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야기 40]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좌절
[제7회 월드컵] 남미축구 자존심에 상처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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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축구의 자존심 :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초창기 남미 축구의 선두 주자였던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어느새 브라질에게 추월당해버렸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월드컵에 불참하는 사이에 브라질은 월드컵에 꾸준히 참가하며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해온 것이다.
비록 우루과이가 1950년 제4회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였지만, 그들의 우승이 이변으로 여겨질 정도로 국제무대에서 브라질의 실력이 월등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세 번의 침묵(1938년, 1950년, 1954년) 이후 참가한 1958년 제6회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였다.
그러나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보다 브라질이 실력이 월등한 것도 아니었다. 객관적인 결과를 놓고 비교해 본다면 1950년대 코파아메리카대회는 총 여섯 번 진행되었는데, 우루과이가 두 번, 아르헨티나가 세 번, 그리고 파라과이가 한 번 우승을 차지하였다. 적어도 남미에서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을 압도하고 있었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유럽이 아닌 남미에서 열리는 1962년 제7회 월드컵으로서는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특별히 이번 월드컵은 남미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이기에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의 성적은 남미 축구의 현주소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었다. 브라질이 매우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하더라도 브라질을 제외한 다른 남미 국가들의 성적이 별로 좋지 않다면 유럽 축구와 대등 혹은 우세하다는 남미 축구에 대한 평가는 설득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 우루과이
우루과이는 소련, 유고슬라비아, 콜롬비아와 한 조가 되었다. 우루과이로서는 새롭게 떠오르는 유럽의 강호들과 한 조가 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소련은 2년 전 유럽선수권대회 초대 챔피언에 오르며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었고, 우루과이 역시 올림픽에서 우승하며 나름대로 최고의 상태로 월드컵에 참가한 것이다.
조별리그 첫 경기인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전반에 0-1로 뒤지다가 후반에 두 골을 넣어 역전승한 우루과이는 두 번째 상대인 유고슬라비아에게 1-3으로 역전패 당하며 위기에 몰렸다. 마지막 소련과의 경기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소련이 1승 1무, 유고슬라비아가 1승 1패, 우루과이가 1승 1패, 그리고 콜롬비아가 1무 1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우루과이가 자력으로 결승 토너먼트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조건 소련을 이겨야 했다.
6월 6일, 소련과의 경기에서 전반에 한 골을 허용한 우루과이는 후반에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희망을 걸었지만 종료 직전에 소련의 이바노프(Ivanov)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면서 1-2로 패하고 말았다.
다음날 유고슬라비아와 콜롬비아와의 경기가 남아있었지만 우루과이로서는 어떠한 경우의 수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미 결승 토너먼트 진출은 좌절된 상황이었다. 유고슬라비아로서는 비기기만 해도 결승 토너먼트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만약 콜롬비아가 유고슬라비아를 이긴다면 콜롬비아가 골득실에서 우루과이나 유고슬라비아를 제치고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우루과이는 유고슬라비아가 화려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콜롬비아를 5-0으로 대파하고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는 헝가리, 잉글랜드, 불가리아와 한 조가 되었다. 불가리아는 쉽게 이길 수 있는 팀이라고 예상되었지만 헝가리와 잉글랜드의 전력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역시 힘겨운 조별리그가 예상되었다.
불가리아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경기 시작 4분 만에 파쿤도(Héctor Facundo)가 골을 넣으며 기분좋은 출발을 했지만, 이내 정비된 불가리아의 탄탄한 수비에 막혀 더 이상의 득점을 하지 못했다. 1-0으로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의 두 번째 상대는 종주국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남미로 출정한 잉글랜드였다. 아르헨티나는 전반 17분에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한 골을 실점했고, 전반 종료 직전 바비 찰튼(Bobby Charlton)에게 한 골을 허용하며 전반전을 0-2로 리드 당했다. 후반전에 잉글랜드가 한 골을 추가하여 0-3으로 벌어진 스코어를 뒤집기 위해서 아르헨티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한 골을 만회하는 데 그치고 1-3으로 패배를 기록하고 말았다.
마지막 경기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헝가리가 2승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었고, 잉글랜드가 1승 1패, 아르헨티나가 1승 1패, 그리고 불가리아가 2패로 이미 예선 탈락을 확정해 놓고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헝가리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잉글랜드가 불가리아를 이긴다면 세 팀이 2승 1패로 동률이 되기 때문에 골득실을 따지는 상황이 된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살펴보더라도 현재 골득실에서 -1을 기록하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1을 기록하고 있는 잉글랜드와 비교해서 불리한 상황이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헝가리를 커다란 점수 차이로 이기거나 불가리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6월 6일,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헝가리와 0-0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상황은 더욱 안좋게 흘러가 버렸다. 이제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가 불가리아에게 지기만을 바라며 다음날 잉글랜드와 불가리아의 경기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잉글랜드로서는 비겨도 결승 토너먼트에 올라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예선 탈락이 확정된 불가리아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잉글랜드를 괴롭혔지만 결국 잉글랜드는 최소한의 목표(비기는 것)를 달성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와 1승 1무 1패로 동률을 이루었지만 골득실에서 뒤져 조 3위로 결승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 남미, 우승은 했지만...
1962년 제7회 칠레 월드컵은 유럽과 남미가 자존심을 걸고 대결한 대회로 브라질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표면적으로는 브라질이 우승하며 남미축구가 우세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남미 축구를 대표하는 다른 두 팀(우루과이, 아르헨티나)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은 남미 축구가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남미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남미축구의 대표적 주자였던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조별리그에서 유럽에게 밀려 탈락한 것은 남미로서는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칠레가 3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개최국의 이점을 너무 살렸기 때문에 비중있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남미 축구가 세계 축구의 양대 산맥이 되기 위해서는 브라질 한 팀만 뛰어나서는 소용이 없는 것이다. 국가적인 자존심 이외에 대륙간의 자존심 대결이 시작된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나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다른 남미 국가가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진정한 의미에서 남미 축구가 유럽 축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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