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야기 43] 북한, 세계를 놀라게 하다
[제8회 월드컵] 북한, 이탈리아를 꺾고 준준결승에 진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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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변방의 희망, 북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월드컵은 엄밀한 의미에서 월드컵이 아니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홀대하면서 월드컵은 유럽과 남미의 독무대가 되어 버렸다. 특별히 1958년과 1962년 월드컵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팀들은 지역예선을 통과하더라도 유럽의 팀들과 예비고사(플레이오프)를 치르는 과정을 겪으며 단 하나의 팀도 본선을 밟지 못했다.
1966년에도 축구의 후진국을 배제시키려는 FIFA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묶어서 단 한 장의 본선 티켓만을 할당한 것이다. 해당 지역의 국가들이 불만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들이 지역예선을 거부했고, 아시아에서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러한 FIFA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참가를 포기하였다.
결국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대표는 호주를 이긴 북한이 차지하게 되었다. 국제무대에서 북한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팀이었다. 2년 전 1964년 동경 올림픽 본선에 이름을 올렸지만 대회 직전에 참가를 포기한 것이 그들의 국제대회 성적표였다.
1966년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우승할 확률은 500대 1로 낮게 평가되고 있었는데, 가장 우승할 가능성이 높은 브라질이 2대 1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북한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는 팀’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 조별리그, 돌풍을 일으키다.
북한은 소련, 이탈리아, 그리고 칠레와 함께 조별리그 4조에 속했다.
북한의 월드컵 첫 상대는 소련이었다. 소련은 1956년 올림픽 우승, 1962년 칠레 월드컵 8강, 196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1964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준우승의 성적이 말해주듯 1950년대 이후 유럽에서 정상권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는 팀이었다. 북한은 1966년 7월 12일 소련과 월드컵 첫 경기를 치렀는데, 소련의 거의 기계와 같은 조직력에 0-3으로 패하고 말았다.
북한의 두 번째 상대는 남미의 칠레였다. 비록 칠레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개최국의 이점을 과도하게 이용했기 때문에 실력보다 높은 성적을 냈다고 평가를 받고 있지만, 월드컵 3위라는 성적은 개최국의 이점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성적이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서는 8강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대였다. 상황은 칠레도 마찬가지였다. 칠레는 첫 경기에서 이탈리아에게 0-2로 패하며 1패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7월 15일, 북한과 칠레의 경기에서 북한은 전반에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0-1로 리드를 당했다. 후반전 종반까지 0-1로 끌려다니던 북한은 종료 직전에 박성진이 동점골을 넣으며(88분) 간신히 1-1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1무 1패의 북한이 마지막으로 만난 팀은 월드컵 2회 우승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였다. 1930년대 화려함을 많이 상실했다고는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여전히 유럽의 강자 그룹에 속해 있었다. 조별리그에서 칠레를 2-0으로 이기고, 소련에게 0-1로 아쉽게 패한 이탈리아는 1승 1패로 비기기만 해도 8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7월 19일, 북한과 이탈리아가 격돌했다. 이탈리아는 북한의 지칠줄 모르는 체력과 스피드, 그리고 짧고 정확한 패스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몸집이 작은 북한 선수들은 유럽 사람들이 보기에 쉽게 구분하기 힘들었는데, 후반전에도 북한 선수들의 스피드가 줄어들지 않자 후반에 선수 전원이 교체되었는데도 몰라보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다.
전반 42분, 박두익의 골이 결승골이 되어 북한은 이탈리아를 1-0으로 이기고 1승 1무 1패를 기록하여 이탈리아를 제치고 조 2위를 차지하며 8강이 겨루는 결승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 하마터면 4강에 진출할 뻔한 준준결승전
북한이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를 1-0으로 누르고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한 것은 세계 축구팬들에게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북한의 승리는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국이 잉글랜드를 1-0으로 물리친 이래 가장 충격적인 경기”로 인식되었다. 북한에게 패하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이탈리아 선수들은 분노한 팬들을 피하기 위해서 한밤중에 몰래 귀국하였지만, 분노한 팬들의 썩은 과일, 야채, 달걀을 피할 수는 없었다.
북한의 준준결승 상대는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에는 에우제비오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있었는데, 조별리그에서 헝가리, 브라질, 불가리아를 차례로 격파하며 3승으로 조 1위를 차지한 팀이었다. 특별히 브라질에게 패배를 안겨주면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를 안겨준 것은 북한이 이탈리아를 탈락시킨 것과 함께 이 대회 최고의 뉴스가 되고 있었다.
포르투갈과 북한의 준준결승을 보기 위해서 5만 명이 넘는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는데, 대회의 돌풍을 몰고 온 포르투갈과 북한의 인기는 준준결승 4경기 중에서 개최국 잉글랜드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하는 경기 다음으로 많은 관중을 불러들인 경기였다.
7월 23일, 포르투갈과 북한이 4강 진출을 놓고 한바탕 격돌하였다. 경기 시작 1분 만에 박성진이 선취골을 올렸고, 22분에는 이동운이 추가골을 넣으며 2-0으로 리드하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We want three!”(세번째 골을 넣어라!)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이어 양성국이 세 번째 골(25분)을 넣자 관중들은 “코리아! 코리아!”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우제비오의 포르투갈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해 유럽최우수 선수인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는 곧바로 한 골을 만회하였고(27분), 전반 종료 직전에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2-3으로 추격하며 전반전을 마무리 하였다.
후반에 들어서 포르투갈의 에우제비오가 동점골을 성공시킨 후(56분), 3분 뒤에 역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역전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아우구스토가 한 골을 추가로 넣으며(80분), 포르투갈이 5-3으로 역전승을 거두었고,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 세계를 놀라게 한 아시아의 호랑이
축구 경기에서 3점을 이기던 북한이 3-5로 역전패한 것은 같은 민족으로서 두고 두고 아쉬운 순간으로 남았다. 포르투갈은 '적이지만 훌륭했다.' 포르투갈이 먼저 3점을 빼앗기고도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상 앞서고 있는 팀에게 너무 빨리 득점에 성공하면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북한은 3점을 너무 빠른 시간(25분)에 넣어버렸다. 포르투갈로서는 따라갈 시간이 충분했다.
그러나 국제경기 경험이 부족했던 북한은 4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플레이는 세계를 놀라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FIFA로서는 북한을 통해서 하나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더 이상 약체라고 해서 본선 출전의 기회를 제한하는 것보다 약자에게도 기회를 주는 것이 이번 1966년 월드컵처럼 이변과 돌풍으로 월드컵이 더욱 흥미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결국 FIFA는 다음번 월드컵부터 아프리카(1장), 아시아와 오세아니아(1장)에게 본선 진출의 기회를 확대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여전히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지만 한 자리도 허락하지 않던 FIFA가 두 자리를 허락했다는 것은 대단한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처음 출전하여 돌풍을 일으키며 8강에 진출한 북한의 수훈이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를 대표하는 나라가 되어 축구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유럽의 이탈리아를 꺾은 것은 축구 변방, 축구 후진국들에게 대리만족인 동시에 희망을 심어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의 축구는 북한에게 일종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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