 그에게 있어서 우선 순위는 야망이라기보다는 권력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는 판단력과 빠른 두뇌회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용길 부원장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나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 발 벗고 뛰지만, 나에게 이득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냉정하게 외면하는 것이 권력자가 가져야 할 덕목인 것이다.
야망을 추구하는 자보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가 생존력이 강한 것 같다. 야망이 있는 자는 자신의 야망에 못지 않게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도 타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질투와 복수를 위해 정의의 편에 선다(이주환)
장준혁이 모셨던 전 외과 과장 이주환, 그는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이 얼마나 초라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의 후배인 노민국을 후임 외과 과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더라도 너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나서서 도와주어야 할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의료사고에 대해 소송사건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우유부단 그 자체였다. 결국 나중에 반 장준혁 편에 서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을 항상 코너로 몰아넣고 있는 장준혁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투심과 복수심의 결과였다. 자신의 속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 집어넣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귀한 척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유독 환자의 편만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 해주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3) 한 번의 실수도 인정할 수 없는 천재(장준혁)
천재적인 소질을 타고난 장준혁은 외과 과장이 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장준혁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에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현실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후, 자신이 잘못해서 의료 사고가 일어났지만, 그것을 인정할 경우에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과를 거부했다. ‘사람들이 나를 뛰어난 의사로 보고 있는데, 여기에서 나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의 이러한 자존심은 명인대학이라는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는 조직의 협조를 받아서 소송에 대항한다.
장준혁이 가지고 있는 야망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사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만약 장준혁이 권력을 소중하게 생각했다면 소송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정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송사건의 1심은 야망의 화신인 장준혁과 권력의 화신인 우용길의 합작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준혁 혼자가 아니라 명인대학이라는 조직이 나서는 순간, 그 소송 사건은 진실과 정의를 드러내려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조직에 속한 자와 그 조직 외부의 대결로 변해 버렸다. 여기에서 참과 진실은 이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기득권을 가지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그룹은 이전에 장준혁과 어떠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와는 상관없이 장준혁의 편에 선다. 그러나 그 기득권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던 그룹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도영이다.
4) 멍청한 건가 착한 건가(최도영)
멍청할 정도로 착한 캐릭터로 그려진 최도영이라는 인물은 현실에서는 낙오자가 되기 딱 알맞은 캐릭터이다. 그것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다. 단지 최도영이 낙오자가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의 현재의 모습을 포장해 주는 주변의 환경 여건이다. 좋은 가정환경에서 남부럽지 않는 성장을 했고, 그가 명인대학을 포기하더라도 그에게는 다른 곳을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만약 그가 찌들어지게 가난한 환경을 딛고 의사가 된 경우라면 소송 사건에서 선뜻 증언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관점 중에 ‘명인대학’이라는 존재의 크기이다. 그리고 그 가치가 등장인물에게 얼마나 커다란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명인대학을 유일무이한 가치로 둔 사람들은 법정에서 장준혁의 편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도영과 같이 명인대학의 존재가 자신의 삶 자체에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그다지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환자의 편에 서겠다는 최도영의 결심에 대해서 높게 평가를 해야 한다. 나 혼자의 결심 때문에 어쩌면 가족까지도 힘들어질 수 있다는 상황까지도 고려한 신중한 판단이었을 경우에 말이다.
5) 나약한 현실주의자(염동일)과 냉정한 현실주의자(박건하, 한민승)
자신이 맡았던 환자가 죽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의사로 염동일이 등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나는...” 이라는 자신감은 상실되어 있다. 법정에 나서는 상황에까지도 자신의 주장은 없다. 조직이 알려준 상황을 앵무새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경우라면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하기 싫은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선택한 이상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와는 반대로 장준혁에게 철저하게 신임을 받고 있는 두 의사(박건하, 한민승)는 현실 속에서 냉정할 정도로 사태 파악을 하고 있다. 고민이나 갈등 없이 장준혁을 따르는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인간미조차도 느낄 수 없을 정도이다. 불행하게도 세상은 인간적인 염동일보다 냉정한 박건하나 한민승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6) 현실과 너무 떨어져 있는 인물(전직 간호사 유미라, 사회운동가 이윤진)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될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증언을 하기 위해서 법정으로 나온 전직 간호사는 그런 점에서 정말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녀의 증언으로 일순간 정의는 회복될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실직한 남편, 태어난 아기의 육아는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실직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증언하러 나온 간호사는 그야말로 ‘알량한 정의감에 불타서 사태파악을 전혀 못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주환 과장의 딸로 등장하는 이윤진의 캐릭터는 드라마의 맥을 맥없이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부유한 가정환경 속에서 남부럽지 않은 상황을 타고난 그가 사회운동에 뛰어든다는 설정 자체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그녀의 의상과 가방은, 발로 뛰어다니면서 땀을 흘리고,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약자들과 함께 하는 사회운동가의 이미지를 가리고 있다.
진심으로 약자들을 위하는 사회운동가라기보다는 부잣집 고명딸로 금지옥엽 키워진 철부지 아가씨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드라마의 흐름이 막혀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를 이야기하고 증언을 해달라고 강요할 때마다 괜히 ‘자신의 상황이 아니니까 저렇게 쉽게 말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삶의 방식에 대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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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시청자의 삶의 위치에서 평가하고 판단한다. 우리의 삶의 자리를 인식하지 않고 드라마를 본다면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현실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등장인물에 대한 생각과 판단은 저마다 제각각으로 나타난다. <하얀거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뚜렷한 선악의 이분법적인 구도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은 ‘현실’에 대한 대응 방식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1)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생존력이 강하다(우용길)
처음에 김창완이 악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선한 이미지 속에 숨겨졌던 섬뜩한 이미지가 드러날 때마다 시청자들은 전율하고 그의 캐릭터에 빠져들고 있다.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대체로 그가 무언가 일을 꾸미려고 하는 순간에는 그의 얼굴이 화면 전체로 클로즈업 된다. 그에게 있어서 우선 순위는 야망이라기보다는 권력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는 판단력과 빠른 두뇌회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용길 부원장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나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 발 벗고 뛰지만, 나에게 이득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냉정하게 외면하는 것이 권력자가 가져야 할 덕목인 것이다.
야망을 추구하는 자보다 권력을 추구하는 자가 생존력이 강한 것 같다. 야망이 있는 자는 자신의 야망에 못지 않게 자존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도 타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질투와 복수를 위해 정의의 편에 선다(이주환)
장준혁이 모셨던 전 외과 과장 이주환, 그는 자신의 밑에 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람이 얼마나 초라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사실을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자신의 후배인 노민국을 후임 외과 과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더라도 너무 주먹구구식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나서서 도와주어야 할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무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의료사고에 대해 소송사건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우유부단 그 자체였다. 결국 나중에 반 장준혁 편에 서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자신을 항상 코너로 몰아넣고 있는 장준혁이라는 존재에 대한 질투심과 복수심의 결과였다. 자신의 속에 능구렁이를 몇 마리 집어넣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귀한 척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을 유독 환자의 편만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 해주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3) 한 번의 실수도 인정할 수 없는 천재(장준혁)
천재적인 소질을 타고난 장준혁은 외과 과장이 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장준혁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에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현실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후, 자신이 잘못해서 의료 사고가 일어났지만, 그것을 인정할 경우에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은 진심에서 우러나는 사과를 거부했다. ‘사람들이 나를 뛰어난 의사로 보고 있는데, 여기에서 나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의 이러한 자존심은 명인대학이라는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는 조직의 협조를 받아서 소송에 대항한다.
장준혁이 가지고 있는 야망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기 때문에, 사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만약 장준혁이 권력을 소중하게 생각했다면 소송사건은 생각보다 쉽게 정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송사건의 1심은 야망의 화신인 장준혁과 권력의 화신인 우용길의 합작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준혁 혼자가 아니라 명인대학이라는 조직이 나서는 순간, 그 소송 사건은 진실과 정의를 드러내려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조직에 속한 자와 그 조직 외부의 대결로 변해 버렸다. 여기에서 참과 진실은 이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기득권을 가지고 그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그룹은 이전에 장준혁과 어떠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와는 상관없이 장준혁의 편에 선다. 그러나 그 기득권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던 그룹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도영이다.
4) 멍청한 건가 착한 건가(최도영)
멍청할 정도로 착한 캐릭터로 그려진 최도영이라는 인물은 현실에서는 낙오자가 되기 딱 알맞은 캐릭터이다. 그것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다. 단지 최도영이 낙오자가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의 현재의 모습을 포장해 주는 주변의 환경 여건이다. 좋은 가정환경에서 남부럽지 않는 성장을 했고, 그가 명인대학을 포기하더라도 그에게는 다른 곳을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만약 그가 찌들어지게 가난한 환경을 딛고 의사가 된 경우라면 소송 사건에서 선뜻 증언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우리가 드라마를 보는 관점 중에 ‘명인대학’이라는 존재의 크기이다. 그리고 그 가치가 등장인물에게 얼마나 커다란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명인대학을 유일무이한 가치로 둔 사람들은 법정에서 장준혁의 편을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도영과 같이 명인대학의 존재가 자신의 삶 자체에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그다지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환자의 편에 서겠다는 최도영의 결심에 대해서 높게 평가를 해야 한다. 나 혼자의 결심 때문에 어쩌면 가족까지도 힘들어질 수 있다는 상황까지도 고려한 신중한 판단이었을 경우에 말이다.
5) 나약한 현실주의자(염동일)과 냉정한 현실주의자(박건하, 한민승)
자신이 맡았던 환자가 죽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의사로 염동일이 등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나는...” 이라는 자신감은 상실되어 있다. 법정에 나서는 상황에까지도 자신의 주장은 없다. 조직이 알려준 상황을 앵무새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을 경우라면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하기 싫은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단 선택한 이상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너무나도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와는 반대로 장준혁에게 철저하게 신임을 받고 있는 두 의사(박건하, 한민승)는 현실 속에서 냉정할 정도로 사태 파악을 하고 있다. 고민이나 갈등 없이 장준혁을 따르는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인간미조차도 느낄 수 없을 정도이다. 불행하게도 세상은 인간적인 염동일보다 냉정한 박건하나 한민승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6) 현실과 너무 떨어져 있는 인물(전직 간호사 유미라, 사회운동가 이윤진)
남편이 직장에서 해고될지도 모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증언을 하기 위해서 법정으로 나온 전직 간호사는 그런 점에서 정말로 납득하기 힘들다. 그녀의 증언으로 일순간 정의는 회복될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실직한 남편, 태어난 아기의 육아는 누가 책임져 줄 것인가? 실직을 경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증언하러 나온 간호사는 그야말로 ‘알량한 정의감에 불타서 사태파악을 전혀 못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주환 과장의 딸로 등장하는 이윤진의 캐릭터는 드라마의 맥을 맥없이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부유한 가정환경 속에서 남부럽지 않은 상황을 타고난 그가 사회운동에 뛰어든다는 설정 자체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등장할 때마다 그녀의 의상과 가방은, 발로 뛰어다니면서 땀을 흘리고,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약자들과 함께 하는 사회운동가의 이미지를 가리고 있다.
진심으로 약자들을 위하는 사회운동가라기보다는 부잣집 고명딸로 금지옥엽 키워진 철부지 아가씨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드라마의 흐름이 막혀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를 이야기하고 증언을 해달라고 강요할 때마다 괜히 ‘자신의 상황이 아니니까 저렇게 쉽게 말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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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U포터뉴스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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