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진정한 아시아의 맹주 모습을 보여달라

아시안컵 조별리그는 간신히 통과했지만, 이제부터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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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아시안컵 D조에 속한 한국이 천신만고 끝에 8강이 겨루는 결승 토너먼트에 올랐다. 인도네시아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전반에 터진 김정우의 골을 끝까지 지키며 1-0으로 승리하였고, 마침 사우디아라비아가 바레인을 4-0으로 제압해 주는 바람에 조 2위를 기록하고 기적 같은 8강 진출을 일구어낸 것이다.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이 보여준 모습은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4강에 진출했던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야말로 실망스러움 자체였다. 뚜렷한 게임메이커가 없고, 확실한 경기의 우세를 장악하지 못하고 수비의 한순간의 실수로 실점하는 장면은 한국 축구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이 아시안컵 D조에서 상대할 팀은 (물론 평가 기준에 신빙성은 없지만) 피파 랭킹에서 모두 한국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2007년 5월 현재 한국은 51위, 사우디아라비아는 63위, 바레인은 101위, 인도네시아는 149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시안컵이 진행되는 도중에 한국은 58위, 사우디아라비아는 61위, 바레인은 88위, 인도네시아는 127위를 기록했다)


비록 중동 국가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왔지만 한국이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베어벡 감독은 조별리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고는 당연히 이길 것으로 예상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대결에 대표팀의 역량을 결집시킨 것 같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한국은 18년 만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이길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최성국의 선제 헤딩골로 1-0으로 앞서나가던 한국은 고질적인 수비의 패스미스에 이어진 상대 공격수의 돌파에 허둥대다가 결국 오범석이 상대 공격수를 밀치는 파울을 범하게 되었고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1-1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는 이길 수 있었던 경기였기 때문에 더더욱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 이후에 바레인전과 인도네시아전에서 보여준 한국 축구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결점을 많이 보여주었다. 선수들의 팀워크보다는 개개인의 기량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수비 시스템은 종종 상대 공격수에게 돌파를 허용하며 위기의 순간을 많이 만들어 주었다.


바레인과의 경기에서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수비의 실수로 역전패를 하면서 백패스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확실하게 확인하는 결과가 되었다.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준 수비의 협력 플레이는 실종되었고, 안전지역으로 공을 돌리려는 백패스가 남발하면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바레인에게 충격의 1-2 역전패를 당한 한국은 자력으로 8강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차단되었다. 무조건 인도네시아를 이기고 사우디와 바레인이 비기지 않기를 바라는 상황이 되었다. 사우디와 바레인의 경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인도네시아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는 오그라들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역대 전적에서 32승 4무 2패로 월등히 앞서고 있었고, 피파 랭킹 상으로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고 있었지만 가끔 어이없는 패배를 당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가 바레인을 꺾고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국보다는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역시 한국은 인도네시아보다는 한수 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인도네시아를 1-0으로 제압하며 바레인을 4-0으로 이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조 2위를 기록하며 8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비록 8강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경기 내용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전반 중반 이후에 이천수가 세 명을 따돌리며 패스해준 것을 김정우가 성공시킨 골이 한국팀이 얻은 유일한 골이었다. 이후에 계속 공격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지만 추가골을 성공시키지 못했고, 가끔 인도네시아의 역습에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국이 바레인과 인도네시아에게 고전한 이유는 정신력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바레인과 인도네시아는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자만하고 상대의 전력 분석에 게을리 한 점도 없지 않다.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만 집중하고 그 이후는 대충 객관적인 실력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승리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호랑이는 하찮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안컵에 대한 대비가 다른 팀들보다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대표팀 소집과 훈련 역시 다른 팀에 비해서 상당히 시간적으로 부족했던 것도 조직력에 있어서 허술함을 보이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시안컵이 열리기 4일전에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대표팀은 현지 적응면에서도 다른 팀에 비해서 시간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바레인이나 인도네시아가 아시안컵에서 한국과 경기하기 위해서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하고 대회에 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한국은 아시아에서 정평이 나 있는 팀이기 때문에 전력 분석도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 호주,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나라에 대한 대비는 철저하고 세밀하게 하지만, 그 이외의 팀들에 대한 대비는 철저하지 못한 것 같다.

 

국민들 역시 잘 알려진 라이벌(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등)에 대한 정보는 전문가의 수준으로 잘 알고 있지만, 아시아의 중하위권 팀들은 동네축구 하다가 출전한 것처럼 생각하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아시아의 중하위권 팀들 역시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서 자국의 리그를 활성화하고 국가대표팀을 구성하여 철저하게 합숙하며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6월 2일에 네덜란드와 평가전, 6월 29일 이라크와 평가전, 7월 5일 우크라이나와 평가전... 아시안컵을 앞둔 국가대표가 유럽의 팀을 불러들여 국가대표 축구팀의 선전을 기원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하나로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러한 평가전은 정작 코앞에 다가온 아시안컵을 위한 대비는 아니었다. (물론 이라크와의 평가전이 중동국가를 겨냥했다고 하겠지만, 경기 스타일이 사우디아라비아나 바레인과 비슷한지는 의문이다)


매번 세계 대회에 참가하면서 우리는 선수들이나 국민들이 하나같이 성적에만 온 관심을 기울이며 열광적으로 응원을 한다. 우리는 오로지 이기는 것, 그리고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것에만 열광하는 우리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집중하는 것 같다. 물론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좀 더 나아가서 이기더라도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국가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시아의 맹주가 된다는 것은 힘들게 간신히 우승하는 행운의 팀이 아니라 아시아의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경기 자체를 지배하면서 내용적을 압도하며 승리하는 팀이 된다는 것이다. ‘꿩 잡는 게 매’라고 경기 내용은 형편없지만 간신히 이기고 차지하는 우승보다는 경기 자체를 지배하면서 승리도 챙기는 팀이 진정한 강자로 인정받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여전히 한국의 목표는 아시안컵 우승이다. 조별리그에서 비록 죽을 쑤면서 탈락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8강 진출에는 성공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약점을 보완하고 심기일전하여 토너먼트에 임하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이 만날 상대는 조별리그에서 만났던 바레인이나 인도네시아보다는 훨씬 강한 팀들이다. 해외파가 합류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가대표팀은 한 두 명의 해외파에 의존하는 팀이 아니라 국내파로 구성되더라도 선수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경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그 어느 때보다 미래에 대한 가능성은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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